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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원·선동열 대결 재구성···정치는 되고 야구 안되나

중앙일보 2018.10.11 08:33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며칠째 충돌 중이다. 둘의 대결이 정점에 이른 건 지난 10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다. 이에 앞서 전초전도 있었다. 이후 일주일 동안 반전이 이어지고 있다.
 
선 감독은 지난 6월부터 야구 대표팀 선수선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LG 오지환(28)을 백업 내야수로 뽑자 팬들이 분노했다. 오지환은 군 야구팀 나이제한(27세)에 걸린 상황에서도 입대를 하지 않았다. 야구 대표팀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서 오지환이 병역특례를 받자 여론은 더욱 악화했다.
 
기자회견과 라디오 방송 통해 '전초전'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앙포토]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앙포토]

 
여론을 등에 업고 손 의원이 등장했다. 문광위 여당 간사인 그는 선 감독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했다. 제20대 국회에 입성하기 전 홍보분야에서 이름을 날렸던 전문가다운 행보였다.

 
손 위원과 선 감독의 대결은 이미 지난 4일 벌어졌다. 선 감독이 기자회견을 열어 “대표팀 선발 과정에서 어떤 불법행위도 없었다”며 “경기력에 신경을 쓰다 보니 (병역에 대한) 국민의 정서, 특히 청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점을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선 감독은 논란의 핵심인 오지환의 선발에 대해 두 가지 관점으로 분리, 해명했다. 주전 내야수 4명을 선발한 뒤 오지환을 백업 요원으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허경민(두산)은 무더위에 지쳐있다는 보고를 받아 ‘유격수 2위’인 오지환을 선발했다는 것이다.

 
이날 밤 손 의원은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해 선 감독을 반박했다. 그는 “사람들이 원하는 건 선 감독의 사과다. 정운찬 KBO(한국야구위원회) 총재도 사과했는데 선 감독은 끝까지 버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인터뷰에서 “우리가 야구 전문가”라고 말한 손 의원은 “선수 선발에는 리즈너블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선 감독의 기자회견은 오히려 국민들을 더 화나게 했다”고 말했다.

 
손 의원은 공격은 KBO를 향했다. 지난 6월 11일 대표팀 선발 회의에 대한 기록이 없다며 강공을 펼쳤다. 이어 “선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으로 정해진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자료가 없다. 야구행정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제가 댓글에서 배운다”고 말했다.
 
손 위원은 국감을 앞두고 사흘 연속 보도자료를 냈다. 첫 보도자료 제목은 『국회 제출한 야구대표팀 최종엔트리 선발 회의록은 사후작성된 가짜 회의록』이었다. KBO가 선 감독 기자회견 때 배포한 자료를 겨냥한 것이다. ‘가짜 회의록’이라는 확정적 제목과 달리 보도자료 내용은 ‘KBO가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에 제출한 회의록은 회의 당일(6월 11일) 작성된 것이 아니라 사후(6월 18일) 작성된 것으로 의심된다’는 거였다.

 
이에 KBO는 ‘대표팀 선발 회의 결과를 토대로 대한체육회 제출용 선발 근거 회의록을 작성하여 6월 21일 대한체육회에 제출했다. 다른 회의록은 없다’고 해명했다. 6월 11일까지의 성적을 기준으로 대표팀을 선발했고, 대한체육회 제출기한에 맞춰 6월 19일 작성한 자료를 냈다는 것이다. 8일 동안 오지환을 비롯한 선발 선수의 큰 기록 변화는 없었다.

 
회의록 용어에 대한 혼란은 있었지만 KBO의 소명은 근거를 갖고 있었다. 오히려 대표팀 선수 선발 회의 내용을 모두 기록해야 한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대한체육회는 대표팀 선발 자료를 받을 뿐 특정 양식의 회의록을 요구하지 않는다. 선수의 장단점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사적이며 내밀한 내용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인사(人事) 관리는 대부분 그렇게 이뤄진다. 기업에서 인사를 낼 때도, 당 대표가 국회의원을 공천할 때도, 국무총리가 국무위원을 제청할 때도 그렇다.
 
손혜원 의원실이 8일 배포한 『KBO의 선동열 감독 선임 과정도 불투명』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도 비슷한 맥락이다. 9일 보도자료 『손혜원 "KBO, 회의록의 뜻이 무엇인지도 몰라"』의 내용은 감정적이었다. 손 의원은 “KBO는 회의록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 같다. 초등학교 학급 회의 회의록도 이렇게 작성하지 않는다는 한 네티즌의 지적을 KBO는 새겨들어야 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선 감독 영역으로 뛰어들어 간 손 위원 
 
보도자료 말미에 홍보 전문가인 손 의원은 야구 전문가인 선동열의 전문성을 공격했다. 보도자료에는 ‘KBO는 대표팀 선발 자료에 WAR(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OPS(출루율+장타율) 등 세이버매트릭스 지표가 없다’고 써있다.

 
KBO가 대한체육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오지환은 타율 0.300, 홈런 4개, 도루 7개(6월 11일 기준)를 기록 중이었다. 이는 야구를 잘 모르는 전문가도 웬만큼 이해할 수 있는 기본적 기록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고 3시간 넘는 회의시간 동안 타율과 홈런 얘기만 했을 린 없다. 오지환은 실책이 많지만 호수비도 많은 수비수다. 삼진이 많지만 장타력이 나쁘지 않은 타자다.

 
손 의원 보도자료에 언급된 WAR는 선수의 종합능력을 가늠하는 지표다. WAR를 따져도 오지환은 6월 말까지 3개월 연속 유격수 2위(통계 사이트 스탯티즈 기준)였다. 오지환 선발에 대해 논란은 있을 수 있지만 근거가 없다고 보긴 어렵다.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10일 국정감사에서 손혜원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양광삼 기자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10일 국정감사에서 손혜원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양광삼 기자

 
선 감독은  “야구에서 센터라인이 중요하다. 투수-포수-유격수-2루수-중견수가 수비 라인의 핵심이어서 (유격수 2위인) 오지환을 백업으로 뽑았다. 내 소신”이라고 강조했다. 주전 내야수가 부상을 당했을 경우 백업선수 활용방안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유격수가 아닌 멀티 플레이어를 백업으로 뽑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해도 선 감독의 계획이 틀렸다고 단정할 순 없다.

 
선 감독은 기능적 측면을 생각하느라 국민 정서를 헤아리지 못한 점을 거듭 사과했다. 선 감독이 수차례 사과를 했지만 손 위원은 “선 감독이 사과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사과하거나 사퇴해야 한다”고 호통쳤다.

 
양측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자 손 위원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손 의원은 “(프로야구를 주관하는) KBO로부터 연봉을 받아서 아마추어 선수를 1명도 뽑지 않은 것이냐”고 외쳤다. 오지환 기록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스탠스를 취하다 다른 프로선수와 비교할 기록도 없는 아마추어 선수를 뽑지 않은 걸 비난한 것이다. “근무시간이 어떻게 되느냐. 너무 편하게 일하는 것 아니냐”는 추궁부터 “판공비를 무제한으로 쓴다는 말을 들었다”는 근거 없는 주장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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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백이 필요한 것 같다"
 
홍보 전문가 손 의원은 2년 전 서울 마포 을에 전략공천 돼 20대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김종인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강력한 공천권을 행사했다(물론 여기에도 회의록은 없다). 인기 있는 몇몇 현역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해 여론이 들끓자 김 비대위원장은 “정무적 판단”이라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둘째)이 기자간담회에서 손혜원 홍보위원장(왼쪽)을 정청래 의원 지역구인 서울 마포을에 전략 공천한다고 밝혔다. [중앙포토]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둘째)이 기자간담회에서 손혜원 홍보위원장(왼쪽)을 정청래 의원 지역구인 서울 마포을에 전략 공천한다고 밝혔다. [중앙포토]

 
손 위원이 인사의 속성을 모를 리 없다. 손 의원은 국감 예고편이었던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에서 지난 2일 임명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임명 후에도 야당의 공세를 받고 있는 유 장관에 대해 손 의원은 “적임자라는 게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야당에겐) 샌드백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유 장관 논란과 오지환 논란을 언급한 간격은 3분에 불과했다. 
 
대통령의 임명권을 강조한 손 의원은 감독의 선발권을 존중하지 않았다. 그는 자칫 ‘정치는 그래도 되고 스포츠는 그러면 안 된다’고 오해하도록 만들었다. 상대의 전문영역에 들어가 근거 없는 의혹들만 제기하다 끝났다. 손 의원에게 우호적이었던 여론이 돌아선 시점이 바로 여기다.
 
야구 대표팀 논란의 핵심은 시대정신의 변화다. 결과주의·성과주의에 함몰된 대한민국을 바꿔달라는 게 국민의 요구다. 런던올림픽 때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박주영을 선발하면서 “박주영이 군대를 안간다고 하면 내가 대신 간다”고 말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축구대표팀이 올림픽 동메달을 따면서 군 면제를 받자 축하가 쏟아졌던 게 불과 6년 전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선 감독은 그걸 간과했다.

 
이 사태에 대해 정치권이 할 수 있는 건 제도정비다. 병역법이 낡았다면 의원이 입법활동을 통해 바꿀 수 있다. 비위행위 등 국감에서 다룰 사안이 생겼다면 행정책임자를 불러 규정에 근거해서 따져 물을 수 있다. “1200만 야구팬이 선 감독을 부르라 내게 요청했다”고 말할 게 아니라.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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