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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고·KAIST 출신 김태형…“SF도 창극으로 만들죠”

중앙일보 2018.10.22 17:10
SF 창극 '우주소리'의 김태형 연출가. "연출을 통해 사회의 변화, 생각의 변화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F 창극 '우주소리'의 김태형 연출가. "연출을 통해 사회의 변화, 생각의 변화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창극으로 SF 작품도 만들었는데 뭘 못하겠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라도 창극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21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개막한 SF 창극 ‘우주소리’의 김태형(40) 연출은 “창극의 뿌리인 판소리는 소리로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예술”이라며 "SF를 구현하기에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2007년 데뷔한 이후 연극 ‘모범생들’ ‘카포네 트릴로지’ ‘더 헬멧’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뮤지컬 ‘팬레터’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등으로 공연계의 스타 연출가 반열에 오른 그에게 ‘우주소리’는 처음으로 도전한 창극이다. 미국 작가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단편 SF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이 원작으로, 소녀 코아티의 우주 탐험기를 그렸다. 코아티는 자신의 뇌에 자리 잡은 외계 생명체 실료빈과 함께 뭉클한 우정을 나누면서 인류를 위해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을 선택한다. 김 연출은 “주로 남성 주인공들이 맡았던 모험과 우정ㆍ희생 등의 서사를 소녀들이 끌어간다는 점에서 페미니즘 성격도 강하다”고 말했다. 
SF 창극 '우주소리' 공연 장면. 주인공 코아티(왼쪽)와 실료빈의 우정과 모험ㆍ희생을 그린 작품이다. [사진 국립창극단]

SF 창극 '우주소리' 공연 장면. 주인공 코아티(왼쪽)와 실료빈의 우정과 모험ㆍ희생을 그린 작품이다. [사진 국립창극단]

창극에 SF와 페미니즘을 결합했다.
“전통 소리에서 다루지 않았던 극단적이고 엉뚱한 주제를 찾고 싶었다. 또 SF와 페미니즘 모두 상업극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분야다. 국립창극단의 힘으로 무대에 올리면 사회적으로 더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창극을 연출한 소감은. 
“창극 배우들의 소리를 듣는 즐거움 덕에 연습하면서 재미있었다. ‘우주소리’의 작창은 출연 배우들이 직접 했다. 자신이 맡은 배역의 소리를 자신의 입에 맞게 만들어가며 노랫말을 다듬는 작업을 한 것이다. 모두 책임감과 주인의식을 갖고 소리를 만들었다. 감사하고 존경스럽다. 사실 이번 작품은 준비과정이 너무 짧았다. 처음 원작으로 정한 소설의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뒤늦게 원작을 바꾸는 해프닝이 있어서다. 주인공 캐릭터를 더 깊이 살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하지만 창극으로서도, SF로서도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에 만족한다.”
 
새로운 시도와 도전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의 삶 자체도 새로운 도전의 결과다. 한성과학고를 졸업한 뒤 KAIST에서 전기·전자 공학을 공부했던 그는 대학 3학년 때 자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들어갔다. 
“평생 공부ㆍ연구를 하며 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때까지 공부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저 남에게 지기 싫은 마음에 벼락치기로 공부하며 ‘가짜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게 삶의 방향을 급전환한 이유다. 과학고 시절부터 열심히 했던 연극동아리 활동이 그의 새 진로로 연결됐다.
 
연출작 중에서도 기존 공연의 틀을 깬 새로운 형식의 작품이 상당수다. 관객들이 현장에서 선택한 주인공과 상황으로 이야기와 노래를 만드는 즉흥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관객들이 공연으로 들어가 마치 롤플레잉게임(RPG)을 하듯 미션을 수행하는 체험극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 무대를 두 공간으로 나눠 동시에 두 개의 극을 진행하는 ‘더 헬멧’ 등에서 보여준 그의 파격적인 아이디어는 공연계의 화제가 되곤 했다.
 
새로운 형식에 특별한 재미를 느끼는 건가.
“무조건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와 잘 맞는 새로운 형식을 찾는 것이다. 이야기마다 그 이야기에 맞는 틀이 있다고 믿는다. 새로운 이야기가 있다면 형식도 새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극장에서 근사한 공연을 올릴 만한 돈과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형식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소극장에서 남과 똑같이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더 튀어 보이려고 노력했다. 관객들에게 강한 기억으로 남고 싶었고, 새로운 감각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커피숍에서 공연하는 작품, 소극장의 무대와 객석을 바꿔 사용하는 공연 등을 한예종 다닐 때부터 시도했다.” 
 
과학을 공부한 경험이 연출에 도움이 되나. 
“물론이다. ‘날라리’ 공부이긴 했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문제 풀이를 했다. 주어진 조건에 맞춰 논리적인 방법으로 답을 구해내는 과정이었다. 연출도 바로 그런 일이다. 작품 속 인물을 분석할 때도 문제 풀이의 과정을 거친다. 감정의 급격한 변화조차도 사실은 의식의 논리적인 흐름을 따른 결과다. 개연성과 논리성에 따라 인물을 표현해야 관객들도 납득한다.” 
 
대표적인 다작 연출가다. 지난 한 해 동안 연출한 작품만도 10여 편에 이른다. 작품 선정의 기준은. 
“재미있어 보이는 일이 들어왔을 때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도 있다. 1년에 작품 10편을 연출해도 1년 수입이 6000만원 남짓이다. 연 수입이 3000만원을 넘긴 지도 몇 년 안 됐다. 올 연말과 내년 초에 ‘벙커 트릴로지’와 ‘더 헬멧’ 재공연을 할 예정이고, 안무 중심인 신작 뮤지컬을 내년 중 선보일 계획이다. 대부분 대본을 먼저 쓰고 안무를 짜는데 새 뮤지컬은 안무를 먼저 짠 뒤 대본을 쓴다. 독특한 형식의 재미있는 공연이 될 것 같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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