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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호 논설위원이 간다] “서울중앙지검에서 퇴직 공무원 취업 심사 받아야 하나”

중앙일보 2018.10.25 00:03 종합 24면 지면보기
김상조가 나가라해도 버티는 공정위 부위원장 울분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공정위 국정감사에 참석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지철호 부위원장(왼쪽). 지 부위원장은 8월 중순 공직자윤리법 위반으로 기소된 이후 공식 업무에서 배제됐다. [뉴스1]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공정위 국정감사에 참석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지철호 부위원장(왼쪽). 지 부위원장은 8월 중순 공직자윤리법 위반으로 기소된 이후 공식 업무에서 배제됐다. [뉴스1]

장·차관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무직(政務職) 공무원이다. 국가공무원법상 ‘고도의 정책 결정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이다. 정무직이자 차관급인 지철호 공정위 부위원장은 지난 8월 16일 공직자윤리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며칠 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부위원장에게 “정무적으로 판단해달라”는 뜻을 전했다. 사실상 자진 사퇴를 요구한 것이다. 그 이후 부위원장은 공식 업무에서 배제됐다. 대외 공식행사는 물론, 전원회의나 간부회의에도 참석하지 않고 있다. 벌써 두 달째다.  
 
지난주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위 국감에서 이 문제가 불거졌다. 야당은 위원장의 직권남용이라고 비판했다. 부위원장 등 위원은 3년 임기와 신분이 공정거래법에 의해 보장된다. 금고 이상의 형을 받지 않는 한, 위원의 의사에 반해 면직 또는 해촉할 수 없다. 지철호 부위원장은 자진 사퇴를 거부했다. 검찰 기소가 무리라는 판단과 함께 공정위의 독립성을 해치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업무 배제된 부위원장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2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3층의 부위원장 사무실을 찾았다. 벽에 걸린 역대 부위원장 14명의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이 가운데 최근 부위원장을 지낸 3명(정재찬·김학현·신영선)이 현재 구속됐다.
 
어떻게 지내나.
“그동안 바빠서 자세히 챙기지 못했던 업무 자료 보면서 정리하고 있다. 대외 활동을 못 하니 요즘엔 주로 세종시에 있다.”
 
취업심사를 받지 않고 중소기업중앙회 감사로 취업한 게 문제가 됐다.
“기소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중기중앙회에 취업한 다른 공직자 사례를 알아봤는데 다들 취업심사를 받지 않았다. 당연히 취업제한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좀 더 확실하게 해두지 그랬나.
“취업 전에 중기중앙회는 물론, 중소기업청(현재 중소벤처기업부)과 공정위에 문의해 취업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 올해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다시 확인을 요청했더니, 중기중앙회도 취업제한기관에 해당하지만 법령에 정확히 명시되지 않아 취업제한기관으로 인지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해 과태료 부과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통보를 지난 3월에 받았다. 공직자윤리위는 지난 7월 뒤늦게 법 시행령을 개정해 중기중앙회 같은 곳도 취업제한기관임을 명시적으로 규정했다. 내 취업이 문제가 된다면 이는 명백히 법률을 소급적용하는 것이다. 검찰 기소는 이해할 수 없다. 앞으로 퇴직 공무원은 취업 심사를 서울중앙지검에서 받아야 한다는 얘기냐.”
 
어쨌든 위원장이 사실상 사임을 요구했다.
“공정위의 독립성은 어떻게 되나.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는 없다. 사임하지 않겠다고 지난주 국감에서도 밝혔다. 재판 끝날 때까지 안 나간다. 공정위 안팎의 지인들로부터 충분히 조언을 듣고 결정한 일이다. 물론 임명권자의 뜻이라면 나가겠다.”
 
청와대에서 연락받은 건 없나.
“없다.”
 
공정위 내부에선 부위원장에 대한 동정론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업무 배제된 상황임에도 물러나지 않으면 결국 위원장과 조직에 부담이 된다는 우려도 있다. 공정위 고위 간부는 “부위원장의 억울함은 다 안다. 재판에서도 무죄가 나올 것으로 본다. 하지만 기소된 사람이 업무를 수행하기는 어렵다는 위원장 판단도 일리 있다”고 말했다. 여론의 싸늘한 시선 때문에 대놓고 반발은 못 하지만 검찰의 재취업 비리 수사에 공정위는 불만이 많았다. 전속고발권을 둘러싼 공정위와 검찰의 오랜 갈등이 수사의 배경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공정위 한 간부는 “공정위 압수수색 등 검찰 수사과정에서 검찰발 ‘단독 기사’가 32건이나 쏟아졌다”며 “의도적인 ‘공정위 흠집 내기’ 아니냐”고 말했다. 검찰은 8월 대기업에 공정위 퇴직자 채용을 강요한 혐의 등으로 공정위 전·현직 수뇌부를 포함해 모두 12명을 기소했다. ‘경제검찰’ 공정위가 규제 권한을 등에 업고 연봉 등 세세한 재취업 조건까지 정해가며 민간기업에 퇴직자를 보냈다는 검찰 발표에 공정위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졌다. 검찰 공소장을 보니 공정위의 재취업 비리는 2009년 정호열 위원장 당시 작성된 내부 문서를 근거로 이때 ‘계획’을 세웠고 이후 김동수·노대래·정재찬 위원장 재직 시기에 ‘실행’된 것으로 나온다. 김동수 위원장 시기 이후 결재라인에 있던 위원장·부위원장·사무처장 등이 줄줄이 기소된 이유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도 재취업 비리가 있었을까. 전직 부위원장 네 명과 통화했다. 두 명은 “없었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머지 둘은 “예전부터 있던 관행이었고, 재임 중에 나도 했다”고 말했다. 전직 부위원장 A씨는 “조직관리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며 “승진 못 한 사람을 정년까지 그냥 두면 조직은 침체되고 인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다른 부처와 달리 공정위 산하기관은 한국소비자원과 공정거래조정원뿐이다. 재취업 비리로 기소된 사람과 아닌 사람을 가른 것은 업무방해죄의 소멸시효(7년)였다. 도덕성의 잣대만으로 보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전직 부위원장 B씨는 “이번 재취업 비리가 기업에 부담이 될 정도로 너무 노골적이었던 건 문제”라면서도 “공무원은 승진을 먹고 사는 생물이다. 인사 적체 해소를 위해 과거 수뇌부 누구도 안 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공정위 1급 출신 퇴직자는 “다른 부처가 산하기관에 퇴직자를 보낸 것과 민간기업에 보낸 공정위를 비교하는 건 부적절하다”며 "잘못된 관행인 만큼 이번에 맞을 만큼 맞고 처절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김상조 위원장 앞에 무거운 과제가 놓였다. 검찰 수사로 탈탈 털리면서 사기가 떨어진 조직을 다독이는 한편, 공정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회복해야 한다. 경쟁법 체계를 38년 만에 전체적으로 뜯어고친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도 국회 논의를 앞두고 있다. 국감에선 여야가 함께 위원장의 리더십 부재를 질타했다. 하지만 공정위 안팎에선 "지금은 누가 와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 위원장은 23일 통화에서 "할 말은 많지만 종합국감(25일)을 앞두고 항변하는 것처럼 비치는 건 원하지 않는다”며 말을 아꼈다. "모든 것엔 타이밍과 수순이 있다”는 말도 했다.
 
현직 부위원장의 업무 배제라는 초유의 사태는 얼마나 더 이어질까. 전직 부위원장들은 재신임하고 업무에 복귀시키든지, 정말 문제가 있다면 면직을 시키든지 양단간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청와대의 침묵이다. 공정위 한 간부는 "이럴 거면 청와대 인사검증은 뭐하러 했나”고 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지난해 6월 취임사에서 ‘어쩌다 공무원’이 된 ‘어공’과 직업공무원인 ‘늘공’을 거론하며 이런 말을 했다. "‘늘공’인 여러분들이 전문성과 자율성에 근거하여 내린 판단을 일관되게 실행할 수 있도록 외풍을 막아주고, 그럼으로써 조직과 직원을 보호하는 것이 ‘어공’으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이다.” 경고도 잊지 않았다. "공정위는 다른 어느 정부부처보다도 더 높은 윤리의식과 청렴성이 요구된다. 우리의 자그마한 흠결 하나만으로도 사건처리의 공정성을 의심받고 조직 전체의 신뢰를 잃게 만든다.” 취임 후 1년 4개월이 지난 지금, 취임사의 어떤 말은 지키지 못한 약속이 됐고, 어떤 말은 섬뜩한 예언이 됐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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