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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불감증이 부른 참사" vs "스리랑카인 엄벌해야"

중앙일보 2018.10.10 10:29
고양 저유소 화재···총체적 부실 속 희생양 논란 
지난 7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저유소에서 휘발유 저장탱크 폭발로 추정되는 큰 불이 나 소방 당국이 헬기를 동원해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뉴스1]

지난 7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저유소에서 휘발유 저장탱크 폭발로 추정되는 큰 불이 나 소방 당국이 헬기를 동원해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뉴스1]

 
"풍등이 아니라 안전불감증이 부른 참사다" VS "고양 저유소에 불지른 스리랑카인을 사형시켜 주세요"(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스리랑카인 구속영장 반려로 석방
검찰 "인과 관계 소명 부족" 이유
안전불감증·총체적부실 책임론 높아져
법조계 "범죄 불분명한테 구속은 과도"
"실수라도 피해 크니 책임져야" 여론도
경찰, 화재 사건 수사전담팀 확대 편성


 
고양 저유소 화재 피의자로 스리랑카 노동자 A씨(27)가 긴급체포되면서 '희생양 만들기' 논란이 일고 있다. 과실에 대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저유소 안전 관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는 덮고 힘없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모든 죄를 씌워서야 되겠느냐는 주장이 맞선다.
 
경기 고양경찰서는 10일 A씨에 대해 중실화 혐의로 구속영장을 재신청했지만,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은 “인과 관계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영장을 반려했다. “저유소 탱크 내에 안전장치가 있을 텐데 어떻게 풍등으로 불이 났는지에 대한 수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검찰이 구속영장 청구를 포기하면서 A씨는 이날 오후 4시 30분쯤 긴급체포 후 48시간 만에 석방됐다. 
경찰이 공개한 폐쇄회로TV(CCTV)에서 스리랑카 근로자 A씨가 저유소 쪽으로 날아가는 풍등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 [사진 고양경찰서]

경찰이 공개한 폐쇄회로TV(CCTV)에서 스리랑카 근로자 A씨가 저유소 쪽으로 날아가는 풍등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 [사진 고양경찰서]

 
하지만 "이번 화재 책임을 외국인 노동자 1명에게 돌리는 게 맞느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경찰 수사 결과 잔디에 불이 붙고 폭발이 있기 전까지 18분간 대한송유관공사 측에선 아무도 이를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폐쇄회로TV(CCTV)가 45대나 설치돼 있었지만 모니터링 전담 인력이 없고, 탱크 외부에 화재 감지 장치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경찰에 따르면 2015년 5월 비전문 취업(E-9) 비자로 입국한 A씨는 월 300만원가량을 버는 현장직 노동자다. 불법 체류자 신분이 아니다. 하지만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이 핫 이슈가 되고, 피의자가 '스리랑카 출신 근로자'라는 사실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제노포비아(Xenophobia·외국인 혐오)' 논쟁도 불붙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10일 오전 10시 현재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 관련 글이 30여 개 올라와 있다. '스리랑카인 구속 당연히 처벌' '스리랑카인 전부를 이번 기회에 추방합시다' '외국인을 몰아내자' 등 부정적 의견도 있지만, '스리랑카인 선처 부탁합니다' '외국인에게 책임을 묻지 마세요' '외국인 노동자가 무슨 죄가 있나요' '스리랑카 노동자 구속하지 말아주세요' 등 동정론이 더 많았다.

 
경찰이 A씨에게 중실화 혐의를 적용하고, 구속영장까지 신청한 것을 두고도 논란이 많다. 일각에선 "아무리 작은 실수라 하더라도 피해 규모가 엄청나다는 점에서 구속 수사가 맞다"고 주장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과도하다"는 부정적 의견이 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인 노영희 변호사는 앞서 한 매체에서 "중실화죄든 실화죄든 중요한 것은 일반적인 주의 의무를 기울였을 때 그런 결과(화재)를 방지할 수 있느냐가 제일 중요한 구성 요건인데 A씨가 과연 약간의 주의를 기울였으면 (화재 위험을) 알 수 있었을까 판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9일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 피의자 스리랑카인 A씨가 호기심에 불을 붙인 풍등과 같은 크기의 풍등을 경찰이 들어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임명수 기자

9일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 피의자 스리랑카인 A씨가 호기심에 불을 붙인 풍등과 같은 크기의 풍등을 경찰이 들어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임명수 기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전북지부 소속 이덕춘 변호사는 "(구속)영장을 신청하려면 범죄가 중대하거나 긴급하다 등 여러 요건이 있어야 한다"며 "하지만 실질적으로 범죄(중실화)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경찰이 구속영장부터 신청하는 건 경솔하고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칫 한국 사회에서 약자인 동남아 노동자에 대한 인권 침해나 차별 논란도 부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A씨의 구속 여부와 상관없이 재판에서 중실화 혐의가 인정되면 3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A씨 석방을 위한 변호인단도 꾸려졌다.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인 ‘아시아의 친구들’의 김대권 대표는 앞서 이날 일산동부경찰서 유치장에 있는 A씨를 면담하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서채완 변호사가 A씨 변호를 자청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 수사전담팀을 확대 편성했다. 경기북부경찰청 형사과장을 팀장으로 지방청 광역수사대와 고양서 강력팀 등 22명으로 꾸렸다. 
 
전담팀은 ‘화재 피해 확산 경위’, ‘화재를 조기에 발견하지 못한 이유’, ‘화재감지시설 정상 작동 여부’ 등 최근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서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다.
 
고양=전익진·임명수·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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