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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의 시시각각] 구의역 김군에게 부끄럽지도 않나

중앙일보 2018.10.23 00:20 종합 30면 지면보기
양영유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지하철 2호선 구의역은 평온하다. 그 많던 추모 포스트잇은 흔적도 없다. 하루 4만2000명이 오가는 역, 흔적은 한 군데 남아 있다. 잠실 방향 9-4 승강장. 가방에 컵라면을 넣고 다녔던 열아홉 살 김군이 홀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숨진 곳이다. 스크린도어 오른쪽 비상문에는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너는 나다”라는 글씨가 붙어 있다. “청년 비정규직은 모두 김군 같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반성의 메시지라는 게 역원의 설명. 2016년 5월 28일 비극 발생 이후 유족과 노사 측이 합의해 새겼다고 한다.
 

19살 청년 두 번 죽이는 고용세습
박원순, 시장직 걸고 규명 나서라

그 문구를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힘없고 ‘빽’ 없는 외주업체 청년의 죽음을 이용해 어른들이 탐욕의 고용세습 잔치를 벌였다는 의혹이 꼬리를 무니 말이다. 사실이라면 기회는 불평등하고, 과정은 불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지 못한 것 아닌가. 김군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서울교통공사가 어떤 곳인가. 전국 850여 개 공공부문 중 드물게 전원 서울 근무라는 매력적인 직장이다. 정직원 평균 연봉이 7000만원에 가깝다. 기본급 130만원을 받던 김군도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래며 정직원의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희생을 밟고 제 가족 잇속을 챙긴 직원이 한둘이 아니었다. 올 3월 무기계약직 1285명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직원 친인척 108명이 혜택을 봤다는 것이다. 취준생들은 “갑공직(갑자기 공기업 직원) 사회를 만드는 거냐”며 분노한다. 정치권은 “안희정은 날아가고, 이재명은 잡히고, 박원순만 남았다”는 대권주자 탄압설까지 제기하며 치고받는다. 한심한 정치권이다. 중요한 건 의혹 규명이지 정쟁이 아니다. 의혹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친인척 입사 부조리다. 전체 직원 1만7084명 중 친인척은 1912명(11.2%)이라는 게 공사의 해명이다. 업무 특성상 사내 커플(726명)이 많아 그렇다지만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친인척이 100명당 11명인 ‘씨족 공사’가 또 있을까. 더구나 조사도 엉터리다. 인사처장까지 2016년 입사한 딸과 이번에 정규직이 된 아내의 존재를 속였다. 108명도, 11.2%도 믿을 수 없는 이유다. 전수조사를 통해 입사 시기와 방법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
 
둘째, 공채 축소다. 박 시장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고 공채문이 좁아지는 건 아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사 측은 2년 내 공채 인원을 1029명 줄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월 50만원의 청년수당을 지급하며 청년 사랑을 내건 박 시장이 외려 청년 일자리를 걷어차는 게 아닌지 의문이다.
 
셋째, 과도한 노조 감싸기다. 교통공사는 전체 직원의 83%인 1만4000명이 노조원인데 그중 1만2000명이 민주노총 소속이다. 박 시장의 친노조 메시지에 따라 김태호 사장이 움직인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민주노총 해고자 대거 복직, 매년 260명 해외연수, 퇴직 전 1계급 승진이 그 예다. 이번 소용돌이에도 다음달 5일부터 연수잔치를 벌인다. 상반기 적자만 2596억원인데 말이다.
 
교통공사가 복마전에 휩싸여도 입사는 여전히 바늘구멍이다. 통과하려면 몸집을 구멍보다 더 작게 하는 수밖에 없다. 사즉생의 전쟁터다. 한데 고용세습이라니, 취준생들의 억장이 무너진다.
 
박 시장이 결자해지해야 한다. 4대 강처럼 정권 입맛에 맞춰 ‘조미료’ 감사하는 감사원에 퉁칠 일이 아니다. 국정조사를 자처하고 시장직을 걸어야 한다. 서울 살림도 불신받는데 어떻게 더 큰 살림을 꿈꾼단 말인가. “훌륭한 리더는 결과가 나쁠 때는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고, 좋을 때는 창밖을 보며 칭찬할 이를 찾는다”고 했다(짐 콜린스). 박 시장은 거울을 볼 때다. 구의역 김군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양영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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