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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엉뚱한 기업인 부르고 알맹이 없는 호통만…올해도 ‘갑질 국감’ 이어질까

중앙일보 2018.10.13 00:01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정감사 증인 채택을 놓고 여야 간 의견이 나뉘며 의원들의 발언이 이어지자 민병두 정무위원장이 생각에 잠겨 있다.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정감사 증인 채택을 놓고 여야 간 의견이 나뉘며 의원들의 발언이 이어지자 민병두 정무위원장이 생각에 잠겨 있다.

 10월 12일부터 31일까지 20일 간 열릴 올해 국정감사(국감)에서 재계의 가장 큰 관심사는 기업인 증인 채택 여부다. 해마다 국감에서는 대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자(CEO)가 대거 증인과 참고인으로 채택된다. 올해에도 어느 기업 총수가 국감에 출석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총 17개 상임위원회에서 10월 5일 현재까지 증인·참고인 출석 요구가 확정된 곳은 정무위원회(정무위)·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중기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등이다.
 
 국감에서 기업인 증인을 많이 채택하는 정무위의 경우 강환구 현대중공업 사장, 임병용 GS건설 대표, 윤호영 카카오뱅크 은행장, 심성훈 케이뱅크 은행장, 권희백 한화투자증권 대표 등 44명이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여기에 참고인 15명까지 포함해 총 59명이 국감에 모습을 나타낼 전망이다. 정무위에서 가장 관심사였던 은행권 증인은 심성훈 케이뱅크 은행장과 윤호영 카카오뱅크 은행장 2명만 출석할 예정이다. 당초 은행권 채용비리와 대출금리 조작 등 혐의로 은행장들이 여럿 출석할 것으로 보였지만 이번 국감 증인 채택에선 제외됐다. 카카오·케이뱅크 은행장이 나오는 만큼 인터넷전문 은행의 인가 과정에서 드러난 특혜 논란이나 은산분리 완화 법안 통과 이후 제기될 각종 우려 등이 주요 이슈가 될 전망이다.
 
 
이해진·김범수 증인대에 설까
 
 과방위 국감 증인으로는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황창규 KT 회장,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이 채택됐다. 이해진 네이버 전 이사회 의장과 김범수 카카오 의장도 국감 증인대에 서게 됐다. 이 중 이목이 쏠리는 인물은 이해진·김범수다. 야당은 이들을 대상으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과 포털의 편향성을 집중 추궁할 계획이다. 이해진 전 의장은 지난해 국감 때도 증인으로 나와 네이버의 뉴스 조작 사건에 대해 사과한 바 있다.  
 
 산자중기위에서는 최정우 포스코 회장,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정승인 코리아세븐 대표이사, 허연수 GS리테일 대표를 국감 증인으로 최종 확정했다. 이번 국감 쟁점은 불공정거래 행위와 소상공인 상권 대책, 갑질 이슈가 될 예정이다. 특히 정승인 대표와 허연수 대표에게 편의점 가맹본사들의 각종 불공정거래 구조 개선에 관한 질의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배달 애플리캐이션의 소상공인 수수료도 쟁점이다. 알지피코리아대표(요기요)와 김봉진 우아한형제들(배달의 민족) 대표를 대상으로 소상공인 수수료 정책 등에 대해서 질의할 예정이다.
 
  국토교통위원회(국토위)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 67명 증인을 채택하려했지만 여·야 간의 합의를 하지 못해 채택이 불발됐다. 그러나 오너 일가의 갑질논란과 기내식 대란 사태를 일으킨 한진과 금호그룹을 국감에서 정조준하고 있어 여·야간의 합의가 이뤄질지 주목되고 있다. ‘BMW 화재’ 사고 관련 김효준 BMW코리아 회장 출석도 유력하다.
 
 올해 국감에서도 많은 기업인이 증인·참고인으로 국감장에 얼굴을 보일 전망이다. 국감에서는 매년 기업인의 증인 채택이 늘고 있다. 지난 17대에는 연 평균 52명, 18대 77명, 19대 124명, 20대 119명 기업인이 국회 증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렇듯 매년 국감 때마다 국회의원들이 기업인들을 마구잡이로 호출한다는 비난을 받는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국회의원들은 기업인 증인 채택을 본인 홍보나 여론의 관심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나 사회적 이슈와 크게 상관이 없는 기업인까지 부르고 보자는 식의 구태도 반복되고 있다. 예컨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소속 자유한국당은 최근 3차 남북정삼 회담 특별수행원으로 북한을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을 비롯해 방북한 재계 총수들을 증인 명단에 올렸다. 불필요한 소환이라는 비난과 여당이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총수가 아닌 사장으로 국감 증인 수위를 조절했다.
 
 
“상시국감으로 ‘반짝국감’ 폐해 줄여야”
 
 재계에서는 정치권을 향한 원성이 자자하다. 막상 증인으로 출석해도 국회의원들의 호통과 질타에 CEO들은 고개를 숙이며 쩔쩔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장시간 국감장에 앉혀놓고 질문을 하지 않거나 답할 시간도 주지 않은 경우도 자주 연출된다. 결국 정작 CEO들에게서 제대로 된 답변은 끌어내지 못해 알맹이가 없는 ‘갑질국감’이란 오명을 얻을 수밖에 없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정감사는 1년 간 국정 전반에 대한 감사를 위해 피감기관을 증인 채택하는 것이고, 민간 기업인을 불러 조사하는 건 국정조사인데 의원들은 두 가지를 혼돈하고 있다”며 “의원들의 이 같은 증인 채택 관행은 특권의식이 만든 적폐”라고 지적했다. 묻지마 채택에 따른 비난을 의식한 듯 국회는 증인 채택에 신중을 더하고자 지난해 증인신청 사유와 신청의원 명단을 공개하는 ‘국감 증인 실명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유명무실하다. 기업인 44명을 증인으로 확정한 정무위가 일부 기업인에 대한 신청 이유를 밝히지 않았고, 과방위도 신청 사유와 의원 명단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 여기에 실제 각 분야에서 논란이 됐던 기업인은 증인채택 명단에서 빠졌다.
 
  때문에 매년 국감은 실속없이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다 보니 정치권 안팎에서는 ‘반짝국감’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국감 기간을 늘리거나 아예 1년 내내 상시적인 국감이 가능한 상시국감 제도로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형준 교수는 “미국·영국 등 선진국과 달리 국회의원들이 정기적으로 기간을 정해 정부를 감사하는 국감은 한국 밖에 없다”며 “20일 동안 700개가 넘는 피감기관을 감사하다 보면 제대로 검사가 안 되기 때문에 상시국감과 같은 체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민전 교수도 “몰아치기식의 국감이 아닌 연중 국정감사를 실시하는 상시국회 체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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