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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이 남자의 미묘한 음색을 주시하라

중앙선데이 2018.10.13 02:00 605호 6면 지면보기
15년 만에 내한공연,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1956년 폴란드 자브제에서 태어난 크리스티안 지메르만(Krystian Zimerman)은 18세의 나이로 제9회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기대주로 떠올랐다. 쇼팽과 브람스 등 그의 낭만주의 음악 해석은 정평이 났다. 카라얀/베를린 필과 81년 녹음한 슈만/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은 80년대 웬만한 집에는 한 장씩 있던 인기반이었다.  
 
지메르만은 완성도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다. 슈트라우스/레스피기 소나타 앨범을 지메르만과 녹음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열흘 중 7일을 음향 밸런스를 잡는데 쓰고, 피아노 위치도 열 번을 옮기더라”며 “그처럼 완벽한 준비성과 연마한 기교를 다 갖춘 피아니스트는 본 적이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 예민한 완벽주의자는 ‘천의무봉’의 라벨 협주곡, 정제된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독특한 쇼팽 협주곡, 병약한 환상성보다 건강한 확신에 찬 슈베르트 소나타 등 발표하는 음반마다 개성 있는 연주들을 담아냈다.  
 
완벽주의자란 칭송 뒤에는 까탈스런 성격에 대한 성토가 따라다닌다. 모국의 거장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으로부터 “브람스 연주의 대가”라는 칭찬을 받자 자신의 브람스 앨범을 폐반시켜 달라 요청했다. 음반을 못 구한 팬들은 울상이 됐다.  
 
호로비츠처럼 지메르만도 피아노를 비행기에 싣고 다녔다. 9·11 직후 카네기홀 연주차 미국을 방문했을 때 공항에서 화학약품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가져온 피아노가 폐기처분됐다. 2009년 LA 월트디즈니홀에서 연주 도중 폴란드에 설치한 미국 미사일 방어 시스템에 대해 항의했다. 이때 이후 미국엔 가지 않았다.  
 
2013년 독일 루르 피아노 페스티벌에서 스마트폰으로 녹화하는 관객에 항의하며 퇴장했다가 다시 나온 지메르만은 “유튜브가 음악에 미치는 폐해가 크다”고 역설했다. 이날 앙코르는 없었고 사인회는 취소됐다.  
 
지금까지 유일한 내한공연으로 기록된 2003년 예술의전당 독주회 때도 마찬가지였다. 불법 녹음을 우려해 피아노 위에 설치된 마이크를 철거해달라고 했다. 당시 해외 다른 공연장에서도 비슷한 요구를 했었다고 한다. 2014년 얀손스가 지휘한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연주로 첫 내한 협연무대가 예정돼 있었지만, 지메르만은 취소하고 한국에 오지 않았다.  
 
도무지 누구를 칭찬하는 법이 없던 그가 조성진에게는 예외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2015년 쇼팽 콩쿠르 당시 조성진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도쿄에서 식사에 초대하는 등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기다림과 아쉬움 끝에 지메르만이 드디어 온다. 번스타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이유도 있다. 번스타인이 작곡한 교향곡 2번 ‘불안의 시대’(1949)를 함께 연주했을 때, 번스타인은 지메르만에게 말했다. “내가 100세가 됐을 때 이 곡을 함께 연주하자.”  
 
번스타인 100주년을 맞은 올해 지메르만은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과 이 곡의 음반(DG)을 발표했고, 19일 에사 페카 살로넨이 지휘하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롯데콘서트홀에서 이 곡을 협연한다(이날 나머지 프로그램은 라벨 ‘어미거위 모음곡’과 버르토크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이다. 18일은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가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협연하고 스트라빈스키 ‘불새’가 연주된다).  
 
‘불안의 시대’는 번스타인이 윈스턴 휴 오든의 동명 시에서 내용과 형식을 가져왔다. 교향곡이지만 피아노 협주곡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3~4악장의 형식이 아니라 두 개의 파트에 세 개씩의 주제를 나타낸다. 우울함과 심오함, 재즈적 성격과 숭고함을 표현해야 하는 이 작품에서 작곡가를 추억하는 지메르만의 감각이 최고로 발휘되리라 기대해 본다.  
 
지메르만은 피아노의 메커니즘에도 밝은 연주자다. 분해와 조립, 조율에 능하다. 소년시절 카토비체의 피아노 수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수많은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손보며 미묘하게 음색의 변화를 주는 법을 터득했다. 예전에는 작곡가별 맞춤형으로 피아노를 손봤었는데 요즘은 작품별로도 뉘앙스를 느낄 수 있도록 조절한다. 번스타인에 초점을 맞춘 그의 피아노가 어떤 빛깔의 소리를 내줄지 궁금하다.  
 
글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마스트미디어 ©Kasskara and D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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