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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문장에 푹 빠진 이문열 "시간 되돌릴 수 있다면…"

중앙일보 2018.10.10 17:00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33)
경북 영천에서 강연 중인 이문열 작가. [사진 송의호]

경북 영천에서 강연 중인 이문열 작가. [사진 송의호]

 
책 2000만 권이 팔린 소설가 이문열(70) 작가가 조선 시대 선비의 글을 읽은 느낌을 풀어 놓았다. ‘문집 독후감’이다.
 
이 씨는 지난 6일 경북 영천의 창녕조씨회관에서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의 문학과 삶’이란 주제로 강단에 섰다. 지산 조호익(1545∼1609)은 퇴계 이황의 제자로 유배지 관서(關西) 지역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임진왜란 시기 의병장으로 활동한 유학자이자 관리였다. 지산학연구소(소장 조순)가 마련한 강연장에는 문중 관계자와 유림, 대구가톨릭대 학생, 경찰청장을 지낸 최기문 영천시장 등 200여 명이 모였다.
 
이문열은 지산 가문의 외손이다. 그는 “서너 살 6‧25 시기 아버지가 월북하고 어려울 때 어머니와 같이 지낸 곳이 영천 외가”라며 “초등학교 2학년 때 정자에서 열린 외할아버지 회갑연이 어렴풋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지산이 영천으로 내려와 학문을 정리하고 후학을 가르친 도잠서당. [사진 송의호]

지산이 영천으로 내려와 학문을 정리하고 후학을 가르친 도잠서당. [사진 송의호]

 
문중은 올봄 『지산집』 3권을 이 씨에게 보냈다. 그는 강연을 부탁해 와 여름 내내 문집을 읽었다고 한다. 다음은 이 씨의 강연. 

“문집에 실린 첫 글은 ‘서정부(西征賦)’다. 내용이 애절했다. 지산은 학문이 웬만큼 익고 뜻을 펴려는 30대 초반 전 가족을 이끌고 2000리 북쪽으로 유배를 떠나는 억울한 일을 당한다. 그러나 유배를 가면서도 원망 대신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17년 동안 유배지 강동 땅에서 오히려 학문을 완성하고 인재를 양성했다. 대표적인 제자가 대동법을 시행한 영의정 김육이다. 서정부는 감동이 있어 다음 편을 읽는 힘이 됐다.

‘서(書)’도 기억에 남는다. 스승과 제자가 묻고 답하는 편지다. 지산은 제자의 질문에 아주 자세하고 정확히 답을 한다. 나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봤지만 그렇게 자상하게 답을 한 적이 없어 감동적이었다. 또 ‘시(詩)’는 주고받는 상대가 서애 류성룡, 한강 정구, 오리 이원익, 한음 이덕형, 여헌 장현광, 우복 정경세 등 당대의 명사가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지산은 시보다 서에서 자신을 더 잘 표현한 것 같았다.” 

 
지산 조호익을 배향한 영천 도잠서원 앞에 세워진 ‘관서부자’ 표석. 조선 선조 임금이 ‘관서의 대학자’란 뜻으로 내린 호칭이다. [사진 송의호]

지산 조호익을 배향한 영천 도잠서원 앞에 세워진 ‘관서부자’ 표석. 조선 선조 임금이 ‘관서의 대학자’란 뜻으로 내린 호칭이다. [사진 송의호]

 
이문열은 체험을 곁들인다.

“소설을 쓰면서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옛날 문장에 재미를 붙인 게 오래지 않다는 것이다. 제게 다시 시간이 온다면 옛 문장의 멋과 맛을 현대 문장 속에 풀어 놓고 싶다. 문장의 아름다운 전통을 계승하지 못했다.

조선 시대 대과(大科) 급제자의 평균 나이가 38세라고 한다. 보통 6∼7세에 『소학』으로 시작해 30년 이상 책을 읽는다. 같은 책을 읽고 또 읽으며 생각도 닳도록 거듭한다. 선비들은 이런 공부를 통해 심오한 원천을 만들어 끊임없이 아름다운 문장을 퍼낼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지산이 초고를 불태우고 64세 마지막까지 미완이 된 『가례고증』도 감동적이었다. 저도 이제 나이 70이 넘어 글쓰기가 힘이 든다. 한때는 글 쓰는 게 자신만만했지만, 나이 들면서 옛사람들 글이 대단하다는 걸 느낀다.”

 
강연을 마친 뒤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이문열 작가. 맨 앞 줄 가운데. 그 오른쪽은 경찰청장을 지낸 최기문 영천시장. [사진 송의호]

강연을 마친 뒤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이문열 작가. 맨 앞 줄 가운데. 그 오른쪽은 경찰청장을 지낸 최기문 영천시장. [사진 송의호]

 
문호 이문열의 조선 시대 문집 독후 강연은 이렇게 끝이 났다.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2004년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을 한 적이 있는데, 심정이 어떤가.
며칠 전에도 소동이 있었다. 자유 한국당에서 조직강화특별위원인가를 해 달라는 제안이 있었다. 거절했다. 15년 전과 비슷한 일이다. 당시는 그래도 ‘인적 청산’이 어느 정도 가능했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당시 최병렬 대표가 난국에 좀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사양했는데 그 뒤 가까운 집안사람(이재오)이 다시 도와 달라 부탁해와 얼떨결에 발을 들였었다.
 
『평역삼국지』를 재미있게 읽은 독자다. 그런 고전을 다시 쓸 의향은 없나.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그 책 덕분에 고향에 집도 하나 마련했다. 옛 책을 번안하고 해석하는 것은 저한테는 이제 시간이 없다. 제 이야기를 하려다 못 쓴 것도 남아 있다. 그런 책을 또 쓰지는 않을 것이다.
 
외가 영천을 소재로 소설 하나를 쓸 수 없는가. 영화도 만들 수 있게.
저한테 그런 많은 시간이 있는지 모르겠다. 지산의 제자 박대덕이 소설적 재미가 있는 인물이다. 문제는 여유와 시간이 있을지다.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yeeho12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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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호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ㆍ중앙일보 객원기자 필진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 은퇴하면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문중 일도 있다. 회갑을 지나면 가장을 넘어 누구나 한 집안의 어른이자 문중을 이끄는 역할을 준다. 바쁜 현직에 매이느라 한동안 밀쳐 둔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한다. 우리의 근본부터 전통문화, 관혼상제 등에 담긴 아름다운 정신, 잘못 알고 있는 상식 등을 그때그때 사례별로 정리할 예정이다. 또 영국의 신사, 일본의 사무라이에 견줄 만한 우리 문화의 정수인 선비의 정신세계와 그들의 삶을 한 사람씩 들여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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