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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내 차례” 협박 받는 이라크 ‘뷰티 퀸‘…셀럽 잇단 사망

중앙일보 2018.10.09 06:00
“성공한 여성들이 무자비하게 죽어 나가고 있다.” 
 

SNS 스타부터 의사, 인권운동가 등 4명 의문의 죽음
전통 여성상 벗어난 대상 표적 됐나…“극단주의 개입 가능성”

최근 겁에 질린 표정의 한 이라크 여성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영상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가깝게 지내던 유명 모델이자 소셜미디어(SNS) 스타 타라 파레스(22)가 괴한들이 쏜 총에 맞아 숨진 뒤였다. 영상의 주인공은 2015년 ‘미스 이라크’ 출신인 시마 카심(23). 그는 자신이 “다음 차례가 될 것”이라는 살해 협박을 받았다며 울먹였다. 
최근 석 달간 이라크에서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여성 셀럽 4명이 ‘미스터리’ 한 죽임을 당해 그 배경을 둘러싼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영국 가디언 등 외신들에 따르면 파레스는 지난달 27일 오후 5시 45분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한복판인 캄 사라 인근에서 변을 당했다. 자신의 승용차인 흰색 포르쉐를 타고 가다 오토바이에 탄 2명의 남성이 쏜 세 발의 총을 맞은 것이다. 그가 피살되는 장면은 인근 CCTV에 고스란히 담겼고, SNS에는 시신을 덮은 흰 천이 붉은 피로 물든 사진이 떠돌면서 파장을 불렀다. 가디언은 공격을 당한 이가 “정치인도, 공무원도, 군 지도자도, 반군 지도자도 아니었다”며 “내전과 암살에 길들여진 이라크 사회에서조차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전했다.  
지난달 27일 괴한의 총격으로 타라 파레스가 사망하자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팬이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지난달 27일 괴한의 총격으로 타라 파레스가 사망하자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팬이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파레스의 죽음이 더 큰 화제가 된 건 이틀 전 인권 운동가인 수아드 알 알리(46)가 유사한 방식으로 이유도 모른 채 희생됐기 때문이다. 그는 이라크 남부 바스라 지역에서 남편과 함께 자신의 차에 타려던 중 정체 모를 남성의 총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숨졌다. 이를 목격한 상점 주인은 “20대로 추정되는 2명의 남성을 봤다. 1명은 차에 타고 있었고, 다른 남성은 근처에서 기다리다가 여성(알리)이 차 문을 열려는 순간 총 두 발을 쐈다”고 증언했다. 
 
앞서 8월에도 일주일 간격을 두고 32세의 성형외과 의사인 라피프 알 야시리와 뷰티 클리닉 소유자인 라샤 알 하산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당국은 이들의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히지 못한 상태다.
 

왜 타깃이 됐나 
타라 파레스가 생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타라 파레스가 생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파레스는 이라크의 가장 인기 있는 SNS 스타로 꼽힌 인물이다. ‘미스 바그다드’ 출신이자 ‘미스 이라크’ 선발대회에서도 2위에 오른 바 있다. 보수적인 이라크 사회에서 다소 튀는 옷차림과 헤어스타일, 메이크업을 고수했고 이에 열광하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270만명에 달했다. 팝송을 따라 부르거나 메이크업 팁을 가르치는 그의 유튜브 영상에는 수십 만명의 시청자가 몰려 들었다.   
 
파레스는 16세에 결혼한 뒤 이혼해 3살짜리 아들을 혼자 아이를 키우던 싱글맘이었다. 문신이 새겨진 팔뚝이 드러나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나는 전쟁과 파괴가 계속되는 도시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결코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고 적는가 하면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전 남편 얘기 등을 SNS에 거침없이 공개하기도 했다. 이런 점은 젊은 층을 자극했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화나게 했다는 게 영국 데일리 메일 등의 설명이다.  
타라 파레스가 생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타라 파레스가 생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실제 파레스는 때로 ‘매춘부’로 불리는 등 인터넷상 인신공격을 수차례 받았고, 살해 위협에도 시달렸다. 3년 전부터 비교적 안전한 지역인 쿠르드의 에르빌에 거처를 두고 머물면서 이따금 바그다드를 찾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작가이자 파레스의 친구인 오마르 모너는 “파레스는 그저 구속과 증오가 없이 행복하길 원했다. 그러나 이라크에선 이런 자유를 용인하지 않는다”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타라 파레스의 팬이 그가 묻힌 곳에서 기도하며 추모하는 모습. [AP=연합뉴스]

타라 파레스의 팬이 그가 묻힌 곳에서 기도하며 추모하는 모습. [AP=연합뉴스]

파레스가 죽기 이틀 전 사망한 인권 운동가 알리는 여성과 아동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오던 인물이다. 지난 7월부터는 바스라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생고 항의 시위를 지지하고 주최해왔다. 그의 사망 소식에 대해 한 트위터 사용자는 “이 사건은 감히 민병대와 권력에 반대하는 자들에 던지는 메시지”라고 썼다. 
수아드 알 알리가 생전 미디어 컨퍼런스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트위터 캡처]

수아드 알 알리가 생전 미디어 컨퍼런스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트위터 캡처]

8월에 자택에서 숨진 나머지 2명은 뷰티업계 전문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야시리는 ‘이라크의 바비인형’이라 불렸던 유명 성형외과 의사다. 전쟁에서 피해를 보거나 선천적 결함이 있는 아이들을 치료하는 데 집중했던 바비 메디컬 센터를 운영해 왔다. 죽기 전 SNS에 얼굴이 크게 손상된 후세인이라는 소년과 찍은 사진을 올린 야시리는 “그가 다시 거울을 볼 수 있게 보장하겠다”고 썼다. 그는 생전 여성들을 향해 “외모를 바꿔 꿈을 이루라”는 주장을 해왔다고 한다. 일주일 뒤에 사망한 하산은 바그다드의 유명한 비올라 뷰티 센터 소유자였다. 
 
이슬람 극단주의 소행?
8월에 자택에서 숨진 성형외과 의사 라피프 알 야시리가 자신이 치료하는 후세인이라는 소년과 함께 찍은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8월에 자택에서 숨진 성형외과 의사 라피프 알 야시리가 자신이 치료하는 후세인이라는 소년과 함께 찍은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이들의 죽음에 대해 일각에선 수년 간의 전쟁이 계속된 곳에서 무작위 하게 벌어진 폭력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성계 등에서는 전통적 여성상을 벗어난 이들을 타깃으로 한 표적 살인이라는 우려를 내놓는다. 여성의 사회활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슬람 극단주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라크 인권 그룹인 알 아말 협회 창립자인 한나 에드워는 “이 같은 살인사건은 특히 활동가들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메시지를 보내도록 계획된 것”이라고 말했다. “공인인 여성을 공격하는 건 그들에게 집에만 있으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다”면서 “여성들이 SNS 프로필을 비활성으로 바꾸거나 로우키(low-key)로 살고 있다. 이런 죽음은 공포를 확산시키고 젊은 여성과 페미니스트들을 두렵게 한다”고도 지적했다.  
뷰티 클리닉을 운영했던 라샤 알 하산의 생전 모습. [페이스북 캡처]

뷰티 클리닉을 운영했던 라샤 알 하산의 생전 모습. [페이스북 캡처]

정치적 혼란을 야기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모하마드 나지르 알 카르불리 이라크 의원은 "대낮에 유명 여성을 죽이는 것은 바그다드의 안보 상황을 혼란시키고 시민들의 신뢰를 약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하이데르 알 아바디 전 총리는 동일한 인물들이 공격의 배후에 있는지, 동기는 무엇이었는지 등이 분명치 않다면서도 이들 사건이 ‘계획된 범죄’일 가능성을 염두에 둔 채 수사를 지시한 상태다. “타락과 싸운다는 구실 하에 안보를 훼손하는 조직적인 단체에 의한 계획”이라는 것이다.
 
쿠르드계 이라크 매체 쿠르디스탄24에 따르면 파레스의 죽음과 관련, 카심 알 아라지 이라크 내무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극단주의 조직이 개입됐을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가해자 수색을 계속하고 있다고 7일(현지시간) 밝혔다. 
앞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물러난 이후인 2005년에도 시아파 극단주의자와 정권에서 소외된 일부 수니파가 치안 부재를 틈타 신(新) 여성을 노린 이른바 표적 테러를 벌인 바 있다. 이슬람 율법에 따른 옷을 입지 않은 여성들이 공격을 당해 바그다드에서 30여 명, 모술에서 20명이 희생됐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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