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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과학] 가을철 '은행 지뢰'…구린 냄새 원인을 추적했다

가을철 '은행 지뢰'…구린 냄새 원인을 추적했다

중앙일보 2018.10.14 05:00
 
오늘도 또 밟으셨나요. 까치발을 들고 요리조리 피해봐도, 고약한 냄새까지 피해갈 수는 없으시다고요. 해마다 10월이 되면, 냄새로 먼저 가을을 알리는 이 나무. 지난해 11월, 미국의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단풍이 아름다운 가로수 15가지' 중 두 번째로 이 나무를 꼽기도 했는데요. 바로 은행나무입니다.
 
해마다 10월이면 한 달 동안만 일반인에게 개방되는 홍천 은행나무 숲은 한 개인이 30년 동안 가꾼 숲으로 알려져있다. 은행의 고약한 냄새 때문에 매년 도심에서는 많은 민원이 제기되지만, 기침ㆍ가래를 가라앉히고 고혈압에도 효과가 있는 약재로도 쓰일 수 있다. [사진 중앙포토]

해마다 10월이면 한 달 동안만 일반인에게 개방되는 홍천 은행나무 숲은 한 개인이 30년 동안 가꾼 숲으로 알려져있다. 은행의 고약한 냄새 때문에 매년 도심에서는 많은 민원이 제기되지만, 기침ㆍ가래를 가라앉히고 고혈압에도 효과가 있는 약재로도 쓰일 수 있다. [사진 중앙포토]

그런데 이런 악취에도 불구하고 은행 열매와 잎이 여러 모로 건강에 효자 역할을 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구워먹으면 조금은 떫은 맛이 나는 은행열매. 오늘 3분과학은 은행의 쓸모와 냄새의 원인까지 파헤쳐보도록 하겠습니다.
 
은행은 열매 아닌 '씨앗'...동물이 먹지 못하도록 악취ㆍ독성 
 
거리를 가득 메운 은행의 지독한 냄새는 주황색 겉껍질의 성분 때문에 발생합니다. 장진성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은행은 식물성 지방산의 일종인 부티르산을 방출한다”며 “껍질 외부에 함유된 은행산(ginkgoic acid)과 빌로볼(bilobol) 역시 고유의 냄새를 풍긴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은행은 열매가 아닌 씨앗으로, 암나무에서만 종자가 맺힌다. 서울시에 따르면 암나무는 약 2만 9000그루로 파악되고 있다. 악취의 원인은 겉껍질에 포함된 빌로볼과 은행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중앙포토]

은행은 열매가 아닌 씨앗으로, 암나무에서만 종자가 맺힌다. 서울시에 따르면 암나무는 약 2만 9000그루로 파악되고 있다. 악취의 원인은 겉껍질에 포함된 빌로볼과 은행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중앙포토]

열매라면 동물들이 먹고 씨를 퍼뜨릴 수 있도록 유혹하는 게 보통일텐데, 왜 악취가 나는 것일까요? 바로 은행은 열매가 아니라 '씨앗(종자)'이기 때문입니다. 씨앗이 파괴되면 번식을 할 수가 없죠. 은행은 해로운 곤충과 여러 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종족을 퍼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악취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은행 냄새는 바퀴벌레 등 해충을 쫓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죠. 또 인간 외에는 은행을 직접 먹는 동물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합니다. 또 맨손으로 은행을 만지는 것도 주의해야 하는데요. 빌로볼과 은행산이 접촉성 피부염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표리부동' 은행...겉껍질 속 종자는 호흡기 질환ㆍ은행잎은 혈액 순환에 좋은 약
 
1610년 완성된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은행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한방에서 '백과'로도 불리는 은행은 천식ㆍ가래ㆍ기침을 가라앉히고 폐 기능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제공=국립중앙도서관]

1610년 완성된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은행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한방에서 '백과'로도 불리는 은행은 천식ㆍ가래ㆍ기침을 가라앉히고 폐 기능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제공=국립중앙도서관]

악취에다 피부염까지 일으키는 고약한 겉껍질을 제거하고 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은행 알맹이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겉과 달리 한의학에서 은행은 백과(白果)로 불리며 약재로 취급되죠.
 
은행의 대표적 약효는 천식ㆍ가래ㆍ기침 등 호흡기 질환 개선에 도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김호철 경희대 한의과대 본초학교실 교수는 “떫고 씁쓸한 맛의 은행은 신체 밖으로 향하는 성질을 '수렴'시키는 기능이 있다"며 "이 때문에 기침과 가래를 가라앉히고, 밤에 소변을 잘 가리지 못하는 야뇨증에도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습니다.
 
은행뿐만 아니라 은행잎 역시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 특히 플라

은행뿐만 아니라 은행잎 역시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 특히 플라

은행잎 역시 의약품의 귀중한 재료가 됩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은행잎에는 케르세틴을 비롯한 플라보노이드 성분과 징코라이드 등 테르페노이드가 풍부한데요. 이들 성분은 혈액이 응고되는 것을 막고 혈관확장을 촉진해 혈액순환이 원활이 이뤄지도록 돕습니다.
 
특히 뇌에 공급되는 혈류량을 증가시켜 혈압을 낮추고, 뇌졸중 위험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죠. 은행잎 추출물로 만든 일반의약품은 약국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9월 부산광역시 부산진구청 관계자들이 진동수확기 등을 동원해 은행나무 열매를 수확하고 있다. 부산진구는 지난해 12월 6일까지 관내 은행나무 3383그루 중 열매가 열리는 암나무 855그루(25%)에서 열매를 수확해 지역의 홀몸노인들에게 전달했다. 은행을 수확할 때는 접촉성 피부염에 대비해 장갑을 착용해야 한다. [사진 뉴시스]

지난해 9월 부산광역시 부산진구청 관계자들이 진동수확기 등을 동원해 은행나무 열매를 수확하고 있다. 부산진구는 지난해 12월 6일까지 관내 은행나무 3383그루 중 열매가 열리는 암나무 855그루(25%)에서 열매를 수확해 지역의 홀몸노인들에게 전달했다. 은행을 수확할 때는 접촉성 피부염에 대비해 장갑을 착용해야 한다. [사진 뉴시스]

그러나 은행과 은행잎 모두 한 번에 먹어야 하는 양에 제한이 있습니다. 약학정보원은 은행잎 추출물로 만든 의약품의 하루 복용량은 질환과 증상에 따라 120~240mg이 적당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 은행잎 추출물은 혈액을 묽게 하므로 아스피린과 함께 복용하면 출혈위험이 증가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하죠.
 
은행 종자에도 메틸피리독신, 아미그달린 등 독성물질이 있어 충분히 가열해 적당량 먹어야 합니다. 성인은 보통 하루 10개 이하, 어린이는 3개 이하로 섭취량을 제한해야 합니다.
 
2억년 버텨온 '살아있는 화석' 은행나무...전세계 1종 뿐인 멸종위기종
 
2010년 촬영된 성균관의 은행나무. 수령은 6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0년 촬영된 성균관의 은행나무. 수령은 6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중앙포토]

 
자, 그런데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은행나무가 인적이 드문 산 속에는 별로 없다는 것, 눈치채셨나요. 피터 크레인 전 영국 큐 왕립식물원 원장은 “야생 은행나무는 중국의 저장성의 톈무산(天目山)과 남서부의 단 두 곳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즉, 나머지는 모두 인간이 심어 보존한 은행나무의 후손이라는 것이죠. 동물이 먹고 다른 곳으로 씨앗을 옮기지 않기에, 한 나무에서 떨어진 은행은 그 자리에서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2억7000만년 전 페름기에 처음 나타난 은행나무는 중생대 쥐라기와 백악기에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당시 공룡은 은행을 먹고 씨앗을 퍼뜨려주는 역할을 했다. 오늘날 은행나무가 단 한 종 밖에 남지 않은 원인 중 하나로 공룡의 멸종이 거론되고 있는 이유다. 사진은 지난 8월19일 경기도 과천시 국립과천과학관 자연사관을 찾은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공룡 화석 등 전시물을 살펴보는 모습. [사진 뉴스1]

2억7000만년 전 페름기에 처음 나타난 은행나무는 중생대 쥐라기와 백악기에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당시 공룡은 은행을 먹고 씨앗을 퍼뜨려주는 역할을 했다. 오늘날 은행나무가 단 한 종 밖에 남지 않은 원인 중 하나로 공룡의 멸종이 거론되고 있는 이유다. 사진은 지난 8월19일 경기도 과천시 국립과천과학관 자연사관을 찾은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공룡 화석 등 전시물을 살펴보는 모습. [사진 뉴스1]

게다가 약 2억7000만년 전 페름기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은행나무는 현재는 지구상에 오직 한 종만이 남아있습니다. 개체 수는 많아도 모두가 멸종위기 종으로 분류되는 이유입니다. 학자들은 1억 5000만년 전 공룡과 함께 살았으며, 백악기 때 전성기를 이뤘던 은행나무의 종이 급감한 것에 은행 종자를 먹고 퍼뜨려주던 공룡의 멸종ㆍ기후변화 등을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멸종할 수 있는 은행나무를 보존하고 있는 것은 현재 인간 뿐이라는 사실, 놀랍지 않으신가요. 오늘날 은행나무는 병충해ㆍ매연ㆍ추위에 강해 가로수로 널리 쓰이고 있으며, 특히 일본 히로시마에서는 1945년 투하된 원자폭탄 반경 2㎞ 내 여섯 그루의 은행나무가 현재까지 생존하는 등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쥐라기와 백악기에 전성기를 이룬 은행나무는 당시 수십종이 있었던 것으로 화석에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플라이오세 말기 대대적으로 멸종해 현재는 단 한 종, 즉 Ginkgo biloba만 전해지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쥐라기와 백악기에 전성기를 이룬 은행나무는 당시 수십종이 있었던 것으로 화석에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플라이오세 말기 대대적으로 멸종해 현재는 단 한 종, 즉 Ginkgo biloba만 전해지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그럼에도 은행나무는 씨앗 냄새 때문에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죠. 암나무에서만 열매가 열린다는 것이 밝혀진 후, 국립산림과학원은 2011년 ‘은행나무 성감별 DNA 분석기술’을 개발해 시민과 은행의 공존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산림생명정보연구과 이제완 박사는 “성감별 DNA 분석법을 적용하면 은행 열매의 악취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어린 묘목 단계에서 수나무는 가로수용으로 관리하고, 암나무는 열매 생산용으로 관리하면 은행나무의 활용과 생산 효율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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