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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상용화 불투명한 기술도 적용하라고?…온실가스 감축 대책에 기업들 울상

중앙일보 2018.10.09 16:43
환경부는 지난 7월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률을 기존 11.7%에서 20.5%로 상향 조정한 '2030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수정안'을 발표했다. 이에 산업계는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중앙포토]

환경부는 지난 7월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률을 기존 11.7%에서 20.5%로 상향 조정한 '2030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수정안'을 발표했다. 이에 산업계는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중앙포토]

CCUS 기술 등 2030년 상용화 불투명…온실가스 로드맵에 담겨 
#환경부는 지난 7월 발표한 '2030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수정안'에서 탄소포집·저장·활용기술(CCUS)을 이용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1030만t 줄이겠다고 밝혔다. CCUS는 발전소나 공장 등에서 화석연료를 태울 때 생기는 이산화탄소를 한데 모아 저장한 뒤, 석유 채굴 등에 활용하는 기술이다. 땅속 깊은 곳에 있는 원유를 채굴할 때 이산화탄소를 집어넣으면 원유 채굴 속도도 빨라지고 이산화탄소도 땅속에 묻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문제는 상용화 시점이다. 마땅한 유전이 없는 한국은 일부 바다 밑을 제외하면 이산화탄소를 저장하거나 활용할 곳이 부족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 이산화탄소 포집 및 처리연구개발센터에서도 "미국·유럽 등 주요국들은 CCUS 기술 상용화 목표 시점을 2030년 이후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환경부가 철강 업계에 도입하겠다고 밝힌 수소환원제철 기술도 2030년까지 상용화가 어렵긴 마찬가지다. 현재는 철광석(Fe2O3)에서 산소 분자(O)를 떼어내 순수한 철(Fe)을 얻기 위해 탄소 덩어리인 코크스(C)를 용광로에 함께 넣는다. 그러다 보니 부산물로 이산화탄소(CO2)가 대량으로 발생한다. 코크스 대신 수소(H2)를 넣으면 똑같이 순수한 철을 얻을 수 있고, 부산물로는 물만 배출될 수 있다. 철강업계가 궁극적으로 도입해야 할 친환경 기술이지만, 정부는 이제 막 연구개발을 시작했고 연구개발이 끝나는 시점이 2024년으로 계획돼 있다. 환경부 역시 이 기술의 상용화가 불확실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번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수정안에선 2030년까지 철강 업계의 주요 감축 수단 중 하나로 내세웠다.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계획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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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계 추가 부담액 6.5조…기업 한 곳당 110억 규모 
철강·석유화학·정유 등 국내 산업계가 부쩍 늘어난 온실가스 감축 부담에 울상을 짓고 있다. 환경부가 지난 7월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을 수정하면서 산업계의 감축률을 기존 11.7%(2030년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 대비)에서 20.5%로 불쑥 올렸기 때문이다. 산업계는 상용화가 불투명한 친환경 기술까지 동원해 무리하게 감축 목표치가 수정됐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일종의 '종량제 쓰레기봉투'인 탄소배출권의 가격도 가파르게 오른 것이 부담을 키운 핵심적인 요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중앙일보가 9일 이번 온실가스 로드맵 수정으로 산업계가 추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계산한 결과, 기존안 대비 6조5000억원에 달했다. 추가 감축분 4220만t을 올해부터 2030년까지 매년 같은 양(325만t)만큼 줄여나간다고 가정하고 배출권 가격이 2만2000원(8일 종가)으로 유지된다는 가정에 따라 계산한 결과다. 탄소배출권 구매 대상 기업이 591곳인 점을 고려하면, 기업 한 곳당 110억원 규모의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는 것이다.
 
정부 "온실가스 목표 수정 불가피"…업계는 "소통 부족" 지적 
환경부는 최근 에너지·친환경 수송 대책 등 정책 목표가 친환경으로 바뀐 점을 반영하면 온실가스 감축 목표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밝힌다. 석탄 화력 발전 비중을 줄이고 전기차·수소차 등 친환경 교통수단을 늘리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로드맵을 통해 기업이 온실가스 감축에 나설 수 있는 명확한 신호를 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업종 특성 무시하고 똑같은 온실가스 감축률 적용" 
그러나 산업계는 물론 전문가들도 이 과정에서 정부와 업계 간 소통이 부족했다고 지적한다. 수정된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가 어떤 근거로 계산됐는지 업계가 알지 못한 상황에서 로드맵 수정안이 나왔다는 것을 가장 큰 불만으로 꼽는다. 또 철강·석유화학·디스플레이 등 업종별 특성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은 물론 감축할 수 있는 양도 달라질 수밖에 없지만, 환경부가 이런 특성을 무시한 채 똑같은 온실가스 감축률을 적용해 탄소배출권을 할당하겠다고 밝힌 점도 대표적인 문제로 꼽힌다. 
 
배출권 할당 관련 소송만 59곳…"정책 투명성 높여야" 
기업들의 반발은 행정 소송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사용하도록 할당된 탄소 배출권과 관련한 이의신청은 당시 배출권을 할당받은 525개 업체 중 243곳에 달했다. 소송까지 제기한 업체도 59곳이다.  
 
강윤영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의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를 알아야 그 기간 기업에 할당되는 탄소배출권의 양이 적당한 수준인지 알 수 있지만, 이런 정보를 정부가 공개하지 않다 보니 정책 투명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탄소배출권=기업이 지구 온난화를 유발할 수 있는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다. 정부로부터 할당받는 이 권리는 한국거래소가 개설한 배출권 거래소에서 거래된다. 일종의 '종량제 쓰레기봉투'처럼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곳은 이를 더 많이 사야 하고, 배출권이 남는 곳은 팔수도 있다.
 
김도년·김민중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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