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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복 연애소설> "너 날 좋아하냐?" 그녀가 물었다

중앙일보 2018.10.26 08:00
[일러스트 이정권 기자]

[일러스트 이정권 기자]

제5화 

음식은 우선 탕수육과 유린기, 가지볶음을 주문했다.

주문을 받은 종업원이 메뉴를 확인하고 돌아서려 하자 그녀가 말했다.

"술은 안 시켜요?"

"아, 시켜야죠. 뭘로 할까요?"

그녀는 연태고량주를 시켰다. 내게 물어보지도 않고.

그러면서 얼핏 회상에 잠기는 표정이었다. 나는 모른 척하며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일어섰다.

자리로 돌아왔지만 분위기는 시작과는 달리 가라앉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러면서 그녀는 종업원을 불러 술을 먼저 달라고 했다. 술과 함께 땅콩, 생양파, 짜사이가 나왔다.

"연태고량주, 저도 좋아하는데... 무엇보다 가성비 최고죠."

나는 분위기를 돌려보려고 애썼지만 그녀는 좋게 말해, 점점 차분해 지고 있었다.



건배가 촌스럽다고?

그녀는 말없이 나에게 잔을 건네며 술을 부어주었다. 상사가 부하에게 하는 것처럼. 잔을 받고 나도 그녀에게 따라주었다.

잔을 받은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바로 한 입에 툭 털어 넣었다.

"우리가 난생 처음 마주 앉아 역사적으로 한 잔 하는데 건배라도....."

"그런 거 너무 촌스러운 거 아닌가요?"

-허걱, 건배가 촌스럽다고? 애나 어른이나 어느 자리에서든 다 하는 건데...

이상하게 어깃장을 놓는 듯한 그녀의 행동이 거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종잡기 어려운 여자다. 식당에 들어온 직후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던 그 여자는 이미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1m도 안 되는 우리 사이에 묵직한 긴장감이 축적되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맞춰야지, 별 수 있나...

이번엔 내가 그녀의 잔에 술을 먼저 따라줬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술을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혼자 잔을 채웠다. 건배를 하려고 팔을 내밀었는데 그녀는 또 혼자 마셔버리는 것이었다.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

허공에 뜬 팔을 보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아쉬운 건 나니까.

중소기업 12년 다니면서 확실하게 배운 게 하나 있다. 대한민국에서 갑 앞에서 을은 감정이 없는 동물이라고.

"술을 잘 하시나 봐요?"

그녀는 대꾸 없이 스스로 잔을 채우더니 얕은 숨 한번 쉬고는 바로 마셔버렸다. 거푸 세 잔을 마신 그녀가 입을 열었다.

"술은 각자 양껏 마시는 겁니다. 못 마시면 따라하지 마세요."

-아, 이 여자는 어떻게 날 이렇게 완벽하게 장악하는 것일까.

잘 나가는 주연 앞에서 난 대사 하나 없는 조연에 불과했다. 그런 상황을 능란하게 만들어 가는 모습이 하도 신기해 그녀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봤다.

"뭘 그리 보세요? 그래도 세 잔 정도는 마실 수 있죠?"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숙제 안 한 아이처럼 혼나는 게 무서워 나는 바로 두 잔을 비웠다.

그러고도 꽤 긴 침묵이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세상은 혼자 사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녀의 갑작스런 질문에 나는 당황했다.

"....그건 뭐....저도 기본적으론 같은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솔로인 것이 그 증거가 아닐까요? 하하하"

대충 얼버무렸지만 그녀는 준비된 듯한 말을 이어갔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고 홀로 행동하는 것, 그게 인간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외톨이를 부적응자로 낙인찍지만 그거야말로 편견이죠. 인간은 혼자고, 그래서 외로운 동물인데 사회성이란 탈을 쓰고 아닌 척 할 뿐이죠. 저는 글 잘 쓰는 사람 다음으로 일이든 놀이든 혼자 척척 잘하는 사람이 좋아요. 요즘은 점심메뉴 하나도 정하지 못해 쩔쩔매는 결정장애자들이 많다고 하데요. 그런 사람은 내 스타일이 아니죠. 마마보이도 마찬가지고요."

나는 그녀에게 한잔 더 따라주며 물었다.

"제가 그런 사람처럼 보이나요?"

그동안 주고받은 메일로 날 그런 사람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그건 아니고 그냥 제 생각이 그렇다는 겁니다. 아, 그런데 내가 왜 이러지....제가 좀 오버했죠?"



마마보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녀의 말 중 특히 신경을 거스르는 단어가 있었다. 마마보이다. 나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주위에서 그런 말을 좀 들었다. 회사를 그만 둔 것도 그런 시각에서 보는 직장 선배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효자와 마마보이를 구분하지 못한 결과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스마트폰 렌즈를 만드는 꽤 알찬 기술회사였다. 사장님은 한국에서 기업 하는 게 점점 어려워져 6개월 내 베트남으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생산시설은 이미 90% 이상 이전한 상태였기 때문에 예고된 일인지도 모른다. 사장님은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가 법제화되면서 이제 다른 선택은 없다며 직원들에게 이해를 구했다. 어쩌면 울고 싶던 참에 정부가 뺨을 때려준 것인지도 모른다.

사장님은 물론 나에게도 같이 베트남으로 가자고 했지만 나는 병석의 어머니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내 걱정은 말고 어서 가려무나. 요즘 암환자가 어디 한둘이냐. 그리고 이미 몇년 이 병과도 친해졌으니 괜찮다."

그 말만 믿고 내가 떠나면 병세가 악화될 것임은 틀림없었다. 마흔 즈음에 홀몸이 된 어머니에게 난 유일한 자식이었다. 내게 동생을 선물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지만 잘 안 됐다고 한다. 자궁암이 그때부터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죽음은 지인에게 돈을 빌려준 게 화근이 됐다. 결국 돈도 못 받고 목숨까지 잃었으니 최악의 경우였다. 그래서 잘 생긴 외아들과 옥수동 이층 단독주택이 어머니에겐 전부였다.

베트남으로 가기 어려운 사정을 털어놓자 사장님은 무척이나 미안해했다. 세상엔 악덕 사장도 많지만 착한 사장도 많다. 어쨌든 나는 생각보다 큰 위로금을 받고 석 달 전 백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나이가 몇이에요?"

마마보이란 단어에 사로잡혀 머리가 복잡한 상태인데 그녀가 또 느닷없는 질문을 해왔다.

그녀의 질문은 대체로 엉뚱했다. 글은 그렇게 조리 있게 쓰고 논리를 중시하면서 왜 말은 뜬금없이 막하는 걸까.

"나이요? 서른여덟입니다."

그러자 그녀는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저건 또 무슨 의미지...

그녀는 자기보다 한참 아래라며 이제부터 말을 놓겠다고 선언했다.

"야, 김천, 너 날 좋아하냐? 내가 유부녀인지 어쩐지도 모르면서."

그녀의 반말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것은 우리 사이가 오랫동안 그렇게 고착돼 온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나는 순간 이 여자가 주사를 부리는 건지 호쾌한 건지 헷갈렸다.

하지만 이왕 시작됐으니 나도 술의 힘을 좀 빌리기로 했다.

"네, 좋아합니다. 아주 많이 좋아합니다. 그리고 내가 무명씨를 좋아하는 것과 무명씨의 결혼여부는 상관없는 문제입니다."

나는 18년 전 이등병처럼 씩씩하게 대답했다.

“저보다 나이가 많다고 하니 이제부터 누나라고 부르겠습니다.”

"어쭈 이 자식, 제법인데. 아직도 군인정신이 살아있는 거야?”

“네 장병장님! 밥은 잘 사주실 거죠?”

“아니, 내가 왜 장병장이야?

“군대시절 그런 꼴통이 있었습니다.”

누나는 마침내 크게 웃으며 처음으로 나와 잔을 부닥쳤다.

자신이 ‘이등병’ 하면 나는 ‘위하여’를 외치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다시 군대로 끌려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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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복 심상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