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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중앙일보 2018.10.23 00:32 종합 28면 지면보기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 밤샘토론 앵커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 밤샘토론 앵커

‘방 탈출 카페’에 놀러 갔다가 의외의 복병과 마주쳤다는 후배의 사연을 듣게 됐다. 추락한 비행기 기내처럼 꾸며놓은 방에서 1시간 이내에 탈출하는 게임을 하는데 그만 노안(老眼)이 발목을 붙잡았다는 거다. 방 곳곳에 숨겨진 암호가 너무 작은 글씨로 쓰여 있어 도통 풀 수가 없더라나. 마침 그 자리의 참석자는 전원 40대 이상. 모두들 배를 잡고 웃으며 격하게 공감을 표시했다. 괜히 젊은 애들 노는 데 기웃거리다 욕봤다는 핀잔과 함께.
 

40~50대, 산 만큼 더 살아야 하는 ‘호모 헌드레드’의 시대
건강·돈 외에 “이 나이에 뭘” 지레 포기 않는 자세 갖춰야

문득 해묵은 ‘도시 전설’ 한 토막도 떠오른다. 첨단 의술 덕에 동안 미녀로 변신한 뒤 물 좋은 클럽에 간 40대 여성. 척 봐도 10살 이상 어린 남자가 다가와 몸을 비비대더니 명함을 건넸단다. 그걸 보려고 여자가 저도 몰래 팔을 길게 내뻗자 “헐, 나이 든 누나잖아”라며 뒤도 안 보고 도망갔다는 남자. ‘웃픈(웃기고도 슬픈)’ 상황을 빌려 제아무리 외양을 바꿔도 연식(年式)은 못 속인다는 냉엄한 교훈을 던져준다.
 
용을 써도 막을 수 없는 게 어디 노안뿐일까. 언제부터인가 친구들과의 모임은 무슨 간증 집회 비슷하게 돌아가곤 한다. 오십견이 와서 “내 팔이 내 팔 같지 않다”는 하소연부터 무릎과 발목이 시큰거려 3보 후엔 무조건 승차해야 한다는 고백까지 저마다 신체 변화와 이상 증세를 끝도 없이 털어놓는다. 이런 분위기에서 “통계상 앞으로 40~50년은 더 살아야 할지 몰라”라고 떠보면 “지금도 골골하는데 끔찍한 소리하지 말라”며 너나없이 손사래를 친다.
 
남녀 공히 기대 수명이 80세를 넘어선 지 오래다. 어릴 적 병이나 사고로 빨리 세상을 뜨는 사람들을 빼고 나면 대부분 그 이상을 산다고 봐야 한다. 얼마 전 나온 정부 자료를 보니 100세 이상 노인도 무려 4793명에 달한단다(2017년 기준). 10년 전에 비해 3배 가까이 증가한 숫자이고 10년 뒤엔 1만명, 40년 뒤엔 10만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라니 말 그대로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의 시대라 할 만하다.
 
우리나라가 ‘고령 사회’를 넘어 ‘초고령 사회’로 빠르게 나아간다는 소린 이미 지겹게 들어온 터다. 그런데 적잖은 사람들이 100세까지 살게 된다는 뉴스는 또 다른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나와 내 또래들이 지금까지 산 만큼 더 살 수도 있다는 얘기라서다. 더욱이 내 경우엔 웬만한 젊은이들 뺨칠 만큼 기억력과 근력이 쌩쌩한 할머니가 계신다. 곧 96세 생신 잔치를 치를 그 어른의 우월한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았다면 나 역시 100세 인생을 맞이할 확률이 상당히 클 터다.
 
오래 사는 게 축복이 되자면 미리미리 건강과 돈을 챙겨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전무후무한 장수의 시대를 맞아 스스로 마음가짐부터 새롭게 다잡을 필요가 있겠단 생각이 든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그저 우울해 할 게 아니라 옛날엔 30, 40년 쓰던 몸을 90년, 100년씩 쓰려니 열심히 갈고 닦고 조여야 한다고 여기자는 거다. 기계가 낡으면 부품을 갈아 끼우듯 바이오 공학의 발달로 장기나 관절도 교체해가며 쓰는 세상이 됐으니 말이다.
 
덧붙여 “이 나이에 뭘…”이라며 지레 포기도 말기로 하자. 근래에 스웨덴의 인기 작가 카타리나 앙엘만순드베리의 인터뷰를 보니 그의 아버지는 아내와 사별한 뒤 비서와 동거를 시작했단다. 새 사랑과 함께 한 92세부터 돌아가신 99세까지 7년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는 말을 남겼다니 참으로 놀랍지 않나. 은퇴 직후 협심증으로 쓰러졌다가 이후 7년 간의 체험을 『나는 일흔에 운동을 시작했다』는 책으로 펴낸 이순국 전 신호그룹 회장은 또 어떤가. 운동 효과를 입증하려는 듯 표지에 근육질 몸매를 선보인 그는 “청년 땐 못했던 턱걸이를 20분에 100번까지 한다. 나는 날마다 더 젊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다들 이 한마디를 곰곰 되새겨볼 일이다. 끝날 때까지 결코 끝난 게 아니라고.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밤샘토론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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