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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한국 앞서간다 불평 말고 북행열차 속도 높여라

중앙선데이 2018.10.06 00:20 604호 29면 지면보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밤 평양 5·1 경기장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평양 주민들을 상대로 감사 연설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2박 3일간 방북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밤 평양 5·1 경기장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평양 주민들을 상대로 감사 연설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2박 3일간 방북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평창에서 시작되어 판문점→싱가포르→평양을 거치면서 급상승 기류를 탄 한반도 비핵화·평화 프로세스는 9월 유엔총회에서 중간 클라이맥스를 맞았다. 종전선언 문제에 걸려 터널 속에 갇혔던 비핵화 협상이 문재인-트럼프 정상회담, 폼페이오-이용호 외교장관 회담, 빈의 스티브 비건-최선희 회담이 중첩적으로 열리면서 터널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발목 잡는 기성 관료들 탓
북·미 간 불신 유령처럼 떠돌아

폼페이오 방북, 김정은 방한 이어
북·미 정상회담 열리면 협상 가속

남·북·미 정상 서울 만남이 최선
미국, 김정은 현실주의 변화 믿어야

답은 모두가 알고 있다.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필사적인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평양과 워싱턴에 유령처럼 떠도는 상호불신이다. 이용호도 유엔 총회 연설에서 미국을 어떻게 믿고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계속 취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발사대를 폐기한 북한은 6·12 싱가포르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 미국을 어떻게 믿고 미국이 달라는 핵 목록을 주겠느냐는 뜻이다. 미국도 “북한을 어떻게 믿고 종전을 선언하고 제재라는 레버리지를 버릴 수 있느냐”고 물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이 판문점·평양·워싱턴·뉴욕을 부지런히 왕래하는 것도 북·미가 서로의 약속을 믿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는 “신뢰의 도약”(leap of faith)의 세일즈맨이다.
 
종전선언에 대한 북·미 간 해석차가 특히 문제다. 평양 정상회담에서 돌아온 문 대통령이 대국민 보고에서 종전선언의 의미를 설명하는 데 역점을 둔 것도 그래서다. 그는 전쟁이 끝났다는 종전선언을 먼저하고, 거기서부터 비핵화→평화협정→북·미 관계 정상화를 협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임을 강조했다.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뜻, 그러니 미국이 주저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남북, 종전선언이 정치선언 이라는 데 공감
 
종전선언에 대한 이런 인식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공유한다. 그러나 국제법 조문을 따지고 하나 주고 하나 받는 전통적 협상의 틀에 갇힌 워싱턴 관료들, 미국 사람들이 왕크(wonk)라고 멸칭하는 사람들이 트럼프의 발목을 잡는다. 전통적 관료들을 지원하는 세력이 의회, 군 수뇌부, 거대 방산기업, 방산기업의 연구 프로젝트로 먹고사는 유수한 싱크탱크들이다. 한반도에 평화가 오면 그동안 누려오던 기득권을 놓칠 것을 걱정하는 세력들이다.
 
북한의 요구에는 종전선언 외에 비핵화 협상 재개와 길지 않은 시차를 두고 평양과 워싱턴에의 상호 연락사무소 개설과, 더 중요하게는 대북제재, 그중에서도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해제가 들어있다.
 
그러나 미국은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공장과 발사장 폐기는 북한이 취해야 할 초보적인 조치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미국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북한의 핵 신고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핵무기와 핵물질과 북한 전역의 산악지대에 은닉해 둔 단·중·장거리 미사일 목록이다. 비핵화의 핵심은 검증이다. 북한이 제시한 목록을 미국이 가지고 있는 목록과 대조하면서 핵·미사일의 검증을 통과하지 않는 비핵화를 미국은 수용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에 덕담하고 웃는 얼굴을 보이면서도 종전선언과 제재 해제 같은 상응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북한이 핵 목록을 넘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착상태는 올해 안에 풀릴 것으로 보인다. 2018년의 남은 3개월 동안에 적어도 세 번의 결정적 기회가 온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이번 주말 4차 평양 방문,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 김정은-트럼프 북·미 2차 정상회담이다. 폼페이오는 평양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본격적인 비핵화 협상 재개의 조건을 다시 정리할 것이다. 특히 해소되어야 할 견해차는 북한은 종전선언을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종식과 비핵화 협상의 출발점으로 생각하는 반면 미국은 종전선언을 사실상의 평화협정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한 번의 회담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넓은 간극이다. 북한과 미국의 이런 입장 차이가 해소되지 않으면 북·미 2차 정상회담은 가시권을 벗어날 수도 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문 대통령의 중재역할이다.
 
 
문재인 정부, 꿩 대신 닭으로 미국 설득
 
지난달 24일 뉴욕에서 한·미 정상회담 중 참모들과 대화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시스]

지난달 24일 뉴욕에서 한·미 정상회담 중 참모들과 대화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안보팀은 북·미 간의 이 갭을메우는 데 초점을 맞추고 북한과 미국을 설득하고 있다. 평양 방문을 마치고 서울에 오는 폼페이오는 10월 서울에서의 종전선언 가능성 여부를 말할 것이다. 트럼프는 일찍부터 평양 방문의 가능성을 배제했다. 김정은의 워싱턴 방문은 타고 갈 비행기, 경호, 각종 장비(logistics)의 문제로 어렵다. 그래서 서울이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서울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만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한국 역사의 경천동지할 “사변”이다. 판문점보다는 서울이 세 정상의 경호, 전 세계를 향한 TV 생중계 시설, 한국 국민에게 한반도 사태, 특히 남북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실감 나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월등히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미국은 무엇을 믿고 종전선언을 하고 제재를 완화할 수가 있는가. 김정은의 변화다. 김정은은 김일성도 김정일도 아니라는 사실이 김정은에 대한 신뢰를 담보한다. 김일성에서 김정일까지의 북한의 정통성 근거는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이었다. 김정은은 주체도 선군도 말하지 않는다. 강성대국 대신 강성국가를 말한다. 10대에 스위스 유학의 영향 탓인지 그는 세계를 아는 현실주의자다.
 
그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은 심경이 허세의 옷을 벗은 김정은의 맨얼굴을 보여준다. “우리가 미국과 합의한 걸 위반하면 미국이 보복해 올 텐데 그걸 어떻게 감당합니까.” 김정은 위원장이 현실주의자라면 미국이 지금의 단계에서 안보리 주도의 대북제재와 미국의 독자적인 제재를 쉽게 풀 수 없다는 것도 모를 리가 없다. 미국은 충분히 검증된 비핵화(FFVD)가 완료될 때까지 제재를 유지하자는 입장이 완고하다. 그러나 하늘 아래 불변인 것(immutable)은 없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2월 평창에서 만들어 낸 대반전이 반복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트럼프가 김정은의 정상회담 돌출 제안을 오랜 좌고우면 없이 수락한 기적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 충동적이지만 창의적인 생각이 번뜩이는 김정은과 트럼프가 다시 담대한 빅딜로 한반도 역사를 크게 추동할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구상은 몽상적(visionary)이라도 실천적인 정책에서는 현실주의적이다. 미국은 남북관계 개선이 북·미 비핵화 협상과 보조를 맞출 것을 기대한다. 그래서 미군 장성이 사령관인 유엔사령부를 앞세워 경의선과 동해선의 철도와 도로 연결 사업을 위한 시범운행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반걸음 앞서가는 남북 관계가 북·미 관계를 견인한다고 확신한다. 문재인 정부는 두 갈래의 남북한 철도와 도로 연결사업의 기술적인 검토에 곧 착수한다. 한반도 신경제 지도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다. 한·미 동맹을 흔들지 않는 범위 안에서 남북 관계를 밀고 갈 만큼 밀고 가자는 생각이다. 미국은 한국이 앞서간다고 불평만 하지 말고 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안보리 주도의 대북제재를 해제하자면 안보리 P5(5개 상임이사국)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아야 한다. 김정은의 서울 방문과 트럼프와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북한과 김정은을 보는 국제사회의 인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임은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잘 보여줬다. 남·북·미 정상들이 서울에서 한반도 전쟁은 끝났다고 선언하면 그 울림은 말의 과장 없이 지구적(global)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 북한과 미국에 꿩 대신 닭을 내밀고 설득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제재의 전면적인 완화라는 꿩 대신 한반도에 한정된 제재를 푸는 것이 닭이다. 그것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같은 것이다. 미국이 개성공단과 금강산에 대한 제재 완화에만 동의해도 남북 관계는 크게 도약하고 유엔 안보리 주도 국제 제재와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의 한 귀퉁이가 뚫린다.
 
북한이 김정은 집권 후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것은 평양 정상회담에 참가했던 사람들을 포함하여 최근 북한을 방문한 사람들의 거의 일치된 견해다. 문재인 대통령이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15만 명의 북한 주민들에게 핵 없는 한반도 평화의 미래상을 말한 것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이변이었다. 문 대통령은 그 연설로 김정은이 북한 주민들에게 “핵 대신 경제”의 면역 주사를 놓는 수고를 많이 덜어 준 셈이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5·1 경기장 연설을 두고 문 대통령이 북한 주민들로부터 비핵화의 동의를 받아낸 것이라고 말했다. 과장된 해석이 아니다.
 
 
한반도 영구 평화 꺼리는 사람들 있어
 
한국과 미국에는 북한의 변화를 현실로 수용하고 싶지 않은 세력이 있다. 그들은 북한의 보고 싶은 것, 어두운 것만 보려고 한다. 세습왕조체제로는 시장경제를 할 수 없다는 완고한 선입관이 그들을 색맹으로 만든다. 북한 주민들이 가진 휴대폰이 580만대, 달러로 결제하는 1대당 가격 300달러, 둘을 곱하면 누계 17억4000만 달러라는 거금이 국고로 들어갔다. 그만한 돈을 쓸 여유를 가진 주민이 그만큼 있다는 것은 북한이 이제 어제의 북한이 아니라는 뜻이다. 김정은 위원장도 문 대통령에게 핵 문제, 그것 빨리 해결하고 경제에 집중하고 싶다는 속마음을 털어놓았다는 것이 문 대통령을 통해서 알려졌다.
 
북한이 시장경제로 번영하고, 한반도에 영구평화가 오면 기왕에 누리던 기득권을 잃을까 걱정하는 한국과 미국의 반평화주의자와 때를 잃은 반공 원리주의자들은 늦기 전에 변화의 북행열차에 오를 것을 권한다.
 
김영희 전 중앙일보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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