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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의 아버지 둔 소금장수 딸과 낙랑공주 차이점

중앙일보 2018.10.19 07:00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18)
소금장수의 아내가 아이를 낳고 삼신에게 올리는 첫 밥이 너무 소홀해 화가 난 삼신이 소금장수의 딸에게 저주를 내렸다. 저주를 들은 소금장수는 자신의 딸의 배를 칼로 찌른 뒤 집을 나가버렸다. [사진 freejpg]

소금장수의 아내가 아이를 낳고 삼신에게 올리는 첫 밥이 너무 소홀해 화가 난 삼신이 소금장수의 딸에게 저주를 내렸다. 저주를 들은 소금장수는 자신의 딸의 배를 칼로 찌른 뒤 집을 나가버렸다. [사진 freejpg]

 
옛날에 방방곡곡을 떠돌며 소금을 팔러 다니던 소금장수가 있었다. 소금장수가 집을 비운 사이 소금장수의 아내가 딸을 낳았다. 소금장수의 아내는 가난해 땔감으로 좋은 나무를 구할 수 없었다. 아이를 낳은 후 삼신에게 올리는 첫 밥을 변소 옆에 쌓여 있던 더러운 나무로 지어 올렸다. 삼신은 대접이 소홀한 것에 화가 나 소금장수의 딸에게 아비와 붙어먹으라는 저주를 내렸다. 그리고 그 일을 다른 삼신들에게 이야기했다.
 
소금장수는 집에 돌아가던 길에 묘 옆에서 잠시 낮잠을 자다가 자기 집과 관련된 듯한 삼신들의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됐다. 집에 오니 과연 아내가 딸을 낳아 놓았기에 소금장수는 딸의 배를 칼로 찌른 뒤 집을 나가 버렸다.
 
평생 떠돌아다니던 소금장수가 어느 날 술집에서 한 어여쁜 처자와 잠자리를 하게 됐다. 배에 칼자국이 있어 물어보니 소금장수였던 아버지가 칼로 찔러서 생긴 흉터라고 했다. 소금장수는 가지고 있던 돈 전부를 처녀에게 주고 시집가서 잘 살라고 하고는 그 길로 나가 목매어 자살했다.
 
술집서 만난 처자와 잠자리, 알고 보니 자기 딸  
신의 저주는 가혹했고, 아버지는 제 손으로 딸의 배를 찌른 뒤 가족을 떠나 평생 떠돌 만큼 저주로부터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다. 그러나 신의 저주는 무섭도록 확고하게 이루어지고야 말았다. 그것은 아버지의 성욕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술집에서 만난 처녀에게 욕정을 품은 것이 저주가 실현된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박찬욱 감독 영화 '올드보이' 올드보이에서도 실수를 범한 남자에게 자신의 딸을 범하도록 계획한다. 소금장수는 저주를 피하기 위해 딸을 죽이려고 하는데, 이러한 서사는 아버지의 두려움을 극대화해 보여주는 것이다. [중앙포토]

박찬욱 감독 영화 '올드보이' 올드보이에서도 실수를 범한 남자에게 자신의 딸을 범하도록 계획한다. 소금장수는 저주를 피하기 위해 딸을 죽이려고 하는데, 이러한 서사는 아버지의 두려움을 극대화해 보여주는 것이다. [중앙포토]

 
영화 ‘올드보이’에서도 실수를 범한 남자에게 벌을 내리기 위해 남자의 딸을 범하도록 시나리오가 짜였다. 결국은 성욕을 절제하지 못할 것을 간파한 누군가의 철저하고 의도적인 계획에 의해 저주가 실현되는 것이다. 이러한 서사를 만나면서 우리는 친딸을 성폭행하는 아버지를 떠올리고 말 것인가. 아니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만한 실수를 저지른 아버지에게 근친상간의 반인륜적 죄를 짓도록 함으로써 응당한 벌이 내려진 것으로 이해할 것인가.
 
여기에서 의문이 생기는 지점은 소금장수가 신을 불경하게 대한 대가로 자신의 딸에게 내려진 저주를 알게 되자 자기 딸을 죽이려고 한 것이다.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이해하기에는 상식을 초월하는 행위였고, 저주를 피할 다른 방법을 찾을 수는 없었던 것인지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이 아버지는 왜 부모의 실수로 인해 딸에게 내려진 저주를 피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갓 태어난 딸을 찔러 죽일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이런 옛이야기에서 실수를 범한 남자가 그에 대한 벌로써 자신의 친딸을 범하게 된다는 서사는 결국 아버지의 두려움을 극대화해 보여주는 것이다. 그 두려움이란 소금장수가 혹독한 삼신의 저주와도 같은 위험이 판을 치는 험한 세상에서 자신의 딸이 온전하게 살아가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 데서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식을 양육해야 하는 책임감을 가진 아버지는 세상이 자신에게 주는 엄청난 압박을 견디기 힘들다. 신은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며, 갓 태어난 딸은 나약하기만 하다. 이 세상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갈 딸은 절대적 보호 대상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힘에 두려움을 느낀 아버지에게는 자신이 딸을 온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 수 없다. 그래서 아버지는 딸에게 억압적으로 대하게 된다.
 
그 억압은 특히 딸이 여성이라는 것 때문에 순결과 정절, 원리 원칙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가해진다. 세상의 견고한 틀에 대한 아버지의 두려움이 딸에 대한 억압적 양육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두려움과 억압에 저항한 딸들
이러한 아버지의 억압에 대해 딸들은 소금장수의 딸처럼 영문도 모른 채 피해자가 되어 무력한 삶을 살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로부터 벗어나서 자신의 욕망을 앞세우며 존재를 증명해 보이고자 애쓰기도 한다.
 
『삼국유사』에서 전하는 고구려의 호동왕자를 사랑한 낙랑공주 이야기다. 낙랑국의 왕은 고구려 왕자인 호동을 우연히 보고 마음에 들어 낙랑국에 초청하고 사위로 삼고자 했다. 고구려는 낙랑국을 정복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는데, 낙랑국에는 적병이 침입해 오면 스스로 울려 이를 알리는 북과 뿔피리가 있어 정복하기가 어려웠다.
 
고구려 고분 무용총 벽화에서 보이는 뿔 나팔. 낙랑공주는 아버지를 배반하고 북과 뿔 피리를 파괴한다. 낙랑국의 왕은 자신을 배반한 딸을 죽인 뒤 고구려에 항복했다. 아버지가 가진 두려움의 극대화 때문이 아닌 아버지의 권위에 반항한 비극적 결말이다. [중앙포토]

고구려 고분 무용총 벽화에서 보이는 뿔 나팔. 낙랑공주는 아버지를 배반하고 북과 뿔 피리를 파괴한다. 낙랑국의 왕은 자신을 배반한 딸을 죽인 뒤 고구려에 항복했다. 아버지가 가진 두려움의 극대화 때문이 아닌 아버지의 권위에 반항한 비극적 결말이다. [중앙포토]

 
호동왕자는 낙랑공주에게 부탁해 몰래 북과 뿔피리를 파괴하도록 했고, 낙랑국의 왕은 자신을 배반한 딸을 죽인 뒤 고구려에 항복했다. 낙랑공주는 왕국을 다스리는 아버지를 배반하고 자신들의 사랑을 선택했다. 그러나 자신의 욕망과 힘을 앞세워 아버지의 권위에 반항했다면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내 복에 산다’는 제목으로 전승되는 우리의 설화는 부자 아버지가 세 딸에게 누구 덕에 사느냐고 질문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셋째딸만이 아버지 덕도 있고 어머니 덕도 있지만, 자신의 덕으로 산다고 대답했다가 내쫓긴다. 셋째딸은 어느 누가 아닌 자기 자신이 복의 원천이라고 아버지에게 당당하게 선언하는 것이다.
 
이는 여성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인지하고 그것의 힘을 믿었을 때, 여성으로서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주체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집에서 쫓겨났던 셋째딸은 가난한 숯구이 총각을 만나 함께 살게 되었는데, 숯 굽는 가마에서 생금을 발견해 큰 재산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사이에 가난해져 거지가 되어 떠돌아다니던 부모를 구제한다.
 
설화에서 생금은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의미 상징을 가진다. 셋째딸은 이로써 자신의 복으로 산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고, 이후 자신을 내쫓았던 부모를 다시 끌어안는 상생의 서사를 보여주었다.
 
삼신과 삼신으로부터 주어지는 저주는 험난한 세상에서 아버지가 감히 맞서지 못할 엄청난 힘을 상징한다. 이 힘 앞에 두려움을 느낀 소금장수는 그 힘을 피해 도망치고 굴복했다. 그러나 딸이 자신의 주체성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그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을 때는 아버지와의 대립도 해결하고 자신의 인생도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갔다. 전쟁에선 왕국을 승리로 이끌고, 거지가 되어 떠돌게 된 부모를 끌어안고 함께 살 수 있을 만큼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아버지와 딸 사이에 형성된 애증 관계
이처럼 험난한 세상에서 법칙과 권위와 억압의 이름을 갖는 아버지의 양육과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힘을 확인하고 존재를 증명해 보이고자 하는 딸의 섹슈얼리티가 얽히고설켜 아버지와 딸이 대립하는 서사를 만들어 낸다. 아버지와 딸 사이의 애증이란, 세상에 존재하나 잘 보이지 않는 억압과 금기에 맞서기 힘든 연약한 아버지와 자신의 정체성을 내보이며 주체적 존재로서 인정받고자 하는 딸의 관계 속에 형성된 메커니즘인 것이다.
 
<메데이아(Medea) 1866-1868> 프레드릭 샌디스가 그린 메데이아.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 작품이다. [출처 Birmingham Museums Trust]

<메데이아(Medea) 1866-1868> 프레드릭 샌디스가 그린 메데이아.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 작품이다. [출처 Birmingham Museums Trust]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초빙교수 irhet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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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영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필진

[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 우리 옛이야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신화, 전설, 민담에는 현대에도 적용 가능한 인간관계의 진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은 어느 무엇보다도 우리를 지치게 한다. 나 하나를 둘러싼 인간관계는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의 갈등을 심도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옛이야기이다. 우리 옛이야기를 통해 내 안에 숨어 있는 치유의 힘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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