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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워먹던 중국 라면문화 바꿨다, 20년새 40배 큰 농심

중앙일보 2018.10.16 16:28
 
20년 전, 중국에서는 라면을 끓여 먹지 않았다. 봉지 라면도 컵라면 먹듯이 데워먹었다. 이른바 ‘파오미엔(包面)’ 문화다. 일반 그릇에 면과 수프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은 후 3분이 지나면 먹었다. 차를 많이 마시는 중국에서는 뜨거운 물 구하기가 수월했다. 1999년 중국에 진출한 농심이 냄비에 끓여 먹는 한국식 라면을 선보이자 중국인들이 외면했던 이유다. 설명서를 읽지 않고 뜨거운 물만 부은 중국 소비자들의 제품 항의가 빗발쳤다. 
 
20년이 지난 올해, 농심 중국법인은 최대 실적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올해 상반기 매출은 1억3000만 달러(약 1466억원)를 올렸고 연말까지 2억8000만 달러(약 3158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누적 매출도 상반기를 기점으로 20억 달러(약 2조2560억원)를 넘어섰다. 농심이 중국에서 독자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99년 첫해 매출은 700만 달러(약 79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신라면이 대표적인 ‘K 푸드’로 자리를 잡으면서 20년간 약 40배 성장했다.  
 
식습관의 차이라는 벽을 넘어 신라면이 중국에서 인기를 얻는 비결은 무엇일까. 세계라면협회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기준으로 389억7000만개의 라면이 팔린 세계 1위 시장(파오미엔 포함)이다. 농심은 '현지화된 마케팅‘과 ‘차별화된 제품’을 꼽는다. 
가장 효과적인 현지화 마케팅은 바둑 대회였다. 농심이 1999년 한국기원과 함께 ‘농심 세계바둑최강전’을 열자 바둑에 대한 관심이 높은 중국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중국에서 열린 신라면배 바둑대회 [사진 농심]

중국에서 열린 신라면배 바둑대회 [사진 농심]

기업의 제품명을 바둑 대회 타이틀로 내세운 것은 신라면배가 처음이었다. 첫 번째 대회부터 한국의 조훈현ㆍ이창호, 중국의 마샤오춘(馬曉春)ㆍ창하오(常昊), 일본의 요다노리모토 등 세계 정상급 기사들이 참가해 실력을 겨뤘다. 중국이 처음 우승했던 제9회 대회는 중국 전역 700여개 언론사를 통해 집중적으로 보도됐다. 농심은 당시 수백억 원에 달하는 마케팅 효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한다.올해 20회를 맞은 ‘농심 세계바둑최강전’은 지난 15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막을 올렸다.  
 
농심은 신라면의 중국 광고 카피로 ‘매운 것을 먹지 못하면 사나이가 아니다’를 내세워 매운 라면을 확산시켰다. 이는 ‘만리장성에 오르지 않고서는 사나이가 아니다’는 마오쩌둥 (毛澤東)의 어록을 패러디한 광고였다.  
 

농심은 마케팅을 현지화했지만, 제품은 ‘한국식’을 고집했다. 중국 진출 초기 영업사원들은 직접 휴대용 가스버너와 냄비를 들고 다니며 라면 끓이는 법을 시연했다.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시식회도 펼쳤다. 데워먹는 파오미엔보다 끓여 먹는 라면이 부드럽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중국 유명 라면 업체들도 끓여 먹는 라면을 신제품으로 꾸준히 출시할 만큼 끓여 먹는 라면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또 신라면의 얼큰한 맛부터 제품 규격과 디자인 모두 한국식 그대로 시장에 선보였다. 최성호 농심 홍보 상무는 “제품 자체를 현지화해 중국 라면과 유사한 제품을 출시하면 단기적인 매출은 오르겠으나 장기적으로는 농심의 브랜드 파워가 약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중국 대형마트에 진열된 신라면 [사진 농심]

중국 대형마트에 진열된 신라면 [사진 농심]

신라면은 중국에서 고급 라면에 속한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라면을 기준으로 신라면은 약 5위안(815원)이다. 반면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라면인 홍샤오뇨로우(紅焼牛肉)탕면은 약 2위안(326원)으로 신라면이 2.5배 비싸다. 중국의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서 비싸도 한국 라면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었다.
 
조인현 농심 중국법인장은 “한국의 매운맛을 그대로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대신 광고나 마케팅은 현지 문화와 트렌드를 우선시한 게 중국 시장에서 통했다”고 설명했다.  
 
농심은 상하이(上海) 등 동부 해안 대도시에 서부 중소 도시로 점차 영업망을 확대할 계획이다. 또 중국의 온라인 시장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는 만큼 온라인 마케팅도 강화할 계획이다. 
성화선 기자 ss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