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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직원 900명 중 1명 꼴 임원 승진, 경영지원에 36% 편중

중앙선데이 2018.10.27 00:02 607호 14면 지면보기
[SPECIAL REPORT] 한국의 여성 임원들
‘별’을 딴 그녀들, 경단녀 10년 벽 뚫고 도장깨듯 공장 돌고
100명 중 3명.
 
여성이 주요 기업 임원에 오르는 것은 여전히 하늘의 별 따기다. 올해 상반기 기준 30대 대규모 기업집단(자산기준) 재직 상근 임원 8652명 중 여성은 280명, 3.2%에 그쳤다. 중앙SUNDAY·CEO스코어가 30대 그룹 267개사 반기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다. 10년 넘게 2%대에 머물다 지난해 처음 3%대를 넘은 것을 생각하면 진전이 없진 않았다. 다만 기업이 여성 대졸자를 공채로 채용하기 시작한 지 30년이 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미미한 수치다.
 
여성이 임원이 되는 과정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과 같았다. 남성 직원은 86명 중 한 명의 임원이 될 수 있지만, 여성은 885명 중 한 명이 임원이 된다. 이는 제조업체 등 전통적으로 남성이 많은 업종뿐만 아니라 유통업과 같은 여성이 더 많은 집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세계의 경우 전체 직원(4만1924명) 중 여성 직원이 62%(2만6137명)로 다수다. 하지만 임원 141명 중 11명(7.8%)만이 여성이었다. 신세계 여성 직원 2376명당 임원은 겨우 한 명 나온다는 계산이다. 효성의 경우 전체 직원(9904명) 중 여성이 72%(7178명)에 달하는데도 임원 88명 중 여성은 2명(2.3%)에 불과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여성 임원 가뭄의 일차적 원인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된 레이스’로 요약되는 구조적 한계다. 현재 임원에 오른 여성 중 다수는 ‘여성 공채 1세대’로 분류할 수 있는 86~95학번에 해당한다. 1985년 옛 대우그룹이 처음으로 여성 대졸자를 공채로 뽑았고 포스코(90년), 삼성(93년) 등이 뒤를 이었다. 여성 공채 1호로 진입에 성공했지만 조직 내 1~10%의 마이너리티였고, 이들을 위한 경력 관리 프로그램도 전무했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 대상 1순위는 사내커플 중 여성이었다. 상당수가 “부양자가 아니니 그만두라”는 요구에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가 됐다. 출산과 육아 부담으로 인한 중도 이탈자도 속출한다. 2016년 기준 100인 이상 기업 201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신규입사자 중 사원급에서 여성은 40.9%이지만 과장급으로 가면 27.9%, 부장급은 14.1%로 떨어진다. 임원급은 1%에 불과하다. 여성 중 다수가 고위직으로 가는 파이프라인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한국 기업 임원에 오른 여성 중 미혼 비율이 높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 여성 임원은 “여성 임원 모임에 가면 절반은 미혼, 기혼자 중 절반은 아이가 없다”고 말했다. 정확한 최신 통계는 없지만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04년 조사에서 여성 관리자의 미혼 비율은 17.8%로 3%인 남성에 비해 크게 높았다.
 
여성 임원은 자주 선망과 시기의 대상이 된다. 여성 임원에 대한 편견으로 ▶자존심이 없거나 ▶눈치가 없거나 ▶먹고살 것이 없다는 조롱이 회자하기도 한다. 외부에서 스카우트되거나 중용된 간부에게 “성비 구색 맞추기 덕에 임원이 됐다”는 시선이 덧씌워진 게 악영향을 미쳤다.
 
이은형 여성경제학회장(국민대 경영학부 교수)은 “여성 리더십에 대한 이중 잣대가 작용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여성이 기업에서 여성성을 표출할 경우 직원 호감도는 높지만, 리더십·책임감을 발휘하는 데 부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대로 남성성을 발휘하면 ‘일은 잘하지만 억세다’ ‘대인관계를 잘하지 못한다’는 말을 듣는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여성 임원의 커리어의 특징도 드러났다. 공채로 입사해도 가정과 일 균형 잡기가 보다 수월한 직종(외국계 회사 등)으로 옮기거나 유학을 떠난다. 여성 임원은 경력으로 이직 뒤 임원에 오른 비율(58.6%)이 공채로 입사한 비율(34.5%)보다 높았다. 졸업 대학이 추적되는 여성 임원 178명 중 서울대(19.1%), 연세대(18%), 이화여대(14%) 출신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여성 임원 편중 현상도 주목할만하다. 이번 조사에서 여성 임원의 36%가 경영기획지원 부문 소속인 것으로 나타난다. 핵심 부문인 재무 관련 임원(2.3%), 실적과 직결된 영업 부문(17.3%) 임원은 적었다. 여성 재원 선발과 초기 배치에서 발생한 차별이 임원이 될 때까지 이어진 결과다. 최고경영자(CEO)가 되기 위해서 재무·회계· 영업 등을 경험하며 이력을 쌓는 데 비해 여성은 한곳에 계속 머무르는 ‘유리벽’ 현상에 갇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최고위층까지 ‘핑크 게토(Pink Ghetto)’에 갇히는 것이다.
 
기업 내 리더십 성불균형으로 손해를 보는 것은 우선 해당 기업, 나아가는 사회 전체다. 한국은 각종 경제 성 평등 지수에서 처참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CGI)에서 한국은 올해까지 6년 연속 꼴찌다. 지난해 글로벌 회계법인 딜트로이트가 44개국 대상으로 기업 이사회의 여성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43위(2.5%)를 차지했다. 한국보다 여성 이사 비율이 낮은 국가는 아랍에미리트(2.1%)가 유일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해 한국을 찾아 “노동시장에서 성차별 해소시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10%가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맥킨지는 한국이 성 평등 문제를 해결하면 2025년 GDP 9%가 증가할 것으로 본다. 다만 이는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강민정 여성노동연구센터장은 “52시간 근무제, 워라밸 등 한국 기업이 여러 변화를 겪고 있지만, 여성 인재를 잘 키우고 관리하는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 있다”며 “인재에 대한 확실한 철학을 갖고 장기적 단기적 처방을 동시에 내리지 않으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지금과 같은 모습일 것”이라고 말했다.
 
승진 막혀 주임 10년
끈기 있게 버텼다
진달래 롯데칠성음료 상무 
진달래 롯데칠성음료 상무

진달래 롯데칠성음료 상무

롯데칠성음료 품질안전센터 진달래(48) 상무의 직장 생활은 ‘전례 깨기’로 요약된다. 1993년 부산대 환경공학과 4학년 재학 중 삼성·LG·롯데 그룹에 동시 합격해 ‘꽃길’을 기대했다. 하지만 롯데칠성에서 25년은 구구절절, 파란만장했다.  
 
입사 3년 만에 동기 40명 중 가장 먼저 주임을 달 때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후 10년 인고의 시간이 이어졌다. 여성 과장은 ‘전례가 없다’며 승진이 막혔다. 함께 들어온 유일한 여성 동기는 입사 1년 만에 결혼으로 퇴직해 고민을 공유할 사람은 없었다. 누구도 고착된 구조를 바꿔주진 못했다. 그래도 웃으며 다녔다. 롯데칠성 주요 공장 3곳(양산, 대전, 경기 광주)을 ‘도장 깨기’처럼 돌았다. 그가 귀신같이 불량을 골라낸다는 평판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잘 지냈지만 가끔은 사달이 났다. “내 커피 타면서 다른 사람 커피도 탈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모두 컵을 씻지 않고 쌓아두는 것이에요. 나보고 하라는 말이죠.” 진 상무는 날을 잡아 모든 컵을 버렸다.
 
여성 핸디캡에서 진 상무를 구한 것은 끈기다. “시대가 어떻게 바뀔지도 모르면서도 그냥 승진 시험은 다 봐두었어요. 제도가 없는 것은 그렇다 해도 ‘자격이 안 된다’는 말은 죽기보다 싫잖아요.”
 
롯데칠성 대전 식품안전센터 초대 센터장을 하면서 진 상무에게 결정적 기회가 왔다. 먹거리 품질 기준에 대한 관심이 커질 때라 그룹 일까지 센터로 몰렸다. 2005년 ‘여성 임원을 키워야 한다’는 그룹 정책이 본격화됐고 진 상무는 2007년 대전 공장에서 매니저를 달았다. 2014년 입사 동기 중 가장 먼저 상무가 됐다.
 
잘 나가는 유럽 대신
동남아 시장 뚫었다
송명주 삼성전자 상무 
송명주 삼성전자 상무

송명주 삼성전자 상무

139명. 1993년 3월 삼성그룹이 처음으로 남녀 동시에 뽑은 공채 중 여성 숫자다. 전체 지원자 1만1600명 중 13%(약 1500명)만이 여성이었다. 이화여대 과학교육학과를 졸업한 송명주(48)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상무는 남녀 차별 없는 채용 소식에 삼성을 택했다. 그러나 남성 위주의 업무 시스템이 하루아침에 바뀔 순 없었다. 송 상무는 “입사하고 보니 여사원은 대졸 특채이거나 주부 사원이 전부였다. 이마저도 소수라 공채가 들어오면서 여자 화장실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송 상무는 맡은 업무의 틀을 바꾸는 방식으로 입지를 키웠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3년 외국인 인재가 모인 글로벌전략그룹(GSG) 지원을 맡았을 때다. 이곳은 이건희 회장이 프랑스 최고 권위 훈장인 ‘레종 도뇌르’를 2004년 수상하면서 세계적으로 부각됐다. 프랑스 르몽드에 수상 소식과 함께 삼성 GSG를 소개한 기사가 실린 것이다. 이 소식은 다시 국내 언론에 소개됐다. 이 일을 맡았던 송 상무도 이름을 알렸다.
 
2009년 해외에서 근무할 기회가 찾아왔다. 모두 수출시장이 발전한 유럽을 선호할 때다. 송 상무는 그들과 경쟁하기보다 틈새를 택했다. 베트남·태국·미얀마 등 동남아 시장을 진두지휘하는 싱가포르로 갔다. “에어컨 판매량을 늘리는 게 제 임무였죠. 수요가 많고 성장 잠재력이 큰 동남아 시장이 매력적일 것으로 봤으니까요.”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사시사철 무더운 동남아 날씨에 맞춰 난방 기능을 없애고 가격을 낮춘 에어컨을 선보였더니 판매량이 급증했다. 그는 2013년 동남아 성과에 힘입어 부장에서 상무로 승진했다. 당시 남아있던 입사 동기는 10여명에 불과했다.
 
공채 1호 프리미엄
똘똘 뭉쳐 해냈다
이유경 포스코 상무 
이유경 포스코 상무

이유경 포스코 상무

포스코 설비 자재구매 실장인 이유경(51) 상무는 89년 여름 포스코 여성 대졸자 모집 공고를 보고 두근거리던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고려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당시 유일하게 여성을 뽑던 대우그룹 공채 시험에서 한 번 고배를 마신 뒤였다. 한국IBM에서 근무하던 중 공고가 떴다. 여성 동기 49명과 함께 ‘포스코 여성 공채 1호’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 중 12명이 아직 건재하다. 똘똘 뭉쳐 함께 왔다. 그는 “아마 혼자였으면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입사 당시 여성 직원들도 뭘 잘 몰랐지만, 회사도 구체적 계획이 없었다. 여사원 유니폼을 입으라고 할 때 모두 함께 항의했다. 그래도 몇 년은 입어야 했다. ‘보기에 좋다’는 이유였고 간부들은 ‘회사에서 다 해 주는데 왜 싫은지’ 되물었다. 형평에 맞지 않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막 진입한 여성의 몫이었다.
 
1호라는 상징성에 주목하는 사람이 많았다. 부담이기도 하지만 좋은 점도 많았다. 1호 여성 공채는 모든 업무에 지원 가능했고 수평적 이동이 가능해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게 한 것이 그중 하나다. 이 상무만 해도 수출 업무를 담당하다 설비 매각 업무로 옮길 수 있었고 이후 원료 구매 그룹장도 해 보았다. 2014년 포스코 첫 여성 상무에 오를 수 있었다. 이 상무는 “1호 타이틀은 부담스럽지만,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 상무가 버틸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원동력은 가족의 전폭적 지원이다. 아이 넷을 키우면서 친정과 시댁에 의존했다. 그는 “해결하지 못할 일을 집에 가져가지 않는 게 비결”이라고 말했다.
 
사용자 경험 전문가
기술로 승부를 냈다
김효린 현대자동차 이사
김효린 현대자동차 이사

김효린 현대자동차 이사

전산·편집 소프트웨어·스마트 폰·자동차. 현대자동차 제품 UX 기획실 김효린(48) 이사가 그동안 매만져온 품목이다. 제각각으로 보이지만 당대 가장 눈에 띄는 기술, 플랫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 이사가 사용자 경험(UX) 분야에서 손에 꼽히는 전문가다.
 
그는 연세대 전산과학과 4학년 재학 중(1992) 삼성그룹 첫 여성 공채 모집에 지원해 삼성SDS에 배치됐다. 직장 생활 6년 반을 해보니 “공부를 더 하지 않으면 장기적 경쟁력을 키울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99년 사표를 냈다. 뉴욕대학교에서 석사를 마치고 컨설팅 회사에서 경력을 쌓고 실리콘밸리로 다시 떠났다. 어도비 시스템스에서 근무하다 육아 등의 문제로 2008년 귀국했다. LG전자 모바일 사업부를 거쳐 2014년부터현대자동차 연구개발본부로 옮겨 일하고 있다. 현대차 여성 임원 2명 중 1명이다.
 
그는 “다른 일하는 여성과 마찬가지로 친정 옆에서 ‘비비며’ 전적으로 가족의 도움을 받았다”며 “받을 수 있는 도움은 다 받는다는 주의”라고 설명했다. 여성이라는 점, 워킹맘이라는 점이 “결과적으로는 커리어에 해가 되진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나고 보면 가족들이랑 같이 잘 견뎌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순탄함엔 기술 연구 분야의 특성이 작용했을 수 있다. 김 이사는 “흔히 현대차 기업 문화는 ‘상명하복’이라고 생각하지만 기술 부문에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의견일치 없이는 제품을 제대로 작동하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무조건 밀어붙일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서로 얘기를 듣고 합의하는 문화가 상대적으로 잘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적 남성 직장
일할 땐 남자가 됐다
안옥경 SK에너지 상무 
안옥경 SK에너지 상무

안옥경 SK에너지 상무

‘낯섦과 못 미더움.’ 2001년 안옥경(50) SK에너지 상무가 과장으로 처음 출근했을 때 회사 분위기였다. 회사 내 여성 과장은 처음이었다. 당시 화학·에너지업계는 주로 화학공학이나 법학 전공자를 뽑았다. 1990년대 중반까지 여성의 관련 학과 진학률은 미미했다. 전통적으로 남성 직장이라고 여겼던 곳에 안 상무가 과연 적응할 수 있을지 시험하는 분위기였다. 더욱이 그는 화학업계에 대한 기본 지식이나 경험이 없었다. 연세대 응용통계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갤럽을 거쳐 현대경제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했다. SK그룹이 계열사 전체 데이터 통합 시스템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스카우트된 것이다.
 
못 미더운 눈초리를 바꾸기 위해 안 상무는 일 할 때 남자가 됐다. “팀장이나 팀원이 흡연실에 들어가면 한참이 지나도 안 나와서 들어가 봤더니 담배를 피우면서 회의에서 못다 한 얘기를 나누고 있더라고요.” 그 뒤로 안 상무는 비흡연자인데도 흡연실을 자주 찾았다. 그는 “저 자리에 끼지 못하면 이방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회식 자리도 빠지지 않았다. ‘치마입은 남자’를 자청했다. 이는 에너지 관련 사업을 익히는 것은 물론 회사 돌아가는 상황은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특히 승진과 거리가 먼 부서를 맡았을 때도 묵묵히 해냈다. 이런 모습에 상사나 팀원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안 상무는 올해 업계 첫 여성 물류경영실장이 됐다. 그는 기존 남자 임원이 해왔듯이 전국에 흩어져있는 11곳 물류센터를 다니고 있다. 한 달에 2~3번은 물류센터 직원들과 저녁을 먹으며 어려움이 없는지 살핀다.
 
신간 무조건 사 읽고
공감 능력 키웠다
이상진 대홍기획 상무 
이상진 대홍기획 상무

이상진 대홍기획 상무

“광고주에게 남자처럼 접대하지 않았다고 잘린 적이 있다. 그런데 그들보다 내가 오래 업계에서 버티고 있다.”
 
이상진(46) 대홍기획 상무의 회고다. 그는 1994년 여름 인턴 채용 공고를 보고 독립 광고대행사 웰콤(현 웰콤퍼블리시스월드와이드)에 광고기획자(AE) 들어갔다. 굳이 광고장이의 길을 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인턴 생활을 마치고 잡은 첫 직장은 대기업 홍보팀이다. 부서에 여자는 혼자였다. 10년, 20년 뒤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안 갔다. 사보 몇 번 만들다 결혼하게 되면 집으로 떠밀려 갈게 보였다. 고민 끝에 인턴 생활을 한 웰콤에 연락했다. 다시 가도 되느냐고. 그렇게 광고업계에 발을 담궜다. 2012년 신동빈 회장에게 스카우트 돼 대홍기획으로 옮겼다. ‘소주는 여자 모델, 맥주는 남자 모델’이라는 주류 광고 공식을 깨고 물 타지 않은 맥주라는 차별점을 강조한 클라우드 맥주 광고가 그의 작품이다. 2014년 말 정기인사에서 상무가 됐다.
 
여자 AE를 꺼리는 광고주를 만나기도 했다. 광고를 빌미로 접대를 받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여자는 기피 대상이다. 접대를 하지 않았더니 이 상무를 자른 광고주도 있었다.
 
그렇다고 자신을 바꾸진 않았다. 대신 공감 능력을 키웠다. 이 상무는 “인맥은 관리하는 게 아니라 관계 맺기”라고 말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려면 공감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신간이 나오면 무조건 읽고 크리에이티브를 붙여 대화를 풀어낸다. 이 상무는 광고주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파악해 해당 분야의 책이 나오면 선물하고, 전시회 표도 보낸다. 그는 “특히 명절에 보내는 단체 문자는 금물”이라고 말했다.
 
이직 4번 징검다리
다양한 경험 쌓았다
박명희 한미약품 전무 
박명희 한미약품 전무

박명희 한미약품 전무

LG생명과학 포함 바이엘·화이자·머크(MSD) 등 세계적인 제약사들의 한국 법인까지 4번의 이직. 박명희(49) 한미약품 전무의 화려한 프로필이다. 그는 “이직이 정답은 아니지만 새로운 경험을 쌓고 영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그에겐 꿈을 찾기 위한 ‘자발적 이직’이었다. 덕성여대 약학과를 졸업한 뒤 약사가 됐던 그가 마케팅 전문가로 변신할 수 있었던 비결도 새로운 분야의 도전이었다.
 
1995년 LG생명과학에 입사한 그는 약사 경험을 바탕으로 제네릭(복제약) 허가나 해외 약품 도입을 검토하는 일을 맡았다. 하지만 제한된 공간에서 연구하는 일은 답답했다. 제품 효능을 분석한 뒤 전략을 짜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마케팅에 눈길이 갔지만, 진입의 벽은 높았다. 고대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밟으며 기회를 살폈다. 2000년 세계 1위 제약사인 화이자의 한국법인 프로덕트매니저(PM)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비아그라 마케팅을 맡은 그는 비뇨기과 전문의들과 함께 연극 ‘다시 서는 남자 이야기’를 기획해 화제가 됐다. 그는 “발기부전 치료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의사와 상담해야 한다는 캠페인 식 연극이었다”고 말했다. 발기부전 치료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홍보 방식으로 비아그라 판매도 덩달아 증가했다. 2005년엔 미국 제약사 MSD로 옮겨 임상 단계부터 참여해 마케팅 전략을 짜는 일을 맡았다. 신제품 성패를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 업무였다.
 
글로벌 제약사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이 빛을 발휘한 곳은 한미약품이다. 2011년 그룹 내 마케팅 이사로 스카우트 된 뒤 상무를 거쳐 올해 전무로 승진했다. 
 
주경야독 ‘악바리’
고졸 벽 허물었다
황미영 교보생명 상무
황미영 교보생명 상무

황미영 교보생명 상무

황미영(57) 교보생명 상무의 임원 도전기는 남다르다. 상고를 졸업하기 전 교복 입고 보험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스물한살에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뒀다. 당시에 다른 선택을 하거나, 계속 다니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전업주부로 10년을 보낸 뒤 교보생명에 설계사로 재취업했다. 경단녀가 갈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이후엔 스스로 ‘악바리’라고 할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설계사 출신으로는 처음 지점장이 됐고, 주경야독으로 대학 졸업장을 따냈다. 2010년 설계사 출신 첫 여성임원 타이들도 달았다. 현재 사내 40여 명의 임원 중 여성은 그를 포함 2명이 전부다.
 
3중 벽(여성·고졸·경력단절)을 뚫고 임원이 된 것은 전적으로 그의 개인기 덕이다. 황 상무는 “없는 인맥, 길을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업무 특성상 금융감독원과 업무상 엮이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금감원은 무조건 ‘갑’이다. 통상 갑을 공략하기 위해서 동원하는 게 학맥이다. 동문을 찾아 몇 다리 건너 부탁해 담당자에게 줄을 댄다. 황 상무는 끌어들일 수 있는 학맥이 없었다.  
 
대신 무조건 인연을 만들었다. “한 번의 만남은 우연이지만, 우연을 인연으로 만드는 노력을 하면 네트워크 역시 만들 수 있다”는 게 황 상무의 지론이다. 10년 전 알게 된 금감원 직원을 업무상 관련이 없어도 때마다 챙긴다. 황 상무는 여성 임원이 적은 이유에 대해 커리어에 대한 여성의 태도도 생각해야 한다고 꼬집는다. 그는 “같이 입사를 해도 남성과 여성의 포부가 확연히 차이 난다”며 "여성이 스스로 유리천장을 규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전영선·염지현·고란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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