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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도 따로 잠도 따로… 당신도 혹시 무언가족?

중앙일보 2018.10.26 13:02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34)
한 노부부가 골목길 한 식당으로 들어섭니다. 길을 걸을 때의 모습만 봐도 부부의 친밀도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되곤 하죠. 그다지 사이가 좋아 보이지 않았던 부부는 식당에 앉아 15분째 아무 말이 없습니다. 
 
조심스레 말을 걸어보니 부부는 한집에 살지만, 말을 하지 않은 지 몇달 째, 일 년 넘게 각방을 쓰며 얼굴조차 맞대지 않습니다. 서로 외면하고 혹시라도 마주칠까 피하는 것이 일입니다. 아내는 의무감으로 식사를 준비하지만, 함께 먹지 않습니다. 일명 ‘무언 가족’입니다.
 
 
우연히 보게 된 다큐멘터리 속 부부의 모습입니다.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늘 살림을 못 한다고 꾸중 받기만 했던 시집살이, 그리고 받아주지 않는 남편에게 말 한마디 못하고 견딘 세월이 너무도 길었습니다. 돈 버느라 바빠 아내나 아이들은 제대로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어쩌다 구한 소고기는 온통 남편 몫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느라 영양실조로 손가락 마디마디가 갈라졌다는 어머니는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 3분의 1만 알아줘도 지금 이렇게 서럽지는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안 그래도 표현이 없는 남편은 점점 말이 없어집니다.
 
편하지 않은 것은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은 퇴직 후 우울증이 찾아와 매일 산을 찾습니다. 하지만 산행은 늘 혼자입니다. 가장으로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이제 와 보니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았나 하는 생각만 가득합니다. 말할 상대가 없다는 것이 제일 외롭다는 남편은 단순한 외로움을 넘어 고통이라고 합니다.
 
속내를 더 들여다보니 부부 사이에는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마음을 다치고 문을 걸어 잠근 아들이 있습니다. 아들 때문인가 생각했지만, 아들 사건은 참고 있던 아내가 등을 돌린 기폭제였습니다. 나로도 모자라 아들까지 상처받게 한 것이 아내의 화를 폭발하게 한 거죠.
 
하지만 그 이전에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딸이 세상을 떠난 순간 부부는 서로가 힘들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이렇다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 상처는 고스란히 부부에게 남았습니다. 상처는 세월에 묻혀 터지지 못하고 과거의 시간 속에 서로를 가두고 있습니다. 아물지 못하고 다친 상처로 남아 계속 아프게 합니다.
 
방송을 통한 상담을 계기로 남편은 아내에게 처음으로 긴 편지와 함께 진심으로 사과하고 마음을 열어달라고 말했다. 어느새 아내도 슬그머니 옆에 다시 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진 pixabay]

방송을 통한 상담을 계기로 남편은 아내에게 처음으로 긴 편지와 함께 진심으로 사과하고 마음을 열어달라고 말했다. 어느새 아내도 슬그머니 옆에 다시 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진 pixabay]

 
다행히 방송에서 상담을 계기로 처음으로 남편은 긴 편지를 써내려갑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차를 한 잔 타서 아내에게 갑니다. 아내에게 마음속에만 담겼던 진심을 처음으로 꺼내놓습니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마음을 열어달라고 말합니다. 부엌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남편이지만 슬며시 설거지도 해봅니다. 그리고 아내도 그 옆에 슬그머니 다시 서 봅니다. 금세 묵은 감정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조금씩 얼음이 녹아가는 듯 보입니다.
 
관계는 혼자 만들지 않죠. 너와 나 둘 이상이 만드는 것이 관계입니다. 네가 문제라 하기 이전에 나는 어떤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내와 남편은 서로에게 나의 이야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왜 알아주지 않느냐고 서운해합니다. 너 이전에 내가 무너지면 관계도 무너집니다.
 
우리는 관계가 힘들어질 때면 모든 게 상대방 때문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긴 세월을 남편 혹은 아내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참아왔던 경우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위한다는 이유로 또 때로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이유로 싫은 소리 못하고, 제대로 요구하지 못하고 참아왔던 감정은 어떤 식으로든 남아 있게 마련입니다. 상처는 외면하면 이상하게 더 커집니다. 내가 무너지면 관계도 무너집니다.
 
부부는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 시작의 생각이 잘못되어 있으면 모든 화살은 비난의 옷을 입고 상대방에게 갈 수밖에 없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관계의 법칙이 있죠. 상대는 변하지 않는다. 거울 속의 내가 웃기 위해선 내가 먼저 웃어야 합니다.
 
중학생이 된 아이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하지만 대꾸도 없는 아이를 중2병이라고 치부하고 마는 것은 아닌가 되짚어 보는 것은 어떨까. 사춘기가 되어 부모를 외면하는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관계 형성이 잘 안 된 경우일 수도 있다. [사진 픽사베이]

중학생이 된 아이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하지만 대꾸도 없는 아이를 중2병이라고 치부하고 마는 것은 아닌가 되짚어 보는 것은 어떨까. 사춘기가 되어 부모를 외면하는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관계 형성이 잘 안 된 경우일 수도 있다. [사진 픽사베이]

 
부부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SNS에서 본 사연이 하나 생각납니다. 중학생이 된 아들에게 카톡을 보내보지만 아이는 답이 없습니다. 집에 와 말을 걸어도 시큰둥하게 단답형 대화뿐 시선은 TV에 향해 있습니다. 잘해주려고 노력하는데 대꾸도 없다며 부모는 분통을 터트립니다.
 
“이거 딱 중2병이네! 중2병이야~!” 혹시 이렇게 치부하고 마는 건 아닌가요? 관계엔 맥락이 필요한데 사춘기가 되어 갑자기 아이들이 부모를 외면한다면 어릴 때부터 관계 형성이 잘 안 된 경우가 많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가 바쁘단 핑계로 별로 놀아주지 않다가 애들이 커서 대화가 통할 때쯤 되면 대화 좀 하자며 다가온다면 아이 입장에선 ‘이 사람 왜 이러지?’가 되는 겁니다.
 
댓글에는 ’아빠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생각 안 하지?’ ‘가족만 아니면 왜 참고 살겠어?’ 하는 비난의 글부터 우리 같이 더 노력해서 잘 살자는 부부의 글도 보입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글은 아닌데 나를 공격하는 글인 것 같아 혈압을 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부관계도 별 차이가 없습니다. 나도 바쁘단 핑계, 일 핑계로 귀가에 늦고 주말에도 피곤하다는 핑계가 입에 붙어있다가 어느 순간 나에게도 여유가 생겼으니 잘 지내보자고 한다고 해서 갑자기 사이가 좋아질 수 없죠. ‘이제 와서 왜 이래?’가 되는 거죠.
 
함께이기에 완성되는 부부를 위해 필요한 세 가지
1. 관계를 위해 나를 먼저 들여다보기.
 
2. 상대방을 위해 내가 먼저 변하기.
 
3. 나는 변하는데 너는 왜 금세 바뀌지 않느냐고 종용하지 않기.
 
 부부의 대화가 기억에 남았던 TV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 [사진 JTBC '효리네 민박']

부부의 대화가 기억에 남았던 TV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 [사진 JTBC '효리네 민박']

 
TV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의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집안의 불을 다 끈 채 쏟아지던 별을 바라보던 부부가 대화를 이어가죠.
 

“계속 하늘을 쳐다보니까 더 많이 보이고 더 반짝이지? 오빠, 나도 오빠가 쳐다봐 주면 더 반짝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 반짝입니다.
 
박혜은 굿 커뮤니케이션 대표 voivod701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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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은 박혜은 굿 커뮤니케이션 대표 필진

[박혜은의 님과 남] 은퇴 후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낼 집에서 자주 함께할 상대는 누구인가요? 그 상대와의 관계는 지금 안녕하신가요? 가장 가까운 듯하지만, 어느 순간 가장 멀어졌을지 모를 나의 남편, 나의 아내와 관계 향상을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강의와 코칭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고민을 바탕으로, 닿을 듯 닿지 않는 서로의 심리적 거리의 간격을 좁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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