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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워 불행한 상대적 빈곤, 소득만 높인다고 해소 될까

중앙선데이 2018.10.27 00:20 607호 25면 지면보기
빠른 삶, 느린 생각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얼마 전 외지(外紙)에 나와 있던 수면의 쓰임새에 관한 글에서 착안하여 수필 하나를 쓴 일이 었다. 피로하면 잠을 자서 피로를 푸는 것과 같은 것은 누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 생명 진화의 과정을 통해서 낮과 밤의 교차가 우리 몸 안에 그대로 들어가 있다는 것은 짐작은 하면서도 주목하지 않는 사항이다. 이것을 무시하거나 뒤집어 놓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취침 시간에 차를 운전하면, 사고율이 높아진다는 것과 같은 것이 그 단적인 증거이다. 그런데 우리 마음도 잠을 필요로 한다. 마음 속에 생각하던 것, 정보로서 받아들인 것을 하나로 편집하는 일이 잠을 자는 사이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편집으로 마음에 있던 것, 쌓이게 된 것들이 하나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통일성과 일관성을 얻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잠을 자는 가운데 저절로 되는 일이다. 그러한 것들을 열심히 하나로 꿰이려고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해방하여 자유롭게 풀어 놓을 때에 이러한 통합 편집 작용이 이루어진다.
 

꿈 속에서 정신을 풀어놓아야
생각이 무르익는 과정 거쳐서
정보가 일관성 있게 편집되듯

소득격차 따른 불평등 해결도
좁은 관점 떠나 의식의 폭 넓혀
검소한 삶 등 정신 가치 감안해야

이것을 위에 말한 에세이에서는 산 속을 돌아다니는 것에 비유하였다. 산행을 하면서, 이것 저것을 보고 그것을 마음에 적어 두는 것과 비슷하다는 말이다. 거기에서 일관된 산행기록이 태어난다. 그것이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가 되는 것은 하나의 산을 가기 때문이다. 가령 내장산을 가는데, 장성 백양사 뒤쪽에서 시작하여 정읍 내장사까지 간다고 하면 나의 산행은 이미 하나의 목표와 지역을 가지고 있다. 또 그 길을 하나로 하는 것은 나라는 사람이고 나의 지속하는 의식이다. 그러면서 산행은 지도에 그려진 것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고 잘 몰랐던 것을, 예상하지 않았던 것들을 새롭게 보는 일이다.
 
엣 영국 시인의 알프스 등반기록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산을 오르다가 길을 잃고 우연히 만난 현지인에게 알프스를 올라가는 길을 물으니 “저 아래로 내려 가시오”라고 가르쳐 주었다. 서로 말을 알아 잘못 들을 것이 아닌가 하고도 생각을 하였는데, 결국 그 길을 따라 내려가 보니, 자신은 이미 길을 묻기도 전에, 적어도 자기가 가는 등산로에서는 산의 가장 높은 곳을 지난 후였다. 자신도 모르게 산을 넘어버린 것이었다.
 
일을 생각할 때 처음에 필요한 것은 문제가 자리해 있는 전체, 산의 지형과 산로(山路)들을 전체적으로 마음에 지니는 일이다. 마음이 가야할 길에 집중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지만, 더러는 마음을 풀고 산길을 꿈 속에 헤매듯 자유롭게 가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각설(却說), 느닷없는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였지만 그것이 본론에 이어지게 되기를 바란다. 네이버 ‘열린 연단’에서 지난 6일에 고려대의 김윤태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강연 제목은 ‘빈곤, 불평등, 국가의 역할’이었다. 강연은 제목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과제를 가리킨다. 어려운 고비가 많았지만 그간 우리나라는, 그것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든지 간에 선진국의 대열에 드는 나라가 되었다. 이제 이것은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이르는데 큰 고비는 경제발전과 민주화였다. 이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빈곤이 없어졌다고 할 수는 없고, 불평등·소득격차는 사회와 정치의 큰 과제로 남아 있다. 물론 남북관계는 또 하나의 당면 과제이다.
 
 
경제규모는 10위권, 행복지수는 57위
 
김윤태 교수의 강연이 강조하는 것은 불평등의 문제가 긴급한 국가적 과제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을 접근하는 여러 방법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한다. 빈곤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식료를 얻지 못하고, 더 나아가 추위를 막아낼 주거나 의복을 갖추지 못하는 것 등 전통적으로 의식주(衣食住)라고 부르던 필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생존의 요건만으로서 정의하는 빈곤을 김 교수는 ‘절대적 빈곤’이라고 부른다. 그것을 넘어서도 빈곤은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인도 출신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야 센의 견해를 따르면 빈곤을 벗어나는 것은 물질적 자원의 배분에 참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원을 능력으로 변환시키는 데 필요한 사회적 문화적 조건’이 성립하여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뒤에 붙인 조건은 다시 말하여 교육, 고용 등의 조건이 사회적으로 충족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빈곤이나 불평등의 논의는 한국이 개발도상국의 범주를 벗어나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도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한국의 경제력 크기가 세계에서 11번째라는 이야기는 근년에 와서 많이 듣는 이야기이다. 금년 중순의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의하면 1인당 국민소득에서 세계에서 한국은 29등이라고도 33등이라고도 한다. 유엔개발계획(UNDP) 2017년 발표에 의하면 한국은 조사 대상 189개 국가 중에서 22위에 있다. 더 높은 것을 생각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등급을 낮다고 할 수는 없다.
 
놀라운 것은 국가 전체가 경제적으로 나아졌다고 하여도, 그것이 반드시 행복한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2018년의 유엔 관계기구의 조사에서 한국인의 행복 지수는 156개국 가운데 57등이라고 한다. 이것은 더 살만한 수준의 삶을 살게 되었다는 생각이 별로 없다는 데에서도 잘 표현된다. 강연에 나오는 수치를 보건데, 1997년 이후 자신을 중간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점점 줄고, 하층계급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늘었다고 한다. 흔히들 생각하기를 이러한 계층 하락의 느낌 그리고 불행의식의 가장 큰 원인은 소득격차의 증대, 불평등의 심화 때문이라고 한다.
 
또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대부터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보 지향을 자처하는 정부라고 해서, 반드시 불평등의 감소를 가져온다고 할 수는 없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강연 이후의 토론에서 나왔던 말인데, 중요한 것은 평등 정책보다도 경제라는 것이다. 즉 경제 전체의 모습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 하는 것이 평등의 문제를 해소하는 데 핵심이 되는 것이어서, 정책적 개입으로 그것을 바로 잡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또 놀라운 사실의 하나는 불평등을 줄게 하는 국가 정책은 빈곤층의 소득증가보다도 복지제도를 튼튼히 하는 일이라는 지적이다. 사회적 균형이 확보되어 있는 나라들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은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의 국가들인데, 스웨덴의 사회연구소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인용한 것을 보면, 스웨덴과 미국을 비교할 때 시장소득의 관점에서 빈곤율은 스웨덴이 미국보다 높지만 가처분 소득의 관점에서의 빈곤율은 미국이 더 높다. 그렇다면, 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이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회 전제적으로 복지 제도를 믿을만 한 것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득주도 경제 성장’의 개념도 이러한 점에 연결하여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가 한다.
 
이러한 국제적 비교에서 중요한 기준의 하나는 경제 지표들에 못지 않게 문화적인 요인이다. 국가의 경제 수준에 비하여 사회적 신뢰도가 극히 낮은 상태에 있는 것이 한국이라는 국제적 평가를 자주 듣는다. 이것은 주로 공공기구에 대한 신뢰도에 관계되는 일이라고 해석되지만, 더 일반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또 그것은 공동체의식의 소멸에 관계된다고 할 수 있다. 이것도 소득격차에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의 공감대를 옅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연민, 공감, 이웃에 대한 의무 등 사라져
 
소득격차에서 오는 소외감 그리고 공동체 의식의 약화는 인생의 의미에 대한 믿음이 약화된 것에도 관계된다고 할 수 있다. 절대적 빈곤을 넘어 불평등, 특히 소득격차가 사람들의 불행의식을 심화시키는 것은 나의 인생을 지나치게 다른 사람의 삶에 비교하는 데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상대적 빈곤 또는 불평등이나 소득격차의 문제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소득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신적 가치의 관점에서 재조정 될 수도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검소한 삶은 경제적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정신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은 검소한 삶이기 쉽다. 이것은 과시소비가 환경 파괴에 연결될 수 있는 오늘의 세계에서 다시 중요해지는 사회의 덕성이라고 할 수 있다. 불평등, 그보다 소득 격차는 정의의 문제, 공정성의 문제라는 관점이 있다. 그리하여, 그것은 분노하여야 마땅한 일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다시 말하건대, 절제된 삶의 문제이기도 하고, 또 연민, 공감, 또는 이웃에 대한 도덕적 의무 의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금전 위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부드러운 덕성의 주제는 완전히 사라져 버리곤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것들은 여기에서 간단히 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삶의 문제는, 비록 그 사회적 조건에 관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보다 넓은 관점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정책이나 정부 조처는 보다 넓은 사회적 전망- 많은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전망에서 나오고, 또 보다 넓은 선택지에서 고른 것이어야 한다. 오늘날 거론되는 정책 사항들은 구호에 비슷한 단편적인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여기의 이야기들은 잠과 꿈의 해석- 그리고 그것이 말하여 주는바 좁은 관점을 떠나 포괄적이고 무르익은 생각이 나오는 과정을 되돌아보다가, 공적인 문제들도 무의식은 아니라도 의식의 넓은 폭을 배경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해 본 것이다. 여기에서 물론 그런 의식은 정책 입안자의 것이기도 하지만, 국민의 마음에 잠겨 있는 포괄적 시대 의식 또 무의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고려대 명예교수.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국문명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첫 저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 이후 『지상의 척도』 『심미적 이성의 탐구』 『자유와 인간적인 삶』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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