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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선동열’에 묻혀 버린 것들

중앙일보 2018.10.17 00:20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지영 아트팀 기자

이지영 아트팀 기자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이 촉발하고 방탄소년단이 불을 붙인 문화체육계 병역특례 제도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형평성·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시대착오적 제도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아예 폐지하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하지만 예체능인에 대한 병역 혜택은 감정적으로 처리할 일이 아니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재우씨는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아예 없어진다면 남성 중에 무용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0대 초반 2년여의 연습 공백을 감당할 엄두를 못 낸다”는 것이다.  “열아홉 살 때부터 병역 면제 혜택이 있는 대회에 계속 나갔다”는 그는 스물네 살 때인 2015년 코리아국제발레콩쿠르 금상 수상으로 병역 혜택을 받았다.
 
예술인들이 병역특례 혜택을 받기 위해선 병무청 훈령이 정한 국제대회에서 2위 이내에 들어야 한다. 국제대회가 없는 국악과 한국무용 등만 국내대회를 인정한다. 음악·무용 분야 41개 국제대회 중 35개는 해외에서 치러지는 대회다. 해외 콩쿠르에 참가하려면 항공료·체재비 등 경제적 부담도 크다. 예술 병역특례자 중 ‘강남 3구’ 비율이 높다는 통계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러 논란과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병역특례 제도의 목적인 국위 선양과 문화 창달 측면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하는 특례자도 많다. 2016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상을 받은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 창극 대중화를 이끄는 국립창극단 스타 소리꾼 김준수 등이 모두 특례 제도의 수혜자다.
 
물론 다른 목소리도 있다. 판소리 명창 한승석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는 대회에서 등수를 가려 병역 혜택을 주는 현 제도가 예술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주장한다. “예술을 하려면 삶에 대한 이해와 철학이 우선돼야 한다”며 “젊은 학생들이 차원 높은 고민을 해야 하는 시기에 눈앞의 대회에만 매달리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지난 10일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도 병역특례 제도는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하지만 본질적인 논의는 이번 국감의 최고 화제 인물이었던 선동열 감독에게 묻혀버렸다. 문체부에서 병역특례 제도 개선 전담팀(TF) 단장을 맡고 있는 이우성 문화예술정책실장이 그날 국감장에 배석했지만 아무도 질문하는 의원이 없었다. 제도 개선과 관련해 예술계 의견 수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이스라엘 등 다른 징병제 국가의 사례는 어떻게 조사 중인지 등을 확인하기보다 선 감독의 판공비 한도 여부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냄비 여론에 밀려 졸속 개정을 할 경우 예체능계 인재 양성 체계가 뿌리째 흔들릴지 모를 일인데도 말이다.
 
이지영 아트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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