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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여순 10·19사건’ 70돌

중앙일보 2018.10.19 00:28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남중 논설위원

김남중 논설위원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아홉 꽃봉오리 피워보지 못하고/ 까마귀 우는 골에 나는야 간다’.
 
봄이면 산수유 흐드러지게 피는 전남 구례 산동마을. 그 속에서 해맑게 살았을 열아홉 살 처녀 백순례의 참혹한 사연이 담긴 ‘산동애가(山洞哀歌)’의 노랫말 일부다. 1948년 여순사건 당시 부역 혐의로 둘째 오빠가 처형되고, 막내 오빠마저 같은 처지에 놓여 대가 끊기게 되자 순례가 대신 처형장으로 끌려가며 불렀다는 얘기가 전한다. 여순사건의 처참한 토벌작전을 표현한 ‘여수블루스’ ‘여수야화’와 더불어 여수의 아픔을 상징하는 노래로 꼽힌다. 여수야화는 최초의 금지곡이다. 49년 노래가 나온 지 2개월 만에 ‘불순하고 민심에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금지됐다. 산동애가도 박정희 정권 때 금지곡이 됐다. 노래에 담은 아픔마저도 인정받지 못했던 셈이다.
 
요사이 여수 곳곳에서 산동애가가 불려지고 있다. 오늘 70돌을 맞는 ‘여순 10·19사건’ 기념행사가 잇따르면서다. 27일까지 여수 갤러리노마드에서 열리는 ‘1948년 10월 19일 그로부터 70년 기록전’ 부대 행사로 ‘앙상블 여수’가 이 노래를 연주했다. 그제 여수엑스포에서 열린 ‘여순사건 70년 특별음악회 해원(解冤)’에서는 국악인 박애리가 산동애가를 불렀다.
 
여기에 담긴 의미는 해방 후 이념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원통하게 숨진 넋을 달래는 위로다. 나아가 사건의 진상과 성격 규명에 대한 소원이다. 여순사건은 ‘제14연대 반란사건’ ‘여순반란사건’으로 불리다 1995년 지역주민의 이의가 수용된 뒤에야 그나마 ‘여순 10·19사건’이란 중립적인 공식 명칭을 얻었다. 재야 사학계에서 주장하는 ‘항쟁’은 여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여순사건은 제주 4·3사건과 뗄 수 없는 관계다. ‘4·3사건 진압 파병 반대’가 시발점이어서다. 4·3사건에 대해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두 번,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한 번 사과했다. ‘4·3사건 특별법’ 덕분이다. 여순사건 70주년을 기념하고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전국 자전거 순례단이 그제 순천을 출발해 내일 광화문광장에 도착한다. ‘여순사건 특별법’은 민간인 희생자와 유족에게 ‘아픔의 치유’다. 노 전 대통령이 4·3사건 위령제에서 한 추도사에 그 길이 담겨 있지 싶다. “자랑스런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해 나가야 합니다. 또한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줘야 합니다.”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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