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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서 젊은이가 자리 양보하자 눌러앉힌 노인

중앙일보 2018.10.24 09:01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8)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가사다. 바람을 바램으로 잘못 쓴 걸 고친 1절의 마지막 구절 ‘바람은 죄가 될 테니까’가 내 머릿속에서 도돌이표로 이어진다. 돌이켜보면 매우 많은 걸 갖고 살았으면서도 끊임없이 무얼 바라던 삶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도 많았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지금도 채워지지 않는 욕심 때문에 자신을 괴롭히고 남에게 못된 행동을 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봉사를 거듭할수록 내가 얼마나 많은 걸 가지고 살아왔으며 더 바라는 건 나 자신이나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행위라는 점을 깨우치게 됐다.
 
장애아동돕기 성금 마련을 위한 화천집 야드세일 모습. 너무 많이 갖고 살았다는 걸 깨닫게 한 행사였다. [사진 한익종]

장애아동돕기 성금 마련을 위한 화천집 야드세일 모습. 너무 많이 갖고 살았다는 걸 깨닫게 한 행사였다. [사진 한익종]

 
화천에 주말 주택을 마련하고 서울집을 정리하면서 많은 물건을 화천으로 옮겼다. 오랫동안 모아 놓았던 여행기념품이나 선물, 내 기호 물품, 책이며 옷가지 등 대부분이 창고 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거 그냥 가지고 있어 봐야 뭐하나 싶어 화천 집 마당에서 불우이웃돕기 성금 마련을 위해 ‘화천 야드 세일’을 열었다. 판매대금은 푸르메재단에 장애아치료, 재활기금으로 써 달라고 기부했다. 그때 느낀 점이 있다. 뭘 그리도 많은 걸 가지고 살았던가. 얼마나 풍족하게 살아왔던가. 뭘 더 바랄 것인가.


나이 들면서 스스로 이르는 말, ‘바라지 말라’
나이 들어가면서 스스로 타이르는 말이 있다. ‘자식을 포함한 젊은이에게 바라지 말라, 원하지 말라.’ 나이가 들면서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확률은 점점 줄어든다. 육체적, 정신적 능력이 점점 쇠해짐은 물론 환경이나 여건이 젊어 혈기왕성할 때와는 사뭇 다르다. 그런데 바라는 수준은 그대로이거나 혹은 더 많아진다면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불행해지는 일을 왜 하는가.
 
얼마 전 버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좌석은 전부 차 있었고 어느 정류장에서 노인 한 분이 차에 올랐다. 자리가 없는 걸 확인한 노인이 어느 젊은이가 앉아있는 자리 옆에 서게 됐다. 그런데 젊은이가 무척 피곤했는지 심하게 졸고 있었다. 고개를 앞뒤로 크게 흔들며 졸던 젊은이가 자신도 놀랐는지 눈을 뜨게 되었고 바로 옆에 노인이 서 있는 걸 보고는 벌떡 일어서려는 순간, 노인이 젊은이의 어깨를 눌러 앉히며 하는 말씀 “아냐, 젊은이 나 금방 내릴걸세.” 그러고는 뒤쪽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내가 주책이지. 왜 피곤한 젊은이 옆에 섰노” 했다.
 
순간 버스 안에 출렁이는 존경의 물결이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젊은이가 자리 양보 안 한다고 소리 높여 욕하는 노인이 많다. 오죽하면 자리 양보를 안 했을 거며 혹은 노인으로 안 보고 젊게 볼 수도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바라지 말자, 원하지도 말자.


‘더,오래 콘서트’에서 가수 션이 보낸 메시지
중앙일보 더,오래 콘서트에서 강연하는 기부천사 션. 주는 것이 행복이라는 걸 보여주는 산 증인이다. 장진영 기자

중앙일보 더,오래 콘서트에서 강연하는 기부천사 션. 주는 것이 행복이라는 걸 보여주는 산 증인이다. 장진영 기자

 
지난 11일 중앙일보 ‘더,오래 콘서트’에서 가수 션의 특별강연이 있었다. 내가 인간 천사라고 칭하는, 감동의 대상을 넘어 경외의 대상이기까지 한 션의 강연 요지를 봉사와 관련해 내 나름으로 정리해 보면 자꾸 비워주는 것 같은데 자꾸 채워지는 것 같다는 고백이다.
 
실제로 션은 바라는 것보다 베푸는 것을 더 많이 한다. 본인의 말대로 자신이 낳은 자식 4명과 세계 각지에 후원하는 아이 900명 등 모두 904명의 아이가 있다고 한다. 그는 곧 100명의 후원 아동을 더 두려 한다. 그렇게 되면 자식이 1004명이라는 얘기인데 그는 아마 천사가 되려나 보다. 내가 그를 인간 천사라고 부르는 것의 완결편이 될 것 같다. 션은 지금도 기부 천사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


주는 것 같으면서도 늘 받는 것, 봉사
푸르메재단이 지원하는 장애아동돕기 기부금 마련을 위한 젓가락으로 그린 해녀 서화전을 가졌다. 주는 것이 곧 얻는 것이라는 내 생각이 이뤄진 셈이다. [사진 한익종]

푸르메재단이 지원하는 장애아동돕기 기부금 마련을 위한 젓가락으로 그린 해녀 서화전을 가졌다. 주는 것이 곧 얻는 것이라는 내 생각이 이뤄진 셈이다. [사진 한익종]

 
그동안 취미로 그려왔던 나무젓가락 해녀 그림을 모아 얼마 전 푸르메재단 로비에서 서화전을 열었다. 푸르메재단 장애아동 후원금 기부가 목적이었다. 세상에! 내가 개인전을 다 열다니. 미술학원 근처도 못 가봤던 내가 어떻게 개인전을 열 수 있으리라 생각했겠는가. 봉사가, 기부금 마련이라는 목적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나는 실로 상상할 수 없는 보상을 받은 셈이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인기를 구가한 인생전략가이자 심리학자인 필립 맥그로는 인간의 모든 행위 뒤에는 보상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의 이론대로라면 봉사나 기부는 가진 사람이 덜 가진 사람에게 무엇을 건네는 행위인데 건네는 행위 뒤에는 무엇인가 보상이 따라야 행위가 가능하다.
 
봉사는 일방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봉사나 기부를 망설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 확실히 말하건대 봉사에는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 가장 큰 보상은 나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확신, 그것은 자존감인데 나이 들면서 삶을 지탱하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자존감이다. 봉사는 원하는 바, 바라는 욕심을 줄이거나 버리는 것이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읊조린다. 바람은 죄가 될 테니까.
 
한익종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immagic5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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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익종 한익종 푸르메재단기획위원 필진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 봉사는 자기애의 발현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만이 남에게 봉사할 수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연대가 줄면서 자존감이 떨어지는데 봉사는 나를 필요로 하는 대상을 찾아, 내 존재를 확인하게 해준다. 내 존재를 확인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봉사다. “봉사하라, 봉사하라! 오래 가려면 함께 하자”고 외치는 필자의 봉사 경험을 통해 봉사가 어렵고 거창한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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