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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주석 합치면 새 물질 생기듯 현실·가상 네트워크 ‘합금’ 활성화를

중앙선데이 2018.10.20 00:20 606호 27면 지면보기
퍼트넘 교수. [신인섭 기자]

퍼트넘 교수. [신인섭 기자]

‘서울 신도림역에만 치킨집 790개’는 한국이 각자도생의 사회적 자본 부족 사회라는 걸 드러내는 일종의 상징적 현상이다. <중앙SUNDAY 9월 1일자 스페셜리포트 2~4면>
 
미국의 경우엔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을 들 수 있다. 혼자 볼링을 치는 사람이 늘어난 게 사회적 자본이 크게 줄면서 사회적 유대와 결속이 해체된 결과란 것이다.
 
로버트 퍼트넘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가 1995년부터 사용한 표현이다. 2000년 발간한 동명의 저작인 『나 홀로 볼링』에선 사회적 자본의 감소가 정치·경제는 물론이고 개개인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쳤다는 걸 입증했다. 『나 홀로 볼링』은 곧 미국 내에서 큰 반향을 불러왔고 빌 클린턴 대통령, 조지 W 부시 대통령 등의 주목도 받았다.
 
동아시아 방문길에 서울을 찾은 퍼트넘 교수를 16일 중앙SUNDAY가 만났다. 이전 저작에서 “인터넷 그 자체가 우리의 사회적 자본의 쇠퇴를 거꾸로 돌려놓을 가능성은 적다”며 유보하는 태도였던 그가 이번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연계된 사회 운동을 두고 “희망의 중요한 조짐”이란 표현을 썼다.
 
 
사회적 자본 쇠퇴는 건강까지 영향
 
『나 홀로 볼링』에서 ‘여러분이 담배도 피우고 아무 단체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건강을 위해선 통계적으로 보아 담배를 끊든지 아니면 단체에 가입하든지 동전을 던져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자본이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를 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자본은 무엇인가.
“단순하게 말하면 사회적 네트워크다. 그리고 그게 가치가 있고 대단히 중요하다는 의미다. 건강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말이다. 네트워크 안에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밖에 있는 사람(bystander)에게도 중요하다. 범죄를 예로 들 수 있는데 서로 안다는 게 범죄를 줄인다. 내가 사는 곳 주민들은 소풍도, 바비큐도 함께 즐기곤 한다. 나는 함께한 적 없지만 주민들 네트워크 덕분에 나도 보호받을 것이란 걸 안다. 사회적 네트워크가 갖는 외부효과(externality)다.”
 
사회적 자본의 초석이 포괄적 호혜성이고 호혜성을 떠받치는 건 사회적 교환의 조밀한 네트워크라고 했다. 그게 신뢰를 키운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엷은 신뢰(thin trust)’란 표현을 썼더라.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한 신뢰다. 이 신뢰 역시 중요한데 만사를 의심하지 않고 생활해나갈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사회적 자본을 연구한 적이 있는데 남부의 신뢰 수준이 낮았다. 아무도 서로 믿지 않았다. 그러니 늘 확인했다. 식료품상에게서 받은 거스름돈을 다시 세곤 하더라. 엷은 신뢰도가 높은 경제가 훨씬 더 효율적이다.”
 
사회적 자본의 쇠퇴에 따른 폐해는.
“미국을 예로 들면 지난 50년간 살기 불쾌한 곳이 되어갔다. 좀 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자기애에 빠진 사회가 됐다. 다른 사람을 못 믿으니 내면에만 집중하고 더 양극화됐다. 그 결과 대부분 미국인이 ‘미국이 끔찍한 상태(terrible shape)’라고 여긴다.”
 
2000년엔 가상의 사회적 네트워크에 유보적 입장이었다.
“당시는 인터넷 혁명의 아주 초기 단계였다. 지금도 초기지만. 페이스북을 포함, SNS를 둘러싼 논쟁이 있는데 현실의 사회적 네트워크와 가상의 사회적 네트워크 중 어느 게 중요한가다. 나는 그릇된 논쟁이라고 보는데 사회적 네트워크는 부분적으론 가상이고 부분적으론 현실이다. 금속학의 ‘합금(alloy)’과 비슷하다. 구리와 주석을 섞으면 구리도 주석도 아닌 새로운 물질(청동)이 만들어지듯 말이다. 페이스북을 예로 들겠다.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설립자이자 CEO)의 룸메이트가 내 수업을 들어, 내 수업이 페이스북의 베타 테스트의 장이 됐다. 그 덕분에 나도 페이스북 가입자가 됐는데 순서를 매긴다면 ‘페이스북 006’ 정도 될 만큼 정도로 초기였다. 당시 페이스북 친구는 진짜 친구였다. 지금은 다르다. 최근 베를린의 한스란 이가 친구 요청을 했던데 일면식도 없다. 대문자 F로 시작하는 친구(페이스북의 친구란 의미)가 소문자 f의 친구(현실의 친구)일 필요는 없다. 현실의 친구가 늘면 건강해지고 행복해진다. 한 연구자에 따르면 21명일 때까지 그렇다. 페이스북 친구는 한 명 더 는다고 행복감이 증가하진 않는다.”
 
 
미국은 함께 살기 ‘불쾌한 상태’
 
가상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현실의 네트워크를 대체할 수 없다는 말인가.
“대체재가 아닌, 네트워크에 도움이 되고 네트워크를 증진하는 수단이란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일종의 합금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여성들이 시위했다. 수백만 명이 워싱턴에 모였다. 여기까지는 페이스북 등 가상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작동했다. 그러다 서로 얼굴을 보곤 진짜 친구가 됐다. 보스턴·피츠버그·LA 등에서도 이 같은 새로운 친선 관계가 만들어졌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대학 교육을 받은 30~70대 여성들 사이에서 강한 움직임이 있다. 이들은 투표를 더 할 뿐 아니라 문도 더 두드린다(knocking on a door·연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의미). 이게 『나 홀로 볼링』 이후 나타난 미국 정치에서의 중요한 전개다. 인터넷은 이런 게 시작될 수 있도록 하는 데 결정적이었다.”
 
이런 흐름이 사회적 자본의 고갈 추세를 되돌릴 정도로 강력하다고 보나.
“그렇다. 물론 매우 어려울 것이다. 20세기를 되돌아보면 1900년 미국은 굉장히 불평등한 사회였다. 60년대까지 점차 평등해졌다가 70년 이후 다시 평등도가 내려갔다. 이제는 다시 대단히 불평등한 사회가 됐다. 문제는 계속 나빠질 건가인데 꼭 그런 건 아니라고 본다. 1910년에도 흐름을 바꾼 적이 있기 때문이다. 1, 2년이 아닌 10년, 20년 걸릴 수도 있다. 최근 여성운동은 희망의 중요한 조짐이다. 더 연결하고 더 신뢰하고 더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 역사의 방향은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사회적 자본가라면 무엇을 해야 하나.
“이웃과 친구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사회적 자본엔 나와 같은 부류와의 유대성(bonding) 사회적 자본과 성·계급·인종·종교 등 이질적 부류와의 연결성(bridging) 사회적 자본이란 게 있다. 현대 사회에선 연결성 사회적 자본도 대단히 필요로한다. 한국 사람들을 만났더니 강남·강북 격차를 얘기하더라. 미국은 더 분리돼 있다. 그러므로 내 조언은 이웃과 더 어울리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커피도 마시고. 특히 당신과 같지 않은 사람들과 말이다. 쉽지 않다. 그러나 필요하다.”
 
글=고정애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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