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트십 찾기 ④ 앙트십의 발현
‘학교가 창의력을 죽인다(Schools kill creativity, 2006)’라는 TED 강연으로 알려진 영국 워릭대 명예교수 켄 로빈슨의 말로 바꿔 소개하면, 이 모든 일은 시민성을 기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가 쓴 책 『학교혁명』에는 학생들의 성공적인 삶을 위해 호기심, 창의성, 소통 같은 8가지 핵심 능력을 강조하는데 그중 하나가 시민성(citizenship)입니다. ‘사회에 건설적으로 참여하며 사회를 지탱하는 과정에 동참하는 능력’이죠. 이 과정에 동참하는 적극적 시민을 켄 로빈슨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의식하고, 사회제도와 정치제도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며,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명확하게 표현하며,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 있고, 지역공동체의 일에 적극적이며,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사람.”
4회에서는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많은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입시를 앞둔 삼괴고(경기도 화성시) 3학년 김규나 학생과 2017년 미림여자정보과학고를 졸업하고 사회인으로 활동 중인 전채원(20)씨입니다. 앙트십의 발현을 통해 거침없이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문제 발견으로 달라진 규나 학생 “세상이 열리는 경험”
고2였던 지난해 3월 앙트십스쿨을 들은 규나 학생은 “문제를 발견하는 힘을 키웠다”고 말했습니다. 규나 학생이 있던 팀의 만원프로젝트는 교내에서 파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친구들의 생일파티를 열거나 동아리 파티를 장려하고 지원하는 일이죠. 처음엔 ‘학교에서 파티를 여는 게 과연 가능할까?’라고 생각했지만, 기획을 행동으로 옮기며 의구심은 곧 자신감으로 바뀌었죠. 그 뒤로는 주변의 모든 일이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김규나 학생은 "앙트십스쿨을 만난 후 세상이 열리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사진은 김규나 학생과 삼괴고 창의진로부장 오일환 선생님.
문제발견은 자연스레 문제해결로 이어졌습니다. 이것저것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습관이 생겼고 엉뚱한 생각이 해결책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무렵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에 관한 뉴스를 보게 됐어요. 에이즈나 C형감염처럼 혈액으로 감염되는 질환 때문에 결국 50명에게 집단 감염된 사례를 고발하는 뉴스였어요. 또 사용한 주사기는 캡을 씌워서 버리는데, 그 과정에서 의료진이 자신의 손을 찌르는 자상사고도 많이 발생한대요.”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으로 인한 집단 감염과 자상사고. 이 두 가지를 해결할 방법을 두고 규나 학생은 고민에 빠졌죠. 실제로 주사기를 사서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하다 ‘바늘을 주사기 안으로 넣어버리면?’이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실제로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 먼저 프로토타입(성능을 검증하기 위해 만드는 시제품)을 만들었습니다. 바늘은 주사기 밖이 아니라 안에서 돌려 넣게 만들고, 리벳이란 도구를 사용해 주사의 피스톨 부분과 바늘 부분을 결합했죠. 또 바늘을 고정하는 나사의 반대 방향으로 피스톤을 돌려주면 바늘이 주사기 안으로 쏙 들어가도록 만들었습니다. 즉 주사기 통이 캡의 역할까지 하는 셈이죠.

규나 학생이 청소년 비즈쿨 사업에서 새싹기업 사업계획서로 제안한 자상사고 방지 주사기의 기획안.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
대단한 성과를 올렸지만, 규나 학생은 아직 평범한 고3 수험생입니다. 비즈쿨페스티벌이 끝난 지난해 겨울에는 상담실에서 펑펑 울기도 했습니다. 노력하는 만큼 결과가 달라지는 프로젝트와 달리 성적은 고생하는 만큼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죠. 입시공부와 다른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것도 힘에 부쳤고요. 힘든 시기에 의지가 된 것은 선생님들이었습니다. 동아리 담당 선생님들, 그리고 삼괴고에 앙트십스쿨을 처음 신청하고 전교생이 앙트십 교육을 받도록 만든 장본인인 창의진로부장 오일환 선생님입니다.

경기도 화성시 삼괴고의 앙트십 수업 모습.
규나 학생도 선생님의 응원과 위로에 다시 용기를 얻었습니다. “저희는 학생이라서 잘 안 될 거 같다고 주저할 때가 많아요. 그때 어른이 “괜찮아”라고 말하면 용기가 생겨요.”
그리고 상담 이후 스스로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그저 의연하게, 꾸준히 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의연하고 꾸준하게 나아가 맞닿을 첫 번째 목표는 경영학 전공입니다. 가고 싶은 대학도 마음속에 몇 곳 정해뒀습니다. 그다음 행보를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막연히 생각해둔 방향도 있죠.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계 ‘브래들리 타임피스’를 만든 김형수 대표가 제 롤모델이에요. 눈으로는 시간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손으로 만져서 시간을 알 수 있는 시계를 만들었다고 해요. 그런데 이 시계가 디자인이 참 예뻐요. 시각장애인은 물론이고 일반인에게도 인기가 좋아요. 유니버셜 디자인이라 불릴만한 시계인데, 저도 일반인과 장애인 구분 없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도전의 기회를 찾아다닌 채원씨
규나 학생이 ‘문제발견’으로 인해 세상이 열리는 경험을 했다면, 채원씨는 고1 때 앙트십스쿨(2014년)을 듣고 ‘문제해결 능력’을 키웠다고 말합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채원씨는 고민이 많았다고 합니다. IT 기술의 리더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마이스터고에 들어왔지만 프로그래밍 언어는 어려웠고, 잘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느라 자존감은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컸죠, 그때 만난 것이 바로 앙트십스쿨입니다.
“당시 제가 가장 주목한 건 ‘우리가 닥친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시도하는 거였어요. 이런 자세 덕분인지, 앙트십스쿨을 들은 이후로는 “채원님은 문제해결 능력이 좋아요”란 말을 자주 듣게 됐죠.”

2016년 8월 O2O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나우버스킹’에 취업해 현재 사업개발팀에서 비즈니스 디벨로퍼로 일하고 있는 채원씨.
물론 스타트업에 취업하기 위해 먼저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지만 말입니다. “마이스터고는 졸업하면 바로 취직하는데, 옛날 어른들의 시선으로 보면 고졸인 셈이에요. 대기업에 고졸 신분으로 입사해 회사의 부속품처럼 일하고 싶지 않았어요. 또 제가 일하는 회사가 소규모지만 사람들이 정말 좋았고, 이분들과 같이 일하면 나도 뭔가를 해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내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부모님을 설득했죠.”
문제 해결의 능력자로
목적이 분명한 설득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사실, 채원씨는 이런 경험이 더러 있습니다. 우선 마이스터고를 가기 위해 중학생 때부터 부모님을 설득했죠. 당시 부모님을 설득한 포인트 역시 두 가지라고 합니다.
“미래는 IT 기술의 시대가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 누구보다 내가 먼저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렇다면 마이스터고가 적합하다고 느꼈고요. 두 번째 이유는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어려운 세상이잖아요. 또 대학을 졸업해도 무슨 일을 하면 좋을지 모르는 학생이 많아졌고요. 공부가 더 필요하다면 나중에 해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전채원씨의 첫 앙트십스쿨 수업 현장. 채원씨는 "IT 기술로 문제를 해결한 사람들과 사회적기업 같이 다양한 앙트레프레너에 대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설득 포인트는 ‘취업’이었습니다. 마이스터고 학생들의 목표가 ‘취업’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죠. 설득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우선 앙트십스쿨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뭘 배우는지를 설명했죠. 이런 경험을 통해 문제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는데, 이 능력은 사회에 나가 어떤 일을 하든 꼭 필요한 능력이라고 어필했습니다. 즉 취업에 도움이 된다고 설득한 것이죠. 그리고 문제해결 능력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며 자연스럽게 몸에 배도록 익히는 것이라고도 설명했습니다. 학생들의 니즈를 파악해 일목요연하게 설득하는 채원씨를 보면 그야말로 문제해결의 능력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뀌어 가는 세상, 달라지는 꿈
현재 채원씨는 경력 3년차 사회인입니다. 작은 업무부터 시작해 현재는 사업개발팀에서 비즈니스 디벨로퍼로 일하고 있습니다. 사업적 기회를 발굴하며 사업을 기획하고 영업까지 합니다.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문제해결 능력이 도움이 됐다고 채원씨는 말합니다.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본질이 다른 경력자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제 능력이 도움이 됐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런 능력이 있으면 태도도 달라져요. 업무 피드백을 받으면 “이걸 왜 해야 하지?”라고 말하는 대신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같은 질문을 하게 되거든요.”
채원씨는 업무에 필요한 키워드를 두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질문한다’ 그리고 ‘행동한다’입니다. 단순하지만 중요한 키워드라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채원씨는 사업개발팀의 이사로부터 “문제해결 능력이 좋아서 업무에 지장이 없다”란 평을 듣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업무의 큰 그림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죠. 예전엔 뭘 어떻게 할지 질문하며 일했다면, 지금은 스스로 어느 정도의 계획을 잡을 수 있게 된 겁니다.
성장한 만큼 시야도 넓어지고 생각도 많아졌습니다. 특히 학생 때 어렴풋이 느끼기만 했던, 변화하고 있는 사회를 실감하고 있죠. 채원씨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알고 있던 것들, 고정관념 같은 것들이 사라질 것 같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후배들은 프로그래밍을 배웠으니 개발자가 되어야 한다는 프레임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내가 공부한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좀 다르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내가 어떤 것을 재미있어하는지, 뭘 해보고 싶은지 같아요. 그래야 일도 재미있게 할 수 있거든요. 무엇을 재미있어하고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는지 알려면 뭐든 시도하는 수밖에 없고요.”

앙트십스쿨 후배들에게 "앙트십 관련 활동을 하며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고 얘기하는 전채원씨.
채원씨의 학창시절 꿈은 CEO였습니다. 하지만 사회인이 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꿈도 달라졌죠. 정확하게는 꿈을 다시 찾는 중입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는 과정 같아요.”
꿈은 찾는 중이지만, 꿈을 꾸는 키워드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기술기반, 인간, 그리고 문화입니다. “인간은 늘 관심 있는 분야였고, 사람이 모여 있는 것 자체를 문화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기술기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요. 하지만 기술이 너무 앞서면 사람들은 두려워하죠. 이런 부분을 해결하고 싶어요.”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며 세상은 바뀌어 갑니다. 바뀌어 갈 세상 속에는 다양한 형태의 삶이 존재하죠. 그 다양성에 맞춰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고 채원씨는 말합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 대한 교육이 바로 서야 사회가 바뀌고 미래도 긍정적으로 변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앙트십스쿨처럼 다양한 삶의 기회가 있다는 걸 학생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으면 좋겠어요.”
기획·글=commons, 사진=임익순·전문식(오픈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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