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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태 현장마다 이수곤 교수, 알고 보니 3대가 지질학 전공

중앙선데이 2018.10.06 00:02 604호 4면 지면보기
SPECIAL REPORT
산사태 전문가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오른쪽) 연구실에 아들 이영석(현대건설 연구개발본부)씨가 찾아와 산사태 현장 사진과 자료를 PC에 띄워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서재엔 이 교수의 부친이며 20여 년간 국립지질광물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고 이정환씨의 사진이 걸려 있다. [김경빈 기자]

산사태 전문가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오른쪽) 연구실에 아들 이영석(현대건설 연구개발본부)씨가 찾아와 산사태 현장 사진과 자료를 PC에 띄워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서재엔 이 교수의 부친이며 20여 년간 국립지질광물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고 이정환씨의 사진이 걸려 있다. [김경빈 기자]

2003년식 쏘렌토 승용차 계기판은 주행거리 41만여㎞를 가리켰다. 이수곤(65)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이 승용차를 몰고 산사태나 절개지 붕괴 현장에 달려갔다. 올해 간 곳만 15곳이 넘는다. 여기엔 지난달 6일 붕괴된 서울 동작구 상도유치원도 포함돼 있다. 이 교수가 지난 3월 유치원 인근 다세대주택 신축 공사장의 흙막이공사(임시적인 절개지 공사)로 인해 유치원이 붕괴할 수 있다고 예견했고, 유치원은 이를 근거로 여러 차례 구청 등에 안전대책을 요구했으나 붕괴를 막진 못했다.
 


1대 고 이정환 소장
지질광물연구소장 등 지낸 1세대
60년대 무연탄 개발로 연탄 보급

2대 이수곤 서울시립대 교수
선친 조언으로 화강암·산사태 전공
“사고 대부분이 비 탓 아닌 인재”

3대 이영석 현대건설 엔지니어
우면산 현장 가본 뒤 전공 바꿔
“수학 계산만으론 현장 잘 몰라”

경고, 그리고 거절과 무시. 그에겐 익숙하다. 2011년 7월 우면산 산사태가 발생하기 10개월 전 산사태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에게 직접 49쪽짜리 정책제안서를 냈으나 그때도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면산을 계기로 이 교수는 산사태 전문가란 대중적인 브랜드를 얻게 됐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산사태가 나도 피해 주민은 어디다 하소연할 데가 없다 보니 저를 찾아요. 상도유치원도 저를 먼저 불렀어요.”
 
지난 8월 노고산 2터널 입구 산사태와 서울 가산동 흙막이 붕괴 현장, 지난달 6일 사패산 등산로 침하 현장에 직접 갔다. 절개지나 석축이 무너지는 것도 사람이 흙과 암석의 성질을 잘 알지 못한 채 공사하다 벌어진 인위적인 산사태다.
 
 
1대는 관계, 2대는 학계, 3대는 산업계
 
이 교수는 1980년 고려대 지질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리즈대에서 토목지질공학 석사, 임페리얼칼리지런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 ‘한국 화강암의 풍화와 지반공학적 특성 연구’(87년)는 415쪽 분량이다. 논문 하드커버를 넘기면 ‘부모님께 헌정합니다(Dedicated to Parents)’란 문구가 있다. 이 교수는 “2013년 돌아가신 선친이 우리나라와 관련된 논문을 썼으면 좋겠다고 논문 방향을 조언했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 고(故) 이정환씨는 1943년 평양 대동공전(김일성대학의 전신) 채광과와 50년 서울대 지질학과를 졸업한 국내 지질학 1세대. 국립지질조사소 대전광물시험소 소장을 시작으로 국립지질광물연구소(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전신) 소장과 과기처 1급 공무원까지 내리 25년을 역임했다. 강원도 등에 묻혀 있던 무연탄 개발에 기여해 60년대부터 모든 가정에 구공탄이라 불리던 연탄을 보급했으며 그 결과 산림녹화에 기여했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회고록 『쇳물은 멈추지 않는다』).
 
이 교수의 아들 영석(30)씨도 한양대 공대를 졸업하고 2014년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대에서 토질역학(Soil Mechanics) 석사를 받아 현재 현대건설 연구개발본부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건설현장에서 시추한 지질을 파악하고 수학적으로 계산해 여기에 알맞은 공법 등을 제시하는 것이다. 지난 6월엔 현대건설이 칠레에서 시공하고 있는 차카오대교 공사 현장에서 말뚝을 박는 문제를 해결했다.
 
이처럼 1·2·3대가 모두 지질 전공으로 이어져 있다. 1대는 땅속에 묻힌 광물, 2대는 화강암과 산사태, 3대는 토질과 수리·역학으로 세부 분야가 다르다. 몸 담은 현장에서도 차이가 있다. 1대는 관(官)계, 2대는 학계, 3대는 산업계다.
 
지난 2일 이수곤·영석 부자는 1대가 사용했던 유품인 클리노미터(지층의 주향 및 경사를 측정하는 기구)를 들고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서울시립대 뒷산인 배봉산에서 화강암 절리(節理·암석의 균열)를 함께 관찰했다. 기자도 동행했다. 경사 각도를 알려주는 장비의 바늘은 25도에 멈췄다.
 
이수곤 교수의 부친인 고 이정환씨가 생전에 사용했던 클리노미터(clinometer). 지면의 경사나 지층의 주향(走向) 등을측량한다. 요즘엔 스마트 폰 앱으로도 경사를 잴 수 있다고 한다. [김경빈 기자]

이수곤 교수의 부친인 고 이정환씨가 생전에 사용했던 클리노미터(clinometer). 지면의 경사나 지층의 주향(走向) 등을측량한다. 요즘엔 스마트 폰 앱으로도 경사를 잴 수 있다고 한다. [김경빈 기자]

요즘도 그런 장비를 쓰나요.
“클리노미터 잘 안 쓰죠. 스마트폰으로도 경사를 측정할 수 있으니까요.”(이영석)
 
부자가 같이 다니기도 하나요.
“2002년 태풍 루사가 상륙하면서 강원도 지방에 기록적인 호우가 내렸고, 이때 산사태가 많이 났는데 고교생 아들을 데리고 현장에 갔어요. 우면산 산사태 때도 마찬가지였고요.”(이수곤)

“학부 때 전공은 전자공학이었는데 우면산 산사태 현장을 가본 뒤 토목지질공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고, 복수전공을 선택했습니다. 석사도 아버지가 나온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대에서 했어요.”(이영석)
 
상도유치원 같은 지반 붕괴나 싱크홀 원인은 어디에 있나요.
“설계 단계에서 지질조사를 너무 소홀히 합니다. 이는 부실설계와 부실시공으로 이어지죠. 사고가 나면 비가 많이 온 탓이라고 말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대부분의 경우 인재가 맞습니다.”(이수곤)

“비가 많이 온다든가 하는 자연적인 것도 원인이 될 수 있어요. 다만 아버지처럼 직접 현장에 가서 지질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수학적 계산만으로는 제대로 현장을 파악할 수 없거든요.”(이영석)
 
부자가 몸 담는 현장이 서로 다르다 보니 불편한 점도 있나요.
“(아버지가 오시는 곳이) 우리 회사만 아니면 좋겠어요(웃음).”(이영석)
 
 
토목 따로, 지질 따로 … 학문 폐쇄성 깨야
 
이 교수와 아들이 서울시립대 뒤쪽 배봉산에서 화강암의 경사 각도를 재고 있다. [김경빈 기자]

이 교수와 아들이 서울시립대 뒤쪽 배봉산에서 화강암의 경사 각도를 재고 있다. [김경빈 기자]

이 교수는 내년 2월 정년퇴직한다. 1987년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시립대에 온 게 1995년이다. 42세가 돼서 교수가 된 것이다. 외국 유명대 박사학위 취득자 중 상대적으로 늦게 임용된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전공(토목지질공학)과 관련이 있다. 이 학문은 공학 분야인 토목공학과 이학 분야인 지질학의 융합학문이다. 그러다 보니 학과 간 벽이 두터워 토목 따로, 지질 따로인 한국 학계에서는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이 교수는 “토목공학과에 교수 임용 원서를 내면 ‘지질학과 출신’이라고, 지질학과에 내면 ‘공학 전공’이라고 외면당했다”고 말했다.
 
토목지질공학은 1960년대에 생긴 학문이다. 60년대 이탈리아 바이온트에서 댐 건설로 인한 산사태 사고가 계기였다. 물에 잘 녹는 석회암 지대에 세운 댐 건설이 문제였다. 댐 건설로 생긴 인공호수 주변에서 산사태가 나면서 물이 넘쳐 댐 아래에 있는 마을을 덮치는 바람에 2000여 명이 숨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공사는 토목공학, 지형 연구는 지질학으로 칸을 나눠 연구하기보다 공사가 이뤄지는 곳의 지반 특성, 지질요소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하게 됐다. 이런 학문에선 공사 현장 등에서 일해본 실무 경험이 중요하다. 이영석씨도 “영국에서 공부할 때 동료의 상당수가 실무 경험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 경험이 있을수록 전공에 대한 이해도 훨씬 깊어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실무 경험이 없는 젊은 교수를 뽑는 우리 학계의 관행도 잘못됐다. 실무를 모르니 이론 위주로 연구하고, 연구를 위한 연구를 한다”고 말했다.
 
벙커버스터 개발하던 미 국방부, 화강암 특성 캐물어
1990년대 초반 미국 국방부 소속 요원 두 명이 이수곤 교수(당시 한국자원연구소 연구원)를 찾아왔다. 요원들은 그에게 화강암 지대의 지표면 두께와 암석의 강도, 깨짐 정도 등을 캐물었다. 이 교수는 “요원들이 이미 한국의 화강암 특성에 관한 논문을 구해 읽고 온 것 같았다. 화강암지대를 뚫고 들어가 폭파하는 벙커버스터(지하 관통형 폭탄)를 개발하려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고 말했다. 화강암은 한반도 국토의 34%를 차지하는 암석이다. 서울 등 주요 대도시가 화강암 위에 서 있다. 북한에선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가 화강암지대다. 북한은 2006년 만탑산 아래 핵실험장에서 1차 핵실험을 했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얼마 전 이 시설을 폐쇄했다. 그는 “당시 미국은 화강암 깊은 곳에 북한 핵실험장이 생긴다면 이를 파괴하기 위한 목적으로 폭탄을 개발하려 했고, 이를 위해선 국내 화강암의 지질 특성을 알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화강암이라 하더라도 균열 상태에 따라 차이가 있다. 서울의 북한산 인수봉은 균열이 거의 없다. 그 대신 나무가 못 자란다. 이에 비해 관악산은 균열이 많은 화강암산이다. 그 덕분에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다. 균열이 많은 곳은 풍화작용으로 인해 단층이나 절리 등이 발달한 곳이어서 낙석이나 산사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붕괴사고가 난 상도유치원의 지반 하부 암석은 편마암이다. 편마암은 화강암에 비해 강도가 약해 시공 때 주의해야 한다.
 
강홍준 기자 kang.h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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