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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망하게 한 '투자신동' 본인은 알짜 챙겨 새출발

중앙일보 2018.10.22 16:38
미국 시어스백화점을 이끌어온 에드워드 램퍼트(56) 회장은 10세때부터 주식시세표를 본 신동이었다. 뉴욕 월가에 진출한 이후, 특히 스타트업에 투자해 이익을 내는 시장에서 탁월한 실적을 올리며 25세의 나이에 운영자금이 2억 달러(약 2260억원)에 달했다.
 

美 시어스백화점 파산신청한 램퍼트 회장
10세때부터 주식시세표 본 월가 신동
7만여명 일자리 잃을 위기 처했지만
헤지펀드 통해 알짜 챙겨 재기 가능

2004년에는 헤지펀드 운영으로 연간 29%의 수익률을 올려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의 커버를 장식하기도 했다. 제목은 '차기 워런 버핏'이었다. 2005년 포브스가 산정한 개인재산이 35억 달러로, 미국 내 61위 부자에 올랐다.
 
2004년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의 표지를 장식한 에드워드 램퍼트. [사진=비즈니스위크]

2004년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의 표지를 장식한 에드워드 램퍼트. [사진=비즈니스위크]

 
돈 흐름에 대해서는 동물적인 감각을 자랑하던 그가 126년 전통의 시어스백화점을 파산으로 이끌었다. 1년 전 6달러였던 시어스 주가는 40센트대로 전락했다. 자신이 창업한 ESL인벤스트먼트를 통해 시어스 지분 50%를 확보하면서 백화점 경영에 본격 뛰어든 지 14년 만이다. 내리막길을 걷던 시어스는 결국 지난 15일(현지시간) 뉴욕법원에 파산신청서를 냈다.
 
대부분 미국 언론은 시어스가 디지털 흐름을 읽지 못하고, 월마트ㆍ아마존과 경쟁에서 참패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NYT)는 시어스 파산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램퍼트의 기업 경영능력을 꼽았다. 헤지펀드 운영자로서는 뛰어나지만, 시장 전체를 보는 큰 시야와 사람을 이끄는 리더십 등 기업인으로서의 역량은 부족했다고 분석했다.
 
일단 자신감이 지나쳤다. 백화점 경영 전문가의 조언보다는 자신의 판단을 밀어붙였다. 특히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임원에 대해서는 좌천을 일삼았다. ‘직언’을 해주는 참모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지난 2004년 시어스 백화점 인수를 선언하는 에드워드 램퍼트(왼쪽). [AP=연합뉴스]

지난 2004년 시어스 백화점 인수를 선언하는 에드워드 램퍼트(왼쪽). [AP=연합뉴스]

 
2009년 사례가 잘 말해준다. 램퍼트는 당시 아마존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샵유어웨이(ShopYourWay)’라는 소비자 데이터 분석 기법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 기법을 밀어 붙일만한 인재를 사내ㆍ외에서 구하지 못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다고 믿었다. 결국 성과를 내지 못했다.
 
램퍼트는 백화점 내 비어있는 공간에 무료 와이파이존과 PC, 안락의자를 설치해 쇼핑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무료 와이파이가 흔치 않던 시절 스타벅스가 손님을 유인하던 전략이었다. 시어스 점포 100곳에 설치했지만, 무용지물이 됐다. 램퍼트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불시에 방문하면 PC 10대 중 5대는 작동을 하지 않았다”면서 “이런 라운지 하나 제대로 밀어붙일 전략가나 점포 매니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2013년 자신이 직접 시어스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은 배경이다.
 
10년 전 30만명에 달했던 직원 수는 이제 6만8000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고, 이들마저도 곧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지만, 램퍼트와 대주주인 ESL인베스트먼트는 건재하다고 NYT는 지적했다.
 
ESL인베스트먼트가 갖고있는 시어스 홀딩스 주식의 가치는 제로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시어스의 최대 채권자이자 대주주로서 그동안 꾸준히 높은 비율의 이자와 배당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K마트와 시어스를 인수하면서 7억 달러를 투자한 ESL인베스트먼트의 지분가치는 2007년 50억 달러까지 올라섰다. ESL인베스트먼트는 대주주로서 2005∼12년 시어스가 60억 달러를 들여 자사주를 매입하게 하면서 나온 결과였다. 시어스의 전직 임직원들은 당시 60억 달러를 K마트와 시어스의 디지털 전략에 투자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파산을 면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램퍼트는 계열 분리를 통한 자본수익으로도 꽤 짭짤한 이익을 거뒀다. 2002년 랜드엔즈라는 의류 회사를 사들여 2014년 뉴욕증시에 상장하면서 ESL인베스트먼트는 2억 달러의 이익을 거뒀다. 시어스 캐나다를 계열에서 분리해 자본이익을 얻었지만, 지난해 이 회사가 파산보호 절차에 들어가면서 4400만 달러 손해를 본 상태다.
 
시어스백화점이 가진 부동산 가운데 알짜배기는 램퍼트가 따로 설립한 부동산 회사 소유로 대부분 넘어갔다는 점도 램퍼트가 건재하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월가 전문가들은 “램퍼트가 처음 시어스를 사들일 때도 정작 관심 있는 분야는 유통이 아닌 부동산이었다”고 강조했다.
 
램퍼트가 2015년에 설립한 ‘세리티지 그로우스 프로퍼티스’는 시어스 백화점 소유의 235개 점포 부동산을 사들였다. ESL인베스트먼트가 7억4500만 달러를 투자했고, 램퍼트가 이 회사의 회장이다. ‘투자의 귀재’다운 의사결정이었다.  
 
지난 15일 파산 신청하는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시어스와 K마트 점포 가운데 수익성이 좋은 400개 점포는 우리가 사고 싶다”고 밝혔다. 파산절차가 진행되면서 램퍼트의 소망대로 이뤄지면, 램퍼트는 빚 없는 시어스 부동산을 손에 쥐고 다시 새 출발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셈이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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