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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곳곳에 허점인 9·19 군사합의, 투명성과 검증 보완해야

중앙일보 2018.10.05 00:02 종합 26면 지면보기
역사적 사례로 본 군비통제 성공과 실패
지난달 남북 국방부 장관이 서명한 ‘9·19 군사합의’는 곳곳에 허점과 불씨를 안고 있는 위험한 약속이다.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을 방지하고 평화 정착이 목적이지만 투명성을 보장할 수단이 전혀 없어서다. 역사적으로도 투명성을 담보할 검증조치가 빠진 군비통제 합의는 결국 무의미해지거나 전쟁으로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합의를 두고 “사실상 종전선언”이라고까지 치켜세웠다. 그러나 ‘전쟁’으로 비화하지 않고, 하지 않느니만 못한 합의가 되지 않으려면 보완조치가 필요하다. 역사적 사례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군사합의 필수 검증조항 빠져
검증없는 군비통제, 항상 실패

헬싱키협약은 구호로 끝나
신뢰확보 추가합의 필요

북, 사이버 적대행위 중단해야
신뢰조치 없으면 북 도발 유혹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두 가지를 병행하고 있다. 그 첫째는 북한 비핵화이고 둘째는 재래식 군축과정의 일환인 군비통제다. 둘 가운데 어느 하나만 삐끗해도 평화 구축 희망은 물 건너간다. 비핵화는 미국에 일단 일임한 셈인데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7일 방북이 관건이다. 재래식 군축조치의 첫 단추는 9·19 군사합의다. 이 합의는 군사훈련·기동·가용성·군사적 행위·특정지역 무기 배치 등을 통제해 서로 신뢰를 구축하는 이른바 ‘운용적 군비통제’다. 합의 가운데 일부는 지난 1일 이미 착수했으며, 핵심 조항은 다음 달부터 시행된다. 그러나 남북 지도자의 정치적 의지 외엔 실질적인 신뢰조치는 없는 상태다. 실패한 유럽의 헬싱키협약과 비슷한 초보적 수준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헬싱키협약은 냉전이 한창이던 1975년 8월 1일 체결됐다. 미국을 비롯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소련 주도의 바르샤바조약기구(WTO) 회원국 등 35개국이 가입했다. 유럽에서 무력 사용을 제한해 전쟁 위협을 줄이고, 인간의 자결권과 평등을 보장하는 목적이었다. 이 협약은 군사적 신뢰구축 방안으로 2만5000명 이상 참가하는 군사훈련은 21일 전에 사전통지, 각국 재량으로 군사이동 통보와 군 인사교류 등을 담고 있다. 그러나 헬싱키협약은 결정적으로 검증조항이 없었다. 누구도 협약을 지킬 의무가 없어 구호로 끝나고 말았다.
 
헬싱키협약의 문제점을 인식한 국제사회는 1986년 스톡홀름조약을 체결했다. 헬싱키협약에 서명한 35개국이 다시 가입했다. 스톡홀름조약은 헬싱키협약의 군사적 신뢰구축방안을 실천적으로 구체화했다. 1만3000명 이상 병력이나 300대 이상 전차 또는 200대 이상의 항공기가 출격하는 훈련, 해병대 3000명 이상이나 공수부대가 참가하는 훈련도 최소한 42일 전에 통보하도록 규정했다. 매년 11월 15일 이전에 내년 훈련계획을 공개하고, 훈련 규모 4만 명 이상은 1년 전에, 7만5000명 이상은 2년 전에 통보를 의무화했다. 1만7000명 이상 참가하는 훈련엔 외국 참관단을 초청해 확인토록 했다. 조약 준수 여부가 의심되는 가입국엔 현장검사를 하되, 현장검사팀이 검사 요청 후 36시간 내 피검사국에 입국해 48시간 안에 검사를 종료한다. 검사는 지상·공중 모두 가능했다.
 
1990년 파리에서 체결된 유럽재래식무기감축조약(CFE)은 한발 더 나아갔다. 미국 등 29개국이 가입했는데 스톡홀름조약보다 더 구체적이다. 유럽을 4개 구역으로 나눠 상비군 전차·장갑차·야포 등 5가지 주요 무기의 상한선을 정했다. 회원국들은 상한을 초과하는 무기의 폐기과정과 재분류 등에 대한 검사를 했다. 그 결과 유럽에서 재래식 군사력 위협과 전쟁 위험은 감소했다. 미·소간 전략무기감축조약(START·1991)은 더 성공적이다. 조약 발효 후 7년씩 3단계로 나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전략핵 운반수단과 핵탄두의 상한선을 정했다. 상한을 넘는 핵무기를 폐기하기 위한 정보교환과 과학적인 현장검사도 동원했다.
 
반면 미국과 북베트남이 체결한 파리협정(1973)은 완전 실패 케이스다. 당시 미 대통령 특별보좌관이던 헨리 키신저와 북베트남 레둑토 특사의 중재로 이뤄진 협정엔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검증조치 등 아무런 보장책이 없었다. 키신저는 남베트남에 대한 미군 지원을 구두 약속했지만 철수했다. 북베트남은 1974년부터 협정을 깨고 전쟁을 재개했고 이듬해 사이공을 함락했다. 남베트남은 패망하고 공산화됐다. 제1차 세계대전을 정리한 베르사유조약(1919)도 유사하다.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체결된 이 조약은 1차대전을 일으킨 독일을 패전국으로 규정했다. 연합군은 독일의 무장해제를 확인하기 위해 400명의 연합군 검사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독일의 반발로 검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1926년 중단됐다. 독일은 히틀러가 등장하면서 폭격기로 개조할 수 있는 항공기를 생산하는 등 군비증강을 숨겼다. 결국 독일은 조약을 파기했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갔다.
 
다시 9.19 군사합의로 돌아가 보자. 핵심내용은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 철수와 DMZ 인근 비행금지 구역 설정, 서해 완충수역에서 적대행위 중지, 한강 하구 공동이용 등인데 우리 군의 발을 묶고 눈을 가리는 조치를 담고 있다. 혹시라도 북한이 딴마음을 먹는 한편, 우리 군이 경계에 실패하면 심각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어쩌면 북한 도발을 유혹해 군사적인 불안정성을 키울 수도 있는 합의다. 그럴 정도로 합의서 내용은 정교하지 않고 뒤죽박죽이다. 안정성을 확보할 상호 검증 항목은 아예 없다.
 
가령 서해 완충수역이 남북 각각 40㎞씩 양보했다고 발표했지만, 북한은 50㎞, 남한은 85㎞를 불평등하게 내놓았다. 또한 우리 백령도와 연평도에서 K-9 자주포 등 사격이 전면 중단하는 대신 북한 4군단(황해도 담당) 소속의 내륙 포병도 사격하지 않는다고 청와대와 국방부 관계자 말했다. 그러나 합의서 어디에도 그런 문구는 없다. 따라서 황해도에 배치된 북한군 포병의 상태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 합의에 따라 앞으로 전방에서 우리 무인정찰기로 북한군을 정찰하지 못한다. 미군 정찰위성이나 U-2 고고도 정찰기가 있지만, 북한은 이들의 비행시간을 알고 있어 은폐 시도가 가능하다. 그럴 바엔 남북이 전방지역의 공중을 개방해 서로 감시하는 게 투명성을 높이지 않을까. 합의서 서문에 남북은 육·해·공 등 모든 공간에서 적대행위를 중단키로 했는데, 사이버공간은 빠져있다. 북한의 사이버 해킹 침해는 심각하다.
 
남북 양측의 신뢰를 확대하기 위해 부대 이동이나 훈련계획을 통보하고 참관할 필요도 있다. 전문가들은 감시단 상주도 제안하고 있다. 그래야 남북한 사이의 불신을 줄일 수 있다. 서해 완충수역에서 민간인 선박에 대해 연간 횟수를 정해놓고 무작위로 비무장 확인검사도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민간인을 가장한 북한군 특수부대의 우리 해안 침투를 막을 방도가 없다. 남북한 군이 약속을 지키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상호 불시 현장검증도 허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헬싱키협약을 보완한 스톡홀름조약처럼 군사합의를 검증할 추가 협약이 시급하다. 합참의장 출신의 정경두 신임 국방부 장관의 어깨가 무겁다.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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