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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뛰는 뇌사환자, 그는 살아있는 걸까 죽은 걸까

중앙일보 2018.10.08 09:01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4)
태어난 시각에 대한 논의는 역사가 깊다. 그러면 '죽은 시각'은 어떤 '순간'이 결정하는 것일까? [사진 pixabay]

태어난 시각에 대한 논의는 역사가 깊다. 그러면 '죽은 시각'은 어떤 '순간'이 결정하는 것일까? [사진 pixabay]

 
낙태에 관한 토론에 빠지지 않는 단골 소재가 있다. 태아는 언제부터 인간이라 할 수 있느냐다. 정자와 난자가 만난 시각, 아이가 형체를 갖춘 시각, 심장이 뛰기 시작한 시각, 엄마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온 시각 등등. 관점에 따라 다양한 주장이 있다. 수정에서 출산까지 한 생명이 탄생한 건 틀림없다. 그러나 어느 한 지점을 콕 집어 말하긴 어렵다.
 
‘태어난 시각’에 대한 논의는 역사가 깊다. 아마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래서 조금 다른 주제를 꺼내려 한다. 바로 사람이 ‘죽은 시각’에 대해서다. 사회적·철학적 죽음 같은 어려운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그냥 병 들어 죽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주위에서 흔히 경험하는 보통의 죽음을 얘기하려 한다. 대신 죽음의 ‘순간’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사람이 ‘죽은 시각’을 결정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를 얘기해 보려고 한다. 죽은 사람은 척 보면 아는 거 아니냐고 쉽게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내 경험에 따르면 탄생만큼 어려운 게 죽음이다.
 
멈춘 심장을 살리는 기계의 힘
심장박동 상태 모니터. 한국은 심장박동이 멈추면 죽음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심정지 환자에게 '에크모' 라는 시술을 한 후 환자는 살 수 있었다. 때문에 심장이 멈췄다고 함부로 사망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중앙포토]

심장박동 상태 모니터. 한국은 심장박동이 멈추면 죽음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심정지 환자에게 '에크모' 라는 시술을 한 후 환자는 살 수 있었다. 때문에 심장이 멈췄다고 함부로 사망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중앙포토]

 
한국은 심장사를 택하고 있다. 심장박동이 멈추면 죽음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의학의 발전은 많은 걸 바꾸었다. 애매한 경우들이 생겨났다. 얼마 전 응급실에서 온 환자도 그런 경우였다. 그는 치료받지 않고 집에 가겠다며 길길이 날뛰다 돌연 고꾸라졌다. 그리곤 그대로 심장이 멈춰 서버렸다. 눈앞의 환자라 에크모라는 시술을 얼른 할 수 있었다. 멈춘 심장을 대신하는 펌프 기계를 삽입한 것이다.
 
시술이 끝나자 환자는 금세 정신을 되찾았다. 초음파로 보니 심장은 완전히 멎어 있었다. 하지만 환자는 살아 있었다. 심지어 질문에 고개를 끄덕여 대답할 수 있을 정도였다. 순전히 기계의 힘으로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 환자를 죽었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국 환자는 나중에 두 발로 걸어 퇴원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목맴이나 일산화탄소 중독은 뇌 손상을 일으킨다. 자칫 환자가 식물인간이나 뇌사에 빠지기 쉽다. 오래 전, 날을 새 가며 환자를 살린 적이 있었다. 팔팔한 20대 나이의 환자였기 때문일까. 동이 틀 때쯤 심장을 비롯한 모든 장기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단, 머리만 빼고. 
 
노력한 보람도 없이 그는 뇌사에 빠졌다. 뇌가 죽었으니 환자는 죽은 것과 진배없었다. 그렇지만 심장이 뛰고 있으니 사망 선고를 내릴 수 없었다. 심장사 관점에서 보면 명백히 살아있는 환자였기 때문이다.
 
심장은 살아있지만 뇌사 상태에 빠진 환자는 사망 선고를 내릴 수 없다. 하지만 보호자가 장기기증에 동의하는 순간 뇌사 상태는 죽음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중앙포토]

심장은 살아있지만 뇌사 상태에 빠진 환자는 사망 선고를 내릴 수 없다. 하지만 보호자가 장기기증에 동의하는 순간 뇌사 상태는 죽음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중앙포토]

 
하지만 보호자가 장기기증에 동의하는 순간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그제야 뇌사 상태가 죽음으로 인정받았다. 여전히 펄떡펄떡 뛰고 있는 그의 심장은, 다른 생명을 구하는 데 쓰였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모호하다. 심장이 뛰지 않아도 살아있을 수 있다. 의학이 발전하면 인공 심장을 넣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사람들의 합의에 따라 기준이 바뀌기도 한다. 한국의 법은 장기기증 상황에서만 예외적으로 뇌사를 인정한다. 이제 더 어려운 질문을 해보겠다.
 
심장을 대신하는 에크모(ECMO)를 했음에도 상태가 나빠진 환자가 있었다. 온갖 치료에도 불구하고 결국 온몸의 장기가 모두 멈추었다. 남은 건 심장을 대신해 뛰고 있는 에크모뿐. 더는 가망이 없었다. 사망 선고를 내리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기계가 심장 박동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심장이 뛰고 있으니 사망 선고를 내릴 수 없다. 필연적으로 적당한 시점에 기계를 꺼야 한다. 그렇다면 이 환자가 죽은 시점은 언제일까. 처음 심장이 멎어 에크모 시술을 했을 때? 의사가 가망 없다고 판단했을 때? 기계를 끄고 사망 선고를 내렸을 때?
 
심폐소생술 환자의 사망시각은?
이미 심장이 멎은 환자가 기계와 심폐소생술로도 회복하지 못하고 죽는 경우에 이 환자의 사망 시각은 언제일까, 처음 심장이 멎은 시각? 아니면 심폐소생술을 중지한 시각일까? [중앙포토]

이미 심장이 멎은 환자가 기계와 심폐소생술로도 회복하지 못하고 죽는 경우에 이 환자의 사망 시각은 언제일까, 처음 심장이 멎은 시각? 아니면 심폐소생술을 중지한 시각일까? [중앙포토]

 
이번에는 심폐소생술 환자의 이야기다. 심폐소생술은 심장이 멎은 환자에게 한다. 즉, 죽은 사람에게 하는 시술이다. 심폐소생술로 살아난 사람들은 한번 죽었다가 부활한 셈이다. 반대로 심폐소생술에도 회복하지 못하고 그대로 죽는 환자도 많다. 이들의 사망 시각은 언제일까. 처음 심장이 멎었을 때? 아니면 심폐소생술을 중지했을 때?
 
심폐소생술을 시작한 지 30분이 넘었다. 회복 가능성이 없어 사망 선고를 내리려 했다. 그런데 보호자가 포기하질 않는다. 심폐소생술을 계속해주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1시간을 더 했다. 이 환자는 실제로 언제 죽은 것으로 봐야 할까? 심폐소생술 시작 시점? 30분째? 1시간 후?
 
조용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semi-m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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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수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필진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 의사는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다. 삶과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는 특히 그렇다. 10년 가까이, 셀 수 없이 많은 환자의 생과 사의 현장을 함께 했다. 각양각색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이제는 죽음이 삶이 완성이란 말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환자를 통해 세상을 보고, 글을 통해 생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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