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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어질 수 없어도 사랑에 빠진다…그 이름 '팬덤'

중앙일보 2018.10.25 13:00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20) 
외줄타기. [중앙포토]

외줄타기. [중앙포토]

 
외사랑을 타고
 
외줄 하나 허공에 소리죽여 떨고 있다
어름사니는 그 떨림을 외로이 타고 논다
이쪽 계곡에서 저쪽 기둥까지
멀쩡한 발 대신 사타구니로 뛰어올라
멍든 가슴을 재담에 날리면
땅 아래 산받이는 타령으로 둥둥둥
 
살고자 여기저기 줄 대기에 바빴던 구경꾼
외줄 타는 묘기는 남의 일이 아니다
떨어질 듯 쓰러질 듯 위태로운 탄식
고달픔을 날려 보내려 마음속 외줄에 뛰어올라
마침내 징하게 외사랑을 나눈다
 
어름사니는 건너편 작숫대에 시선을 떼지 않는다
수 초의 찰라를 평생으로 여기며
점 하나에 두 눈을 아로 새긴다
뿌리내린 고요만이 오늘인 것처럼
 
팽팽하게 조여 오는 외줄의 긴장을
땅도 아니고 하늘도 아닌 신세를
땀과 눈물의 살얼음을 모두 다 떠나보내고
저 너머로 부채춤을 추며
양반걸음이다가 곰배팔이가 된다
어름사니는 오늘도 외사랑을 줄타고 논다
 
[해설] 인기 연예인 팬클럽서 출발한 ‘팬덤 문화’
BTS 공연 이틀전 시티필드 광장은 좀더 가까이서 멤버들을 보려는 '아미'들이 텐트촌을 형성했다. 팬덤은 특정한 대상인을 좋아하는 사람들 모임쯤 된다. 이런 팬덤이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바뀌면서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BTS 공연 이틀전 시티필드 광장은 좀더 가까이서 멤버들을 보려는 '아미'들이 텐트촌을 형성했다. 팬덤은 특정한 대상인을 좋아하는 사람들 모임쯤 된다. 이런 팬덤이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바뀌면서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요즘 사회현상으로 ‘팬덤 문화’라는 게 있다. 처음에는 아이돌 가수나 인기 연예인의 팬클럽에서 출발했으나 그 구성원들이 나이가 들고 정신적으로 성숙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현상이다. 팬덤은 어원적으로 특정한 대상인을 좋아하는 사람들 모임쯤 된다. 그러나 그것이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바뀌면서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우선 좋아하는 대상부터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가수나 연예인 같은 청소년들이 열광하는 대상이 위주였다. 그러나 팬덤 문화의 대상은 운동선수, 체육인, 프로팀 감독, 음악가, 시인, 소설가, 극작가, 방송인 등등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거기다가 팬덤을 구성하는 층도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 나만 해도 팬클럽이라고 하면 손사래를 쳤었다. 내 청소년기 때는 팬클럽 현상 자체가 없었다.
 
팬덤 문화는 알고 보면 아주 바람직하다. 우선 좋아하는 대상을 우상화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최고라고 여겨 남을 깎아내리는 우도 저지르지 않는다. 또 그 사람의 일면만 좋아하는 게 아니다. 생활모습 전부에 관심을 두고 그가 좀 더 바람직한 삶을 살 수 있게 응원한다.
 
공연이나 큰 행사가 있으면 소모적인 화환 대신 불우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쌀 화환을 기증한다. 대상자의 이름으로 해외자선단체에 결연을 하여 양부모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어느 지역의 땅을 조금씩 사 모아 기념공원으로 만들어 지역 사회에 기부하기도 한다.
 
팬덤 현상은 단순히 문화의 소비자로 만족하지 않고 문화를 생산하는 창조자로 참여하고픈 열망을 담았다. 우연한 기회에 나도 팬덤에 빠지고 말았다. 먼저 팬덤이라는 외래어에 적합한 우리말을 찾아보았다.
 
대상 인물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니 ‘~사랑’이란 단어가 좋을 듯하다. 사랑이란 말이 들어가는 단어가 제법 많다. 첫사랑, 풋사랑, 치사랑, 내리사랑, 짝사랑, 옛사랑, 헛사랑, 맞사랑, 늦사랑, 참사랑, 속사랑, 사랑땜, 사랑받이, 사랑쌈, 사랑옵다, 굄, 띠앗, 살님네, 갑작사랑, 외사랑 등등.
 
‘팬덤’의 우리말은 짝사랑 아닌 외사랑
팬덤의 우리말은 짝사랑이 아닌 외사랑이 적당할 것 같다. 처음부터 사랑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다는 걸 전제로 한쪽이 일방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뜻한다. [사진 pixabay]

팬덤의 우리말은 짝사랑이 아닌 외사랑이 적당할 것 같다. 처음부터 사랑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다는 걸 전제로 한쪽이 일방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뜻한다. [사진 pixabay]

 
짝사랑과 외사랑은 비슷한 의미를 나타낸다. 그러나 상대방과 사랑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서 한쪽이 다른 쪽을 흠모하거나 사랑을 느끼는 것이 짝사랑이다. 외사랑은 처음부터 사랑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다는 걸 전제로 한쪽이 일방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뜻한다. 나이나 조건 등이 애당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말한다. 그러니 서로 부담이 없다. 팬덤의 우리말로는 외사랑쯤이 적당할 듯하다.
 
안성맞춤이라는 말로 유명한 경기도 안성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안성 남사당공연장이다. 그곳에서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바우덕이 풍물단 공연이 벌어진다. 남사당놀이가 여섯 마당으로 풀어지는데 아주 흥겹고 신명이 난다. 처음에 풍물놀이로 시작해서 버나(접시 돌리기), 살판(땅재주)이 흥을 돋운다. 네 번째 마당은 어름(줄타기)인데 마당놀이의 절정이라 하겠다. 이어 덧뵈기, 덜미(꼭두각시놀음)가 흥겨운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 중 어름, 곧 줄타기 놀이는 단순한 유희가 아니었다. 줄을 타는 어름사니는 3m 높이에 9m쯤 되는 거리를 여러 재주를 피우며 왕복한다. 쇠줄 위를 종단하는 서양 줄타기와 달리 어름은 탄력이 있는 삼줄을 타기 때문에 줄 위에서 각종 뛰기나 기예를 공연할 수 있다.
 
현장에서 지켜보는 관객이 느끼는 몰입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모두가 어름사니와 하나가 되어 탄성을 지르며 손뼉 치고 손에 땀을 쥔다.
 
내가 어름사니와 하나가 된 듯한 몰입감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에서 마당극이 열리고 있는 모습. 안성 남사당 바우덕에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바우덕이 풍물단 공연이 벌어진다. [사진 안성시]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에서 마당극이 열리고 있는 모습. 안성 남사당 바우덕에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바우덕이 풍물단 공연이 벌어진다. [사진 안성시]

 
매사에 구경꾼 노릇만 해왔던 나도 어름사니의 공연에는 나를 잊고 몰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행여나 그가 줄에서 떨어질까 염려가 되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그를 응원했다. 안전장치 하나 없는 외줄 위에서 열두 가지 묘기를 하나하나 펼칠 때마다 내 애간장이 다 녹아들었다. 능청스럽게 재담을 날리면 땅 아래에서 북을 치며 받아주는 산받이가 내 가슴을 둥둥 울렁이게 한다.
 
한창 절정을 향해 달려갈 때쯤 나는 아주 낯선 체험을 하였다. 마치 내가 어름사니가 되어 줄을 타고 있는 듯한 몰입감이 몰려왔다. 사방이 조용해지며 그와 내가 각각이 아니라 한 인물이나 된 것 같은 실체감이 왔다. 놀랍거나 별로 흥분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차분해졌다.
 
그의 몸짓이 어떤 주저나 두려움 없이 줄타기에 몰입되어 기쁨을 발산하는 게 느껴지자마자 그 기운이 내게도 그대로 전달되어 나도 모르게 기쁨이 몰려왔다. 세상 걱정과 우려가 씻은 듯 사라졌다. 명상이나 좌선에서 말하는 몰입과 깨달음의 경지가 이런 것일 거다.
 
에고는 나와 남이 다르다고 생각하며, 남에게 자랑하고 인정받기를 즐겨한다. 그저 남보다 앞서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성인은 나와 남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말한다. 한 번쯤 그런 체험을 해보는 게 첫걸음이 된다고 한다. 나아가 인간과 인간 사이만이 아니라 나와 사물과도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해보라고 권한다. 인간이면 누구나 가능하다고. 과연 그럴까 하는 의심이 들지만.
 
부산 중구 용두산공원에서 열린 '2012 우리가락 우리문화' 행사에 초청된 줄타기의 명인 권원태씨의 전통 줄타기 공연 모습. 권원태 씨는 줄 위에서 느끼는 고요를 자기 삶의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부산 중구 용두산공원에서 열린 '2012 우리가락 우리문화' 행사에 초청된 줄타기의 명인 권원태씨의 전통 줄타기 공연 모습. 권원태 씨는 줄 위에서 느끼는 고요를 자기 삶의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공연을 다 보고 난 뒤 차분해진 다음 날 인터넷 검색과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주인공 어름사니에 대한 정보를 알아냈다. 그리고 장시간 그분과 통화를 했다. 그분 함자는 권원태다. 역시 예사 분이 아니라고 느꼈다. 겸손하면서도 정감 나게 대화에 응해주었다.
 
줄을 세우는 기둥을 작숫대라고 부르는데 그 역할이 중요하단다. 한번은 공연 중 작숫대가 쓰려져 어쩔 수 없이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공연을 하다 보면 줄의 긴장이 풀리기에 조금씩 작숫대를 높여 삼줄 긴장도를 유지한다고 한다. 약 반년을 병상에 누워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그 뒤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그런 헛된 감정이 에고의 분리감만 키우기 때문에 줄타기에 몰입하는 데 방해만 될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줄 위에서 느끼는 고요를 자기 삶의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한다. 시간이 정지된 느낌, 어떤 괴로움이나 두려움도 끼어들 수 없는 고요를 통해 삶의 에너지가 충만해진다고 한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하는 그에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줄 위에서도 편안한 마음이 들기까지 수십여 년의 세월이 걸렸으며 줄 탄 지 40여년이 지난 이제는 모든 게 하나가 되는 기운을 사방에 날려 보낸다는 거다. 그날그날 관객이 호응하는 대로 즉흥적으로 다른 재담을 통해 관객과 호흡하며 서로 위로하고 위안을 받는다는 거다. 나도 어제의 체험을 고백하니 충분히 이해된다고 말한다.
 
외줄의 떨림을 느끼며 몸 전체가 반응하는데 늘 깨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때 손에 쥔 부채는 균형을 잡는 데 필수품이다. 줄을 타고 건널 때 시선을 한곳에 두어야 평형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된다. 작숫대가 그 역할을 한다. 그분과 긴 통화를 하면서 나는 새로운 스승을 만난 기쁨에 한동안 사로잡혔다. 감사할 따름이다.
 
윤경재 한의원 원장 whata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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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윤경재 윤경재 한의원 원장 필진

[윤경재의 나도 시인] 시를 시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쓰기를 어려워들 합니다. 그러나 시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이든 아니든 시를 쓰면 모두 시인입니다. 누구나 그저 그런 일상을 살다가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래 기억에 남는 특별한 체험이라면 감정을 입혀 쓰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시인으로 등단한 한의사가 연재하는 시를 보며 시인이 되는 길을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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