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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족쇄 잠시 풀고 할로윈 즐기는 일본 엄마들

중앙일보 2018.10.25 07:00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7)
4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의 여자 20여 명이 모여 할로윈데이 파티를 연다. 사진은 2016년. 마감을 하고 지각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마리오 의상이었다. 오른쪽에서 세번째 마리오 의상을 입고 있는게 나다. [사진 양은심]

4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의 여자 20여 명이 모여 할로윈데이 파티를 연다. 사진은 2016년. 마감을 하고 지각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마리오 의상이었다. 오른쪽에서 세번째 마리오 의상을 입고 있는게 나다. [사진 양은심]

 
4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의 여자 20여 명이 모여 할로윈데이 파티를 연다. 할로윈데이 파티하면 젊은이가 즐기는 이벤트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도쿄에 사는 우리 아줌마 군단은 올해로 5년째를 맞이한다. 거리로 나가야 하는 거 아니냐며 서로의 모습을 보고 박장대소를 한다. 평소보다 더 웃어댄다. 웃음은 만병통치약이라던가.
 
인생 100세 시대. 우리는 은퇴 후 긴 세월을 살아내야 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건강하게 살다가 어느 날 한순간에 가고 싶다. 일본 사람 또한 마찬가지이다. 살아있는 동안 자식에게 피해 주는 일 없이 살다가 깔끔하게 저세상으로 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인지 사후에 주변에 폐가 되지 않도록 신변을 정리하고 장례식 준비까지 하는 ‘종활(終活, 슈카쓰)’라는 말이 생겼고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생전 장례식을 치르는 사람도 있다.
 
자식한테 피해 안 주고 깔끔하게 저세상으로
어찌 되었든 살아있는 동안 재미있게 살다가 가기 위해서는 노년을 맞이하기 전부터 '놀 거리'와 '친구'를 준비해 놓아야 한다. 노는 것도 놀아본 사람이 잘 놀고, 인생길을 같이 걸어줄 친구 또한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식은 내 인생을 같이 걸어갈 동반자는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어쩌면 자식은 우리 세대보다 더 살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부모와 놀아 줄 여유는 없을 것이다. 부모는 부모 대로 알아서 놀아야 한다.
 
부모는, 특히 엄마는 직업이 있든 전업주부든 자식이 대학진학을 하면 ‘아이 키우기’를 졸업한다고 해도 좋다. 삶의 축을 자식에게서 나로 돌려 자식으로부터 정신적인 독립을 하는 것이다.
 
숲속에 둥지를 튼 오색딱따구리가 먹을 것을 잡아 오자 어린 새끼는 고개를 내밀고 어미 입에서 뺏듯이 먹이를 낚아챈다. 부모는 아이한테 매달려선 안 된다. 자식이 넘어지고 깨졌을 때 돌아와 쉴 수 있는 존재로 버티고 있어 주면 되는게 아닌가 싶다. [중앙포토]

숲속에 둥지를 튼 오색딱따구리가 먹을 것을 잡아 오자 어린 새끼는 고개를 내밀고 어미 입에서 뺏듯이 먹이를 낚아챈다. 부모는 아이한테 매달려선 안 된다. 자식이 넘어지고 깨졌을 때 돌아와 쉴 수 있는 존재로 버티고 있어 주면 되는게 아닌가 싶다. [중앙포토]

 
달리 할 일이 없다고 타성에 밀려 아이한테 매달려선 안 된다. 남아있는 50여 년의 자신만의 인생을 위해서 말이다. 이때부터 부모는 자식이 넘어지고 깨졌을 때 돌아와 쉴 수 있는 존재로 버티고 있어 주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아기 새의 나는 연습을 지켜보는 어미 새처럼 말이다. 아이가 제대로 나는 법을 습득해 둥지에서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지금 대학 4학년인 큰애가 고3이었던 2014년의 일이다. 대학입시의 중요한 시기인 여름방학을 보내고도 큰 변화가 없는 아이 둔 엄마들은 초조해져 가고 있었다. 부모의 아낌없는 지원과 보호 속에서 아쉬운 것 없이 자라난 아이들은 경쟁심도 없거니와 공부에도 열중하지 않았다. 대학진학을 위해 우리가 선택한 사립고등학교의 선생님들은 입시학원 강사보다도 신용이 없었다.
 
엄마들은 속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자식을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음을 새삼스럽게 깨닫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기분전환 삼아 놀아보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의기투합했다. 그때가 10월이었고 마침 할로윈데이를 앞두고 있었다.
 
2014년 기념사진. 처음으로 핼러윈데이 파티를 열었던 해. 이때만 해도 조금은 얌전했다. 기념사진을 찍을 때에도 다들 쑥스러워했었다. [사진 양은심]

2014년 기념사진. 처음으로 핼러윈데이 파티를 열었던 해. 이때만 해도 조금은 얌전했다. 기념사진을 찍을 때에도 다들 쑥스러워했었다. [사진 양은심]

 
한국의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센터시험'은 1월에 치러져 10월 말은 부모들이 한숨 돌리기에 딱 좋은 시기였다. 벌써 재수를 염두에 두고 있는 엄마도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그만큼 일본도 누구나가 가고 싶어 하는 대학에 합격하기는 어렵다. 아이가 입시생이기 때문에 주저하는 마음이 없던 것은 아니다. 이때 파티를 열 수 있던 것은 여장부 기질의 친구 덕분이다.
 

“엄마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집에 있다고 아이들이 공부하는 건 아니야. 우리가 웃는 얼굴로 응원하기 위해서도 기분전환을 좀 하자.”

 
우리들의 연례행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엄마들끼리 돌아가며 생일 파티
2017년 기념사진. 마음에 드는 의상을 고를려면 지각하면 안된다. 맨 얼굴로 참가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이제는 기념사진을 쑥스러워하는 사람은 없다. [사진 양은심]

2017년 기념사진. 마음에 드는 의상을 고를려면 지각하면 안된다. 맨 얼굴로 참가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이제는 기념사진을 쑥스러워하는 사람은 없다. [사진 양은심]

 
또 하나의 놀이는 생일 파티이다. 서로의 생일 파티를 열어 주고 소소한 선물을 한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내 생일 챙기기를 귀찮아했던 여자들이 서로 축하해 준다. 가끔은 이쁘게 챙겨입고 가야 하는 레스토랑을 예약하기도 한다.
 
선물은 주인공의 요청에 맞게 준비하는 데 화장품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엄마에서 여자로 되살아나는 과정이다. 마치 ‘여자아이들’처럼 수다를 떨고 논다. 그리고 활기찬 얼굴로 서로의 가정으로 돌아간다.
 
2018년 올해의 할로윈데이 파티는 10월 26일에 열린다. 매해 마지막 금요일은 파티 날로 정해놓았기 때문에 다들 미리 일정을 조정한다. 그리고 카페주인인 친구의 배려로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참가할 수 있도록 점심때부터 시작해 저녁때까지 한다.
 
한두명을 제외한 모두가 직업을 가지고 있다. 가정주부, 파트타임, 계약사원, 정사원, 나 같은 프리랜서, 카페주인, 임대업. 친구들의 직업 구성도 다양하다. 화젯거리가 없어 곤란했던 적은 없다. 여자의 재능이지 싶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휴가를 받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사람은 일을 마치고 오기도 한다.
 
우리가 종종 하는 말이 있다. “나중에 나이 들면 우리끼리 셰어하우스 만들어 살까?” “그러자.” “잠깐만 그럼 남편들은 어쩌고?” “그때는 없을 거야.” 남편보다 빨리 죽겠다는 친구가 한 명도 없다. 너무 씩씩하다. 또 하나 종종 하는 말은 “누가 불러 줄 때가 좋을 때야. 거절하기 시작하면 아무도 불러 주지 않아.” 우리는 가능한 한 노는 일에서 빠지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도 깔깔대며 살고 싶으니까.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zan32503@nif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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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심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필진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 일본인과 결혼해 도쿄에 살림을 꾸린지 약 25년. 일본으로의 이주는 성공적이라고 자부한다. 한일자막 번역가이자 작가이며, 한 가정의 엄마이자 아내다. ‘한일 양국의 풀뿌리 외교관’이라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한국보다도 더 비빌 언덕이 없는 일본에서 그 사회에 젖어 들고, 내 터전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과 같은 이야기가 독자의 삶에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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