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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3마리로 우려낸 닭곰탕, 유치원생 200명에 먹였다"

중앙일보 2018.10.15 09:36
'비리 유치원' 명단이 공개되면서 유치원에 다닐 예정이거나 다니고 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중앙포토]

'비리 유치원' 명단이 공개되면서 유치원에 다닐 예정이거나 다니고 있는 자녀를 둔 부모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중앙포토]

 
해넘이를 3개월 앞두고 전국 1878곳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이 공개되면서 내년 교육 준비를 해야 하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비상이 걸렸다.
 
내년에 처음 자녀를 유치원에 보내는 부모 중에는 이미 특정 유치원에 등록했거나 상당 기간 알아본 끝에 갈 곳을 몇 군데로 추린 경우가 많다. 지난 11일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 공개 이후 맘카페에는 "보내려던 곳이 (비리 유치원 명단에) 딱 있다" "첫째 보내려고 알아본 유치원 두 군데가 (명단에) 떠 놀랐다"는 글이 여러 건 올라왔다. 이미 등록한 유치원의 비리 내용을 알게 돼 당황스러운 학부모도 있다. "이쪽 지역 유치원 경쟁률이 높아 선착순으로 겨우 등록한 건데 취소를 해야 할지 고민이다"는 것이다.
 
신규 등록·진급 신청 이미 해버렸는데…대책 없는 '발 동동'
 유치원 입학지원접수증을 작성하고 있는 모습. 사진은 본 기사와 관계 없음. [중앙포토]

유치원 입학지원접수증을 작성하고 있는 모습. 사진은 본 기사와 관계 없음. [중앙포토]

 
자녀가 이미 다녔거나 다니고 있는 유치원 이름을 명단에서 발견한 부모들은 더 당황스럽다. "돈은 엄한 데다 썼는데 처벌도 못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쩐지 원장선생님이 매우 좋은 외제차를 타고 다니더라" "믿을 수 있는 곳이 있긴 한 것인지, 모르는 척 보내자니 속에서 열불이 난다" 등 배신감과 분노심을 느낀다는 글이 많다. 

 
'그래서 유치원을 옮겨야 하는가'는 더 골치 아픈 문제다. 유치원들은 매년 10~12월쯤 다음 해에도 같은 유치원을 다닐지 묻는 '재원 신청'을 받는다. 이미 진급 신청을 해버린 부모들은 말 그대로 "멘붕(멘탈 붕괴)"이라며 고민을 털어놓는다. "원장이 오해라고 펄쩍 뛰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는 경우도 있다. 명단을 공개한 박용진 의원도 "고의성이 없는 단순 착오나 실수로 규정에 어긋난 행위를 했다 감사에 적발된 유치원들도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다른 데라고 다를까"…커지는 '유치원 공포'
경기도 동탄시의 한 유치원의 경우 학부모들의 해명 요구에 원장이 구급차를 타고 자리를 피한 내용이 보도되면서 해당 지역 카페에서 공분을 샀다. [사진 네이버 '동탄맘들 모여라' 커뮤니티 캡쳐]

경기도 동탄시의 한 유치원의 경우 학부모들의 해명 요구에 원장이 구급차를 타고 자리를 피한 내용이 보도되면서 해당 지역 카페에서 공분을 샀다. [사진 네이버 '동탄맘들 모여라' 커뮤니티 캡쳐]

 
이번에 적발된 유치원의 경우 실명과 지역, 비리 내용과 교육청의 조치 결과까지 공개됐다. 하지만 이 명단은 여기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유치원의 깨끗함을 증명해줄 순 없다. 전국 유치원 수는 6153곳(2017년 기준)인데 이번에 감사 대상이 된 곳은 2058곳이다. 이 중 91%에 달하는 1878곳이 문제가 있다고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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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자신을 "전직 유치원 교사"라고 소개한 시민이 "닭 3마리로 우린 국물에 200명이 넘는 아이들과 교사들이 닭곰탕을 먹었다"는 폭로를 하기도 했다. 이번에 공개된 보고서에 없던 내용이다. 이 청원인은 "이번 비리 사태를 보며 이건 정말 빙각의 일각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제가 유치원 내부에서 본 것만 해도 한두가지가 아닌데 제가 근무했던 기관들은 명단에 없다"고 청원 이유를 밝혔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게시글.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게시글.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상황이 이렇다 보니, 1878곳 유치원에 대한 부모들의 불신은 전체 유치원에 대한 불신으로 확장된다. 온라인 카페에서는 "일부만 했는데 이 정도라니, 다 털어보면 가관이겠다" "안 걸릴 유치원은 손에 꼽히겠다"는 합리적 의심부터 "그 나물에 그 밥, 원장들 다 똑같다" "모든 유치원 원장들을 색안경 끼고 보게 돼 버렸다"는 허탈함까지 드러나 있다.
 
더 큰 비리가 있는 유치원들은 정작 이 명단에 없을 수 있단 점도 문제다. 해당 보고서에는 "행정처분 이상의 조치가 필요한 중대 비리가 있거나 감사를 아예 거부하는 경우 수사 의뢰를 통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면서 "이런 유치원들은 최종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실명 공개를 할 수 없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명단에 없는 유치원은 나을까…체념 부르는 적발률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사립 유치원 비리와 관련한 청원글이 150여건이 올라왔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쳐]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사립 유치원 비리와 관련한 청원글이 150여건이 올라왔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쳐]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적발된 곳이라도 비리 정도가 약하면 넘어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온다. '명단에 오르지 않은 유치원은 좋은 대안인가'에 대해 누구도 자신 있게 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자녀가 다닐 예정이거나 다니고 있는 유치원의 비리 내용을 올린 뒤 "이 정도면 괜찮느냐"고 묻는 상담글도 상당수다.
 
일부 부모들은 "다른 유치원에 비해 가벼운 정도면 넘어가야 하지 않겠느냐" "주의·경고 정도면 괜찮지 않겠느냐"고 답한다. "행정비리는 어딜 가나 있는데 아이들에게 하는 태도를 보고 결정해야 한다" "사업하는 사람들이니 비리는 있을 수밖에 없고 교육의 질 등 프로그램이 좋으면 다녀야 할 것 같다"는 의견도 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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