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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유리천장'에 금가기 시작...역대 3번째 노벨물리학상ㆍ5번째 화학상

중앙일보 2018.10.04 19:14
올해 노벨과학상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여성 과학자의 약진'이다. 지난 1일 노벨생리의학상 발표에서 시작해 2일 물리학상, 3일 화학상을 끝으로 올해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마무리됐다. 생리의학상 2명ㆍ물리학상 3명ㆍ화학상 3명으로 총 8명의 과학자가 새로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는데, 이 중 두 명(물리학·화학)이 여성이다.  
 
지난 3일(현지시간) 역대 다섯 번째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프랜시스 아널드(가운데) 교수가 두 아들 조셉 랜지(왼쪽)와 제임스 베일리(오른쪽)와 함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AP=연합뉴스]

지난 3일(현지시간) 역대 다섯 번째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프랜시스 아널드(가운데) 교수가 두 아들 조셉 랜지(왼쪽)와 제임스 베일리(오른쪽)와 함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AP=연합뉴스]

여성 노벨과학상 단 3%...유리천장으로 빛 못 본 성과
 
과학 분야에서 두 명 이상의 여성 수상자가 나온 것은 2009년 이후 9년 만이다. 당시 미국의 엘리자베스 블랙번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교수와 캐럴 그레이더 존스홉킨스의대 교수가 생리의학상을, 이스라엘의 아다 요나스 와이즈만연구소 교수가 화학상을 받아 총 3명의 수상자가 나온 바 있다. 올해는 프랜시스 아널드 캘리포니아공과대(칼텍) 교수와 도나 스트릭랜드 캐나다 워털루대 교수가 각각 화학상과 물리학상 수상자가 됐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도나 스트릭랜드가 지난 2일(현지시간) 워털루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역대 세번째 여성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1963년 마리아 괴페르트 마이어 이후 55년 만의 여성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다. [AP=연합뉴스]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도나 스트릭랜드가 지난 2일(현지시간) 워털루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역대 세번째 여성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1963년 마리아 괴페르트 마이어 이후 55년 만의 여성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다. [AP=연합뉴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간 노벨과학상은 '유리천장'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큼 여성 과학자들에게 보수적이었다. 1901년 노벨상이 생긴 이후 2017년까지 117년간 배출된 노벨과학상 수상자는 총 599명. 이 중 여성수상자는 17명으로 전체의 3%밖에 안된다. 특히 물리학상은 1903년 마리 퀴리와 1963년 마리아 괴페르트 마이어 이후 올해가 세 번째일 정도로 여성 과학자들의 성과가 주목받지 못했다.
 
보수적 노벨위원회...여성, 후보에서 제외하고 노벨상 빼앗기도
 
한국 연구재단(NRF)은 그 원인을 노벨위원회의 보수적인 태도에서 찾았다. 연구재단은 지난달 발간한 '노벨과학상 종합분석 보고서'를 통해 "노벨위원회는 과거 수상자 선정 과정에서 여성과학자에게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밝혔다. 실제로 1903년 남편인 피에르 퀴리와 함께 방사성 물질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 공동수상자가 된 마리 퀴리(1867~1934)는 1911년 순수 라듐을 발견한 공로로 두 번의 노벨상을 받았지만, 처음에는 노벨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1903년 노벨위원회는 남편인 피에르 퀴리와 앙리 베크렐만 수상자로 올렸다. 당시 본인의 단독 수상 소식에 놀란 피에르 퀴리의 적극적 요구로 마리 퀴리는 비로소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마리 퀴리 부인과 남편 피에르 퀴리 부부는 방사성 동위원소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하여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노벨위원회는 당시 남편인 피에르 퀴리만 노벨상 후보로 올렸다가, 피에르 퀴리의 강력한 요구로 마리 퀴리를 수상자로 선정했다. [중앙포토]

마리 퀴리 부인과 남편 피에르 퀴리 부부는 방사성 동위원소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하여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노벨위원회는 당시 남편인 피에르 퀴리만 노벨상 후보로 올렸다가, 피에르 퀴리의 강력한 요구로 마리 퀴리를 수상자로 선정했다. [중앙포토]

핵분열 현상을 발견해 독일의 마리 퀴리로 불리는 리제 마이트너(1878~1968)는 자신이 고용한 남성 연구원 오토 한에게 수상의 영광을 빼앗기기도 했다. 노벨상은 노벨위원회가 전 세계 연구자들로부터 받은 300~3000건의 추천을 수상자 선정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당시 마이트너의 동료 과학자들은 후보로 그를 수차례 추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와 공동연구를 진행한 오토 한은 같은 연구성과로 1944년 노벨화학상을 받게 돼, 노벨위원회가 여성과학자에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노벨상 까지 연구 30년 필요...30년 전 성비율 아직까지 영향 
 
노벨위원회의 이런 태도는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김해도 한국연구재단 정책연구팀장은 "전 세계 3000명의 연구자에게 받는 추천이 노벨상 수상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데, 오랜 기간 남성들이 과학계를 장악하고 있다 보니 추천 역시 적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벨상은 핵심 연구를 시작해서 수상까지 평균 30년간, 한 분야에서의 장기적인 연구가 필수적인데 30년 전 여성과학자의 수가 현재보다 극히 적었던 것을 고려하면, 아직도 노벨상 수상자의 여성 비율이 낮게 나올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 1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노벨위원회가 제임스 앨리슨과 혼조 다스쿠, 두 명의 과학자를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노벨위원회는 그간 후보 선정에 있어 여성을 차별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연합뉴스]

지난 1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노벨위원회가 제임스 앨리슨과 혼조 다스쿠, 두 명의 과학자를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노벨위원회는 그간 후보 선정에 있어 여성을 차별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연합뉴스]

이혜숙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 전 소장은 "노벨 유리천장에 실금이 가고 있다고 볼 수는 있지만, (여성 수상자 수가) 너무 적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과학자의 꿈을 키우는 학생들에게 여성 롤모델이 필요한데, 몇 십년에 한 명이 받는 수준으로는 턱 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 전 소장은 "한 명의 여성과학자라도 롤모델로 삼을 수 있도록 연구성과를 알리는 데도 힘써야 한다"고 밝혔다.
 
유명희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여성과총) 회장은 "과거에는 육아 및 가정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해 여성 과학자가 국제공동연구에 참여하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가정 내 남녀평등 인식이 커지면서, 여성 과학자의 연구 성과가 해외로 알려지는 등 글로벌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환경도 개선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또 "가장 연구를 활발하게 하는 시기인 2,30대가 결혼ㆍ출산ㆍ육아 등 시기와 겹친다"며 "경력단절 없이 장기간 연구를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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