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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24시간 살 맞대며 농담도 … “박연폭포로 야유회 가자”

중앙선데이 2018.10.27 00:20 607호 12면 지면보기
[박신홍의 人사이드] 김창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사무처장
지난달 14일 개성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문을 열었다. 지난 4월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의 후속 조치 중 하나다. 4층짜리 건물에 남북 관계자 30여 명이 상주하는 조그만 규모지만 그 함의는 결코 작지 않다. 단순히 실무 연락관 수준을 넘어 남북이 처음으로 ‘국가 대 국가’ 차원에서 대표단을 파견했다는 점에서다. 정부가 올해 남북관계의 가장 의미있는 진전 중 하나로 연락사무소 개설을 꼽는 이유다. 미국·중국 등 한반도 주변국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도 연락사무소가 갖는 의미와 파급력 때문이다.
 
김창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사무처장은 ’미국과 독일의 경우처럼 향후 남북관계 발전에도 연락사무소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장진영 기자]

김창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사무처장은 ’미국과 독일의 경우처럼 향후 남북관계 발전에도 연락사무소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장진영 기자]

사무소장은 천해성 통일부 차관과 전종수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하지만 둘 다 서울과 평양을 비울 수 없는 사정상 김창수(54) 사무처장과 황충성 조평통 부장이 소장 대리로 임명돼 24시간 상시 소통 채널을 구축하고 있다. 그동안 개성에선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연락사무소는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인가. 개소 한 달을 맞아 현장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 처장이 중앙SUNDAY와 첫 언론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는 개성에 상주하는 김 처장이 주말을 맞아 잠깐 서울로 내려온 지난 21일 진행됐다.
 
 
노태우·이명박 정부도 적극 제안
 
연락사무소 개설 의미를 꼽자면.
“국제정치 측면에서 볼 때 연락사무소는 분단국가나 적대관계에 있는 국가들 사이에 주로 설치됐다. 동서독이 대표적인 분단국가 케이스다. 미국도 적대국가였던 베트남·중국·쿠바와 수교 전 연락사무소부터 열었다. 우리는 1990년 노태우 정부 때 처음 제안한 이후 역대 정부가 꾸준히 시도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지난달 개소식에 참석한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도 ‘김영삼 정부 때 그렇게 노력해도 안 됐는데…’라며 감개무량해 하더라. 이명박 전 대통령도 미국에 가자마자 북측에 전격 제안하지 않았나. 미국이 관계 개선의 첫 프로세스로 연락사무소를 중요시한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다. 그런 만큼 이번 합의는 남북 당국이 적대관계 해소와 신뢰 구축을 위한 첫발을 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동안 북한은 왜 거부해 왔나.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로 보지 않는 북한 입장에서는 연락사무소 제안을 받으면 두 개의 국가를 인정하는 셈이 되고 이는 곧 분단을 고착화하는 길이라고 본 거다. 반면 우리는 상시 연락 체계 구축을 통해 신뢰부터 쌓자는 거였고. 그랬던 북한이 이번에 처음 받아들인 거다. 전통적으로 선(先) 신뢰 구축은 서방국가가 공산국가에 제기해온 카드였음을 감안할 때 북한의 변화는 이 카드를 수용함으로써 국제사회와 호흡을 같이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북·미 정상의 싱가포르 합의문 맨 앞에도 신뢰 구축이 적시되지 않았나.”
 
그는 “이전엔 북한에 뭐 하나라도 전달하려면 유엔군사령부를 통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유엔사 일직장교가 판문점 군사분계선(MDL) 바로 앞에서 핸드마이크를 들고 영어로 ‘노스코리아 나오시오’라고 하면 한국군 장교가 옆에서 우리말로 통역을 한다. 지난 4월 남북 정상이 넘나들었던 바로 그 장소다. 그러면 북한 사람들이 나와서 받아 적고 동영상도 찍는다. 그러다 다시 한 번 외쳐달라고 하기도 한다. 잘못 적었거나 동영상 녹화가 제대로 안 됐다며. 이게 지난달까지 남북의 공식 연락 수단이었고 남북관계의 현실이었다.”
 
개성에 설치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통상 연락사무소는 상대방 수도에 각각 두기 마련인데 우리는 개성에 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름에 ‘공동’이 붙어 있다는 게 실제로 적잖은 차이를 낳고 있다. 2층은 우리, 4층은 북한 사무실에 3층은 회담장인 구조다 보니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주치게 된다. 아랫집 윗집의 한 지붕 두 가족 같달까. 낮에도 만나고, 밤에도 만나고. 24시간 살을 맞대며 얘기하다 보니 한 달 새 북측과 얼마나 많은 논의를 했는지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다. 10·4선언 공동행사 개최도 북측이 불과 일주일 전 밤늦게 우리 숙소에 찾아와 제안하면서 성사되지 않았나. MDL 핸드마이크와 비교하면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첫 부임에 부담과 책임감도 클 텐데.
“남측 상주 인원 15~20명은 일종의 외교관이다. 외교사를 봐도 외교관 한 명이 상대국에 가있는 것은 10만 명의 군대가 주둔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곤 하지 않았나. 우리가 남북화해를 추구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여전히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한 이익 창출이 아니라 국가 이익 수호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각오가 남다르다. (태극기 배지를 꺼내 보여주며) 한 분이 그러더라. 우리 국민 중에 국가대표 선수 말고 이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근무하는 공무원이 누가 있느냐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로 사명감을 갖고 일하자며 화이팅을 외칠 때 가슴이 뭉클했다. 지금 그런 공간이 북한땅에 만들어진 거다.”
 
 
황충성, 상당히 많은 권한 위임받은 듯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전경. 지난 22일엔 이곳에서 남북 산림협력회담이 열렸다. [사진공동취재단]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전경. 지난 22일엔 이곳에서 남북 산림협력회담이 열렸다. [사진공동취재단]

하루 생활은 어떻게 이뤄지나.
“사무소와 숙소·식당이 생활공간의 전부다. 모두 차로 5분 거리에 모여 있다. 시설 개보수 인력을 위한 함바식당이 하나 마련됐는데 이곳에서 세 끼 식사를 해결한다. 지난주 개소 한 달을 맞아 조촐하게나마 첫 회식도 했다. 금요일엔 당직 몇 명만 남고 서울로 내려왔다가 월요일 아침 다시 개성으로 올라간다. 처음엔 이동도 철저히 통제됐다. 식당이나 숙소에 갈 때도 북측 차량의 인도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내가 ‘언제까지 이럴 거냐’고 했더니 이내 세 곳은 마음대로 오가라고 하더라.”
 
북측 반응은.
“처음엔 서먹서먹했지만 만나면 친해지고 정이 들기 마련 아닌가. 지금은 스스럼없이 농담도 곧잘 주고받는다. 우리 간호사 한 분이 상주하는데 북측 인사들도 배가 아프거나 감기 기운이 있으면 수시로 내려와 약을 타가곤 한다. 얼마 전엔 함께 개성시내로 나가 식사하고 송악산과 박연폭포로 야유회도 가자고 했더니 황진이 무덤과 벽란도엔 안 가볼 거냐며, 그러면서 ‘이제 막 아기가 태어났으니 잘 돌봐서 쑥쑥 자라면 그런 건 일도 아닙네다’고 하더라.”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40여 차례 방북한 뒤 12년 만에 갔는데 북측 사람들이 그때와는 확실히 많이 달라졌더라. 우선 말도, 표현도 세련됐다. 영어도 곧잘 쓴다. 내가 ‘함께 잘해 봅시다’라고 하면 ‘그걸 윈윈이라고 하죠’라고 할 정도다(웃음). 국제감각도 늘었다. 김대중 정부 때는 노벨평화상 얘길 하면 우리민족끼리가 최고지 그게 뭐가 중요하냐며 관심조차 없었는데 올해는 ‘전 세계가 알아주고 지지하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 아니냐’며 큰 관심을 갖더라. 국제행사 초청 의사를 전달했더니 전에는 그냥 딱 잘라 버렸는데 이번엔 ‘그거 되게 중요한 일 아닙네까. 해당 기관에 꼭 전달하겠습네다’라며 적극성을 띠는 모습이었다.”
 
북측 카운터파트는 어떤가.
“황충성 소장 대리는 네 살 아래로 늘 깍듯이 대하고 있다. 워낙 자주 보니 이젠 가족의 안부부터 묻는 사이가 됐다. 매우 협조적이고 남북관계에 대한 이해도 깊다. 나름 상당히 많은 권한을 위임받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다.”
 
여가 시간엔 주로 뭘 하나.
“위성TV를 설치해 남한 뉴스는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숙소 1층엔 헬스 기구와 탁구대도 갖다 놨다. 숙소 뒤에 축구장 절반 크기의 공원이 하나 있는데 여길 산책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조만간 인터넷도 설치할 예정이다. KT와 상의했더니 보안도 전혀 문제가 없다더라. 특히 인터넷은 북한땅에 상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처음으로 인터넷망을 통해 세계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남북 사이에 보안을 요하지 않는 자료를 e메일로 받으면 업무 효율도 높아질 수 있다.”
 
현지 생활의 어려움은.
“살면서 이렇게 많은 게 필요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한 명이 살든 100명이 살든 필요한 품목은 똑같더라. 아직은 기초적인 것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지만 남북관계가 진전될수록 점차 나아지지 않겠나.”
 
 
흑금성 만난 이호남과 정상회담 물밑 접촉
 
김 처장은 민화협 정책실장을 맡는 등 통일 관련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다 노무현 정부 때 국가안보회의(NSC)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2006년엔 남북 정상회담 물밑 접촉에도 관여했다. 영화 ‘공작’에서 흑금성과 만난 이호남이 당시 파트너였다. 2012년 대선 때는 문재인 후보 캠프 외교안보 총괄간사로 서훈 국정원장과 대북정책 입안에 핵심 역할을 맡기도 했다. 현 정부 출범 후엔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내다 이번에 초대 사무처장으로 발탁됐다. 서 국정원장은 물론 486그룹과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등 ‘연정(연대 정외과) 라인’과도 두루 교류가 깊어 현 여권 외교안보 진영에서 ‘마당발’로 통하고 있다.
 
이호남은 어떻게 만나게 됐나.
“당시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서 남북대화가 단절된 때였다. 그런데 저쪽에서 먼저 정상회담을 타진해 왔다. 공식 직함을 가진 사람이 나가면 부담이 큰 상황이었는데 마침 내가 NSC를 나온 직후여서 대표로 뽑혔다. 만나 보니 이호남이 정상회담을 추진할 만한 급은 아니다 싶었다.”
 
시민운동가와 관료는 좀 다를 텐데.
“공무원 사회 은어 중에 어공(어쩌다 공무원)과 늘공(늘 공무원)이란 말이 있는데 나는 어공도 아니고 가공(가끔 공무원)이다(웃음). 이번이 세 번째 공무원 생활인데 시민단체 활동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북한 사람들을 만나서도 따질 건 따지고 얼굴 붉혀가며 싸웠던 경험이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민간단체가 갖는 자율성·창조성·역동성과 관료 조직이 갖는 안정성·체계성을 적절히 조합해 연락사무소 안착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이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이다. 임시정부를 세우고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이 26년 만에 해방이 될 거라곤 미처 생각 못했을 거다. 내년부터 26년 뒤인 2045년은 광복 100주년이다. 당면과제는 연락사무소의 성공적인 정착이지만 길게 보면서 미래 비전도 함께 설계할 때다. 또 다른 26년이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으로 이어지는 데 연락사무소가 작은 씨앗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재인 정부가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를 추진하는 것도 중간 단계의 동력을 확보하려는 차원이다. 지금은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에 발자국을 남기는 심정이지만 국운은 우리 편이라 믿는다. 갈 길이 멀어도 한발씩 뚜벅뚜벅 가면 되지 않겠나.”
 
박신홍 정치팀장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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