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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진 받으며 살았다, 이젠 내가 나누어 줄 때

중앙일보 2018.10.26 09:00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19)
은퇴 후 지난날을 돌아보니 나는 늘 남의 도움을 받으며 살았다. 어머니와 친구들을 떠올리면 같은 하늘 아래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 [사진 pixabay]

은퇴 후 지난날을 돌아보니 나는 늘 남의 도움을 받으며 살았다. 어머니와 친구들을 떠올리면 같은 하늘 아래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 [사진 pixabay]

 
은퇴 후 지난날을 뒤돌아보니 나는 늘 남의 도움을 받으며 살았다. 우선 이 세상에 태어난 것부터가 부모의 덕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지만 그 대신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지금도 여성의 경제적 활동이 어려운 마당에 지난날 홀로 자식을 키웠을 어머니의 고초를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어느 정도 커 학교에 들어가선 친구들이 나의 지지대가 됐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들은 나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것도 어쩌면 친구들 덕분이다.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같은 하늘 아래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 생각해도 힘이 난다.
 
금리 연 18~25%, 집값은 쌌던 고도성장기
직장에 들어가선 또 다른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입사했던 선배가 이것저것 업무를 가르쳐주고 실수할 때는 옆에서 도와주었다. 내가 하는 일에 비해 월급도 많이 받았다. 어느 날 직장 상사에게 “우리 회사는 왜 이렇게 월급이 많으냐”고 물으니 금융회사 직원이 궁하면 사고를 칠 수가 있어 월급을 넉넉히 준다며 웃었다. 고개가 갸우뚱거렸지만, 덕분에 조기에 작은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 당시에 재형저축이란 상품이 있었는데 금리가 꽤 높았다. 연 18~25%나 되었으니 요즘과 비교하면 거의 10배에 가깝다.
 
직장에 들어갔을 땐 한창 고도성장을 할 때라 조기에 작은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 [사진 pixabay]

직장에 들어갔을 땐 한창 고도성장을 할 때라 조기에 작은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 [사진 pixabay]

 
반면 집값은 그리 비싸지 않았다. 우리 경제가 한창 고도성장을 할 때라 인력 수요도 많았다. 그러나 6·25 전쟁으로 출산율이 낮아 사람이 귀했다. 학교만 졸업하면 직장을 골라갈 수 있었다. 현재 청년세대와 비교하면 우리 세대는 큰 혜택을 받은 셈이다.
 
직장생활을 하며 결혼도 했다. 아내는 늘 일찍 일어나 직장에 출근하는 나를 위해 밥을 지어주었다. 특히 장모님을 닮아 요리 솜씨가 좋았다. 얼굴이 미인인 아내를 얻으면 1년이 행복하고 요리 잘하는 아내를 얻으면 평생이 행복하다는 얘기가 있던데 그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가정을 꾸리고 세 아이를 낳았다. 아이들도 무럭무럭 잘 커 주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 ‘아, 내가 벌써 학부형이 되었구나’ 하며 감동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아이들은 늘 즐거움을 주었다. 돌아보면 사회생활을 하며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는 동인이 되었다. 아마 생을 살며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30년 가까운 직장생활을 마치고 퇴직할 때 회사에서 적지 않은 퇴직금을 받았다. 이 돈은 내가 인생 2막을 살아가는데 종잣돈이 되었다. 자발적인 퇴직이어선지 회사의 처우가 고마웠다. 그동안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집도 한 채 사고 아이도 기르고 했던 것들이 직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퇴직한 후반생은 그동안 사회에서 받은 것을 일부나마 돌려줘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지역 사회에 기여할 바를 찾아보았다. 매체를 통해 영국에 U 3A라는 시니어 대학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곳에선 ‘내가 아는 것은 가르치고 모르는 것은 남에게 배운다’는 간단명료한 교육원리로 운영되고 있었다. 우리 지역에도 그런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학생이 선생 되고 선생이 학생 되는 학교
‘아름다운 인생학교’ 심리학 강의를 듣는 노년 수강생들. 이들은 자신의 현장 경험 혹은 특기를 살려 강사로 나서기도 한다. 누구의 후원도 받지 않고 시민들 스스로가 세운 교육 커뮤니티다. [중앙포토]

‘아름다운 인생학교’ 심리학 강의를 듣는 노년 수강생들. 이들은 자신의 현장 경험 혹은 특기를 살려 강사로 나서기도 한다. 누구의 후원도 받지 않고 시민들 스스로가 세운 교육 커뮤니티다. [중앙포토]

 
5년 전 이웃들과 분당에 ‘아름다운인생학교’를 개교했다. 누구의 후원도 받지 않고 시민들 스스로가 세운 교육 커뮤니티다. 이곳에서는 선생이 학생이 되고 학생이 선생이 되기도 한다. 스페인어 선생이 요가반에서 학생이 되고 요가 선생이 스페인어 반에서 학생이 되는 경우다. 나 역시 자산관리를 가르치며 다른 반에서 악기를 배운다. 주로 선생에게 학생이 배우지만 선생이 학생에게 배울 때도 있다. 
 
어느 날 강의를 듣던 학생이 자신도 사례를 하나 발표하겠다며 그의 모친 이야기를 전했다. 할머니는 과일을 살 때 좋은 것을 고르는 것이 아니고 일부러 작고 볼품없는 과일을 골랐다. 그 모습을 보던 과일 장사가 반값만 받겠다고 했지만, 할머니는 제값을 다 지불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고개가 숙여졌다. 생을 살며 늘 크고 좋은 것만 골랐지 할머니처럼 남을 배려하지 못했다. 아름다운인생학교에선 이렇듯 학생에게도 배운다.
 
이런 지식 나눔 운동이 알려지며 여러 곳에서 아름다운인생학교를 견학 왔다. 지난달에는 싱가포르에 있는 U 3A 운영진이 다녀갔다. 10월에는 보건복지부와 KBS가 공동주관하는 ‘2018 대한민국 나눔 국민 대상’을 받았다.
 
노인이 돌아가시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인생을 살며 얻은 지혜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은퇴한 사람의 경험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러한 지혜를 주위에 나누어주고 싶어 한다. 지역 곳곳에 아름다운인생학교와 같은 커뮤니티가 생겨 세대를 통해 지혜가 전해지고, 나이 든 사람과 젊은이가 함께 어울리는 세상을 꿈꾸어본다.
 
백만기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 manjo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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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기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 필진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 누구나 한번은 겪게 되는 죽음. 죽어가는 사람의 소원은 무엇일까. 의외로 돈 많이 벌거나 높은 지위 오르거나 하는 세속적인 것이 아니다. 생을 살며 ‘조금만 더’ 하며 미뤘던 작은 것을 이루는 것이라고. 은퇴 후 인생 2막에서 여가, 봉사 등 의미 있는 삶을 산 사람이 죽음도 편하다고 한다. 노후준비엔 죽음에 대비하는 과정도 포함해야 하는 이유다. 은퇴전문가가 죽음에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는 방법과 알찬 은퇴 삶을 사는 노하우를 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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