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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왜 한국에는 유튜브 같은 기업이 없는가

중앙일보 2018.10.09 00:30 종합 25면 지면보기
안민호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안민호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삼성전자·현대자동차는 있지만 한국에 왜 유튜브나 구글·페이스북 같은 혁신적 기업은 불가능할까. 2000년쯤의 일이다. 일반인들도 특별한 제한 없이 자신이 제작한 영상을 직접 업로드 할 수 있는 ‘올리브 캐스트’라는 영상 공유 플랫폼을 숙명여대에서 만든 적이 있다. 꽤 많은 사람이 찾고 이용했지만 1년 남짓 만에 문을 닫았다. 기술적·재정적 문제도 있었지만, 서비스가 지속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누구나 영상을 쉽게 올릴 수 있는 시스템 자체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이었다. 그 후 몇 해가 지나 미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새롭고 혁신적 사이트가 있다 해서 찾아보니 올리브 캐스트와 너무 흡사해 놀랐던 적이 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세계 최대의 미디어 플랫폼으로 성장한 유튜브다.
 

기존 방송이 비주류 만족 못 시켜
차별성에 큰 가치 부여하는 시대
10~60대 유튜브 사용 느는 이유
규제 보다 역기능 최소화로 가야

최근 한국에서도 유튜브 이용량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경쟁 소셜 미디어들의 하향세가 뚜렷한 가운데 이용 시간 기준으로는 유튜브가 지상파TV 바로 다음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모여드니 문제점에 대한 지적도 늘고 있다. 얼마 전 인터넷 기반 영상 플랫폼(OTT) 서비스를 방송법상 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통합방송법 초안이 공개됐다. 새로운 영상서비스를 법적 체계에 편입하고, 넷플릭스와 같은 외국기업과 국내 유료방송사업자의 역차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동시에 혐오 표현이나 가짜 뉴스 문제를 들어 현 정부에 비판적인 보수적 유튜브 채널들을 규제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사회적 소통에 있어서 표현의 자유와 규제 문제는 늘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이슈였다.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다른 관점이 있다. 첫째는 규제되지 않는 소통은 문제를 과장하고 불만을 키우며 공포와 혼란을 조장하기 때문에 커뮤니케이터는 자격을 갖춘(licensed) 사람들로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거짓은 전염성이 강하고 사회를 불안하게 한다는 생각이다.
 
대중 소통은 혼란은커녕 불만과 비판 그리고 변화에 대한 욕구를 잠재우는, 교묘하게 억압적이고 조작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또 다른 관점도 있다. 현실에서 자본과 권력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사회적 소통은 대중이 기존 체제에 순응하고, 문제에 무관심하고, 지배적 가치를 추종하게끔 한다는 시각이다. 전자가 보수주의적 견해라면 후자는 진보적·사회주의적 관점이다. 이들은 사상과 의견이 오가는 시장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시론 10/09

시론 10/09

문제가 있더라도 최대한 자유롭게 말하고 들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시각도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자유로운 사회적 소통은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상호 이해하고 타협·협상·협력함으로써 사회 속에서 공존할 수 있는 중요한 물리적 심리적 토대가 된다. 누구나 자유롭고 제한 없이 발언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고 존중되고 권장해야 한다. 공정하고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다면 좋은 것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걸러질 것이라는 믿음이 여기에 있다.
 
위에 언급한 세 가지 관점 중 어느 하나가 전적으로 옳고 다른 것은 틀리다고 할 수는 없다. 현실은 복합적이고 서로 다른 관점은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분명한 것은 자유주의적 관점보다는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관점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유튜브와 같은 혁신적 미디어 기업이 나오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 자체로 하나의 자율체계인 유튜브는 차별화된 기호와 성향을 가진 이들이 폭넓게 모여든다. 주류 매체가 제공하지 못하는 효용에 최적화된 플랫폼이다. 비주류 취향의 별난 젊은이들이 즐겨 찾던 유튜브에 60대 이상의 보수적 이용자들이 유입되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의 이용자는 보편성을 추종하던 과거의 동질적 대중과는 다르다. ‘연결됐지만 이질적인 개인들’이다. 시대는 주류적 보편성이 아니라 비주류적 차별성과 특이성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데, 주류 방송 매체들은 이런 흐름에 충분히 호응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을 도외시하고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규제하겠다고 하니 우려스러운 것이다. 자본과 권력에 휘둘리는 언론 환경을 비판하다 갑자기 세상을 어지럽히는 ‘가짜 뉴스’가 문제라고 입장을 바꾸니 그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것이다.
 
개입은 필요하지만, 새로운 매체의 차별적 효용을 고려하고 역기능을 최소화하는 규제여야 한다. 정부의 직접 개입만이 능사는 아니다. 문제가 있는 콘텐트를 걸러낼 수 있는 생태 시스템 구축과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먼저다. 불안하고 위험해 보여도 그것이 순리다. 자율적 체계를 신뢰할 때 비로소 혁신도 가능해진다.
 
안민호 숙명여대 미디어학 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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