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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다? 죽음을 선고하는 의사도 아프다

중앙일보 2018.10.22 09:01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5)
죽어가는 환자를 밥 먹듯 보는 의사에게도 생명의 종말을 선고하는 일은 매우 어렵고 무거운 일이다. [사진 pixabay]

죽어가는 환자를 밥 먹듯 보는 의사에게도 생명의 종말을 선고하는 일은 매우 어렵고 무거운 일이다. [사진 pixabay]

 
사람이 죽는 순간을 무 자르듯 자를 수는 없다. 따라서 한 생명의 종말을 선고하는 판단은 무겁기 그지없다. 굳이 이런 얘기를 꺼낸 이유는, 의사들이 환자의 죽음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비난 때문이다. 나는 죽어가는 환자를 밥 먹듯이 본다. 하루가 멀다고 사망 선고를 내린다. 그런데 그때마다 누군가는 나를 손가락질한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며 인성이 덜된 의사라고 욕한다. 도대체 그 끝까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의사가 내리는 사망 선고는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환자의 심장이 멎기 전 전신 상태, 치료에 대한 환자의 반응 정도, 회복 후 앞으로의 예후 등을 다양하게 고려한다. 그리고 이 판단이 최선인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묻는다. 물론 의사는 신이 아니다. 정답은 모른다.
 
하지만 혹시나 섣부른 판단을 내렸을 때 잃게 되는 건, 자그마치 사람의 생명이란 건 알고 있다. 이걸로 끝이다. 하나의 우주에 종말을 고하는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이다. 누군가의 생명을 자기 손에 맡아 본 경험이 없는 자는 그 중압감을 이해할 수 없다. 당연히 의사가 사망에 운을 뗄 때는 약간의 가능성조차 사라진 이후다. 그런데 그보다 더한 끝이라니? 대체 언제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혹시 모든 보호자가 만족하는 순간일까? 심폐소생술은 의료진 네다섯 명이 묶이는 중노동이다. 시술하는 동안 응급실 전체가 멈춰 서게 된다. 다른 위급한 환자들의 치료가 중단된다. 심폐소생술에 한없이 매달려 있으면 다른 환자를 잃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가망 없다고 판단되면, 의사는 심폐소생술을 중지해야 한다. 생각해보라. 당신이 위급한 상황에 응급실에 왔는데, 의사가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심폐소생술 중이라며 당신을 치료해주지 않으면 어떻겠는가?
 
응급환자 심폐소생술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심폐소생술은 의료진 네다섯 명이 묶이는 일이라 시술하는 동안 응급실 전체가 멈춰서게 된다. 다른 위급한 환자들의 치료가 중단되는 것이다. [중앙포토]

응급환자 심폐소생술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심폐소생술은 의료진 네다섯 명이 묶이는 일이라 시술하는 동안 응급실 전체가 멈춰서게 된다. 다른 위급한 환자들의 치료가 중단되는 것이다. [중앙포토]

 
심폐소생술이 길어지면 나는 보호자를 설득할 준비를 한다.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결단이 서면, 엄숙히 선고를 내린다. 바로 그 순간이 일반적으로 환자의 사망시각이 된다. 그러나 보호자가 환자의 사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말 그대로 끝없이 심폐소생술을 계속하게 된다.
 
어린아이를 사고로 잃은 부모가 있었다. 심폐소생술이 시작된 지 한 시간이 넘었다. 인제 그만하자고 열 번 넘게 만류했지만, 보호자가 동의하지 않았다. 의료진이 멈추면 본인이 뛰어가서 가슴을 눌러댔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해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심폐소생술을 했다.
 
하필이면 새벽에 유명을 달리한 환자가 있었다.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아들이 서울에서 출발했다고 했다. 그러니 도착할 때까지만 버텨달라고 했다. 몇 시간 걸리느냐 물었더니 3시간이라고 한다. 그렇게 오래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고 했더니, 아들에게 아버지 마지막 얼굴은 보게 해줘야지 않겠냐고 한다. 사정이 딱해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심폐소생술을 했다.
 
유산이 걸려 있는 환자도 있었다. 이대로 죽으면 가족 간에 재산 문제가 복잡해진다고 했다. 어떻게든 살려달라고 했다. 시간만이라도 벌어달라고 했다. 무슨 소린지 나로선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심폐 소생술을 했다.
 
조폭들의 형님 되는 사람이 쓰러진 적도 있었다. 어깨가 우락부락한 사람들이 웃통을 벗고 협박했다. 형님을 못 살리면 나를 죽일 거라고 했다. 무서웠다. 이미 죽은 환자 때문에 내가 죽을 수는 없었다. 나 자신이라도 살려야 했기에,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심폐 소생술을 했다.
 
환자의 사연, 남은 가족들의 사연과 심정은 이해하지만 의사도 사망 선고를 내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의사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들이 노력 끝에 죽음을 선고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손가락질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닐까. [사진 pixabay]

환자의 사연, 남은 가족들의 사연과 심정은 이해하지만 의사도 사망 선고를 내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의사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들이 노력 끝에 죽음을 선고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손가락질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닐까. [사진 pixabay]

 
심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업무는 하나라도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그러나 환자의 사연만을 듣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의사를 욕한다. 그 환자를 살리려고 땀 흘리며 고생한 건 나인데, 사람들은 내가 죽음을 선고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비도덕적이라며 돌팔매를 던진다.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든 건 누구나 똑같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날마다 겪어도 무뎌지지 않는 것이 사람의 죽음이다. 누군가가 죽으면 나도 슬프고, 울고 있는 어미를 보면 내 눈에도 피눈물이 흐른다. 괴로운 건 의사도 똑같다. 다만 이를 악물고 악역을 맡을 뿐이다.
 
죽은 자를 하늘로 편히 보내주는 것도 의사 몫이기 때문이다. 죽은 자에만 매달려 살아있는 다른 환자를 잃지 않아야 하는 것도 의사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묵묵히 욕먹는 길을 걷는다. 힘들다.
 
조용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semi-m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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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수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필진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 의사는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다. 삶과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는 특히 그렇다. 10년 가까이, 셀 수 없이 많은 환자의 생과 사의 현장을 함께 했다. 각양각색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이제는 죽음이 삶이 완성이란 말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환자를 통해 세상을 보고, 글을 통해 생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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