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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보다 잘 키워준다는 신주쿠 어린이집의 운동회

중앙일보 2018.10.11 07:00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6)
신주쿠 세이가 어린이집 모습. 입학한 아이들에게 보육사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신주쿠 세이가 어린이집 홈페이지]

신주쿠 세이가 어린이집 모습. 입학한 아이들에게 보육사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신주쿠 세이가 어린이집 홈페이지]

 
여동생이 '복권 당첨'이라고 역설하는 어린이집(보육원+유치원)이 있다. 엄마인 자기가 키우는 것보다 더 잘 키워준다는 어린이집. 신주쿠 세이가 어린이집(新宿せいがこども園)이다. 홈페이지에 있는 후지모리 헤이지(藤森平司) 원장의 인사말 중에 인상 깊었던 말을 옮겨본다.
 
어느 해 졸업식 때의 일입니다. 학부모 대표로 인사를 하게 된 아버지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들과 길을 가고 있을 때 남자 초등학생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 아이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들에게 '저 아이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아들은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응, 내 기저귀를 갈아줬던 형이야'라고. 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너도 지금 기저귀를 갈아주고 있는 아이를 만나면 먼저 인사해줘야 한다'”

 
아이가 걸음을 떼면 스스로 기저귀를 버리러 가도록 지도한다는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어린아이'가 '더 어린아이'를 돌본다는 이야기는 신선했다. 마치 어린이집이 '대가족' 같다고나 할까.
 
운동회날. 체육관 천장에 아이들의 자화상이 걸려 있다. 부모들은 아이 그림을 스마트폰으로 찍기도 한다. [사진 양은심]

운동회날. 체육관 천장에 아이들의 자화상이 걸려 있다. 부모들은 아이 그림을 스마트폰으로 찍기도 한다. [사진 양은심]

 
2018년 9월 29일 토요일은 운동회였다. 견학하고 놀란 점을 4가지로 추려본다.
 
하나, 보육사의 40%가 남자인 점. 초등학교에서도 보기 힘든 비율이다.
 
둘, 운동회에 등장하는 만국기 대신 아이들의 자화상이 걸려 있는 점. 보육원의 운동회는 어디까지나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소개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그림을 걸어 놓는 것이라 했다. 만 세 살 이하의 아이들은 가족들이 그려주고, 만 세 살 이상 아이들은 본인이 그린다.
 
셋, 경기의 구성. 경기마다 중간에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코스가 있다. 아이가 목표를 정하고 달성하여 성취감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라 했다. 점프할 때는 높은 곳이냐 낮은 곳이냐, 뜀틀의 경우는 몇 단을 뛸 것인지 아이가 말하면 보육사가 재빨리 조정해 준다. 실패한 아이는 납득할 때까지 도전한다. 선생님께 허락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재도전을 하는 것이다. 같은 일본에 살면서도 본 적이 없는 놀라운 운동회의 모습이었다.
 
넷, 보육사들이 즐거워 보인다는 점.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 온 유치원 운동회 때의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실수 없이 연습한 대로 해 줄까 염려하는 이미지가 컸었기 때문에 놀라웠다.
 
운동회 날 경기 진행 모습. 어린이집의 제일 윗반 아이들이 경기 진행을 돕고 있다. [사진 양은심]

운동회 날 경기 진행 모습. 어린이집의 제일 윗반 아이들이 경기 진행을 돕고 있다. [사진 양은심]

 
운동회가 끝난 후 후지모리 원장에게 두 가지 질문을 했다.
 
아이들을 보육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아이들은 유능하다는 것을 믿는다. 예전에는 갓 태어난 아이는 백지장과 같아서 얼마나 주입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고 믿어져 왔지만, 아이들은 본래 유능한 상태로 태어난다. 그 유능함을 일깨워주고 키워주는 것이 보육이다. 어른이 앞질러서 주입 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자기의 가능성을 끌어낼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하고 '지켜보는(MIMAMORU) 보육'을 하고 있다.

또 하나는 '혼합연령 보육'이다. 할 수 있는 아이가 못하는 아이를 도와주고, 못하는 아이는 잘하는 아이의 도움을 받게 한다. 이 과정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법과 힘을 키우게 된다.
 
원장이 아무리 좋은 이론을 가지고 있다 해도 실제로 운영하고 실현하는 것은 보육사이다. 보육사들에 대한 지도 방법은?
우선, 보육사들은 자라난 환경에서 오는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는 시대의 흐름과 변화, 가치관의 차이를 설명한다. 또 하나는 평상시 선배 보육사들의 모습을 보고 배우도록 하고 있다. 내가 보육사들에게 아이들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보육사를 믿고 지켜본다.
 
개구리 모자를 쓴 보육사, 츠키지(築地) 어시장의 생선가게 점원으로 분장한 보육사, 커다란 나비넥타이를 한 보육사. 그 어디에도 억지가 없는, 물 흐르듯 진행되는 운동회의 모습을 보며 보육사들의 팀워크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MIMAMORU(지켜본다)'란 아이에 대한 믿음과 자애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보육 인의 마음가짐이라고 한다. 일본 전국에 2만5000개 있는 보육원 중 'MIMAMORU 보육'을 채택하고 있는 곳은 500개라 했다.
 
후지모리 원장은 'MIMAMORU 보육'을 널리 알리고자 전국으로 때로는 외국으로 강연을 나간다. 싱가포르에는 벌써 140개의 보육원이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강연을 3번 했고, 한국에서는 2017년 10월 한솔어린이보육재단의 초청으로 강연회를 열었다고 한다.
 
『지켜보는 보육 MIMAMORU』 후지모리 헤이지 저, 리틀트리

『지켜보는 보육 MIMAMORU』 후지모리 헤이지 저, 리틀트리

 
'MIMAMORU 보육'은 선진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제안자인 후지모리 원장이 운영하는 '신주쿠 세이가 고도모엔'은 일본 정부도 종종 시찰하고 주목하고 있다. 보육시설 경영자들은 후계자를 취직시켜 배우게 하기도 한다. 후지모리 원장이 쓴 『MIMAMORU 지켜보는 보육』은 2016년에 한국에 소개되었다.
 
운동회를 보는 내내 행복했다. 이 선생님들은 왜 이렇게 신나 보이지? 보육사가 즐거운데 아이들이 신이 나지 않을 수 없다. 목숨과도 같은 내 아이를 최고의 시설에 맡겼다는 안도감은 과연 '복권 당첨'이라 할 만하다 하겠다.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zan32503@nif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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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심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필진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 일본인과 결혼해 도쿄에 살림을 꾸린지 약 25년. 일본으로의 이주는 성공적이라고 자부한다. 한일자막 번역가이자 작가이며, 한 가정의 엄마이자 아내다. ‘한일 양국의 풀뿌리 외교관’이라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한국보다도 더 비빌 언덕이 없는 일본에서 그 사회에 젖어 들고, 내 터전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과 같은 이야기가 독자의 삶에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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