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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문화참견] ‘나’를 파는 나르시시즘, 1인방송

중앙일보 2018.10.04 00:20 종합 27면 지면보기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요즘 TV를 켜면 한 채널 걸러 한 채널꼴로 인기 유튜버들이 출연한다. 아예 이들의 1인방송을 재중계하는 프로그램도 많다. 유튜버라는 새로운 창작자가 거대 방송사를 접수하기 시작했다는 증표다. 이영애 같은 톱스타가 1인방송 진행자로 변신하는 프로까지 등장했다.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에 1인방송 크리에이터가 등장한지도 꽤 됐다. 요즘은 정치 쪽 보수 논객들이 줄줄이 유튜브로 몰려가는 게 트렌드다.

새 문화권력 급부상 유튜버
자기애와 인정욕구가 출발
일각의 1인방송 규제론
실효도 없고 정치논란만

 
이르면 이달 중 유명 연예인 아닌 일반인 출신으로 구독자 1000만명을 넘어서는 유튜버 1호가 탄생한다. 감성적인 커버음악(기존 곡을 재해석해 부르기)으로 유명한 제이플라뮤직이 주인공이다. 3일 기준 구독자가 953만명이다. 웬만한 한류스타 뺨치는 수준이다(참고로 방탄소년단의 구독자는 1747만명, SM타운은 1598만명이다). 2위는 천재 기타리스트 정성하. 두 사람은 방송사·연예기획사 채널을 포함한 국내 유튜버 전체 순위에서도 각각 9위, 12위에 올랐다. 그 외 유튜버 순위(방송사·기획사 채널 제외)를 보면 포니신드롬(뷰티), 웨이브야(댄스), 밴쯔(먹방), 영국남자(일상), 도티TV(유아) 등이 10위 안에 들었다. 한때 최고 인기였던 대도서관TV나 양띵이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걸 보면 이 안에서도 경쟁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국내 유튜브 채널은 1만여 개. 그중 상위 1%인 100개 채널은 수백만 구독자와 함께 억대 수익을 올린다. 새로운 ‘문화권력’의 탄생이라 할 만하다.
 
개인 유튜브 크리에이터 10위권 안에 든 인기 채널들. 사진은 제이플라뮤직(음악). [유튜브 화면 캡쳐]

개인 유튜브 크리에이터 10위권 안에 든 인기 채널들. 사진은 제이플라뮤직(음악). [유튜브 화면 캡쳐]

유튜버·1인방송은 기존 방송 개념을 깬다. 먹방, 언박싱(신제품 리뷰), 하우 투(~하는 법) 등 예전 같으면 전혀 방송이라고 할 수 없는 내용이 많다. 같은 게임 방송도 직접 하는 게 아니라 남이 게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걸 보여준다. 뮤직비디오 등 영상을 보면서 놀라는 단순한 내용도 ‘리액션비디오’ 장르가 된다. 심지어 그저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채널도 있다. 생후 21개월 때부터 부모가 아이의 성장 과정을 올리며 입문한 4살배기 유튜버, 80대 산골 할머니(먹방) 유튜버도 있다.
 
1인방송의 동력은 디지털 소셜 미디어 일반이 그렇듯 나르시시즘이다. 방송하는 사람의 자기애와 인정욕구, 보는 사람의 관음 욕망이 맞물린다. 장르가 무엇이든 결국 무언가를 하는 ‘나’를 보여주고, 그런 내가 타인의 ‘좋아요’나 채널 구독을 통해 인정받는 쾌감이 본질이다.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지극히 사적인 행위, 즉 먹거나, 놀거나, 만들거나, 장기자랑을 하거나, 어떤 문제에 대한 나만의 노하우나 식견을 과시하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내 삶과 경험, ‘나’라는 존재 자체를 파는 방송이다. 내가 곧 브랜드가 되는 방송이다.
 
밴쯔(먹방). [유튜브 화면 캡쳐]

밴쯔(먹방). [유튜브 화면 캡쳐]

1인방송은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경계도 무너뜨린다. 야심한 밤에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밥을 먹지만 밥 먹는 모습을 공유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종류의 ‘사회적 식사’라는 것을 만들어낸다. 과거 스타들처럼 멀리 있지 않고 댓글을 통해 쉽게 말 걸 수 있는 유튜버에 대한 친근함의 환상은 공고한 팬덤으로 이어진다. 타인의 인정과 공감 욕구에 기반한 방송인 만큼 유튜버들은 더 많은 ‘좋아요’를 위해 무엇도 불사한다.
 
영국남자(일상). [유튜브 화면 캡쳐]

영국남자(일상). [유튜브 화면 캡쳐]

최근 문제가 되는 초등학생들의 ‘엄마 몰카’ 같은 선정적인 방송이 여기서 출발한다. 열 살 남짓 어린 남학생들이 천연덕스럽게 “엄마 몰카 올릴 테니 많은 구독 바랍니다”라며 엄마의 치마 밑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식이다. 어린 학생들뿐 아니다. 더 많은 타인의 관심과 더 많은 구독자, 더 많은 수익을 위해 자극의 수위를 높여가는 일이 왕왕 벌어진다. 자살이나 자해 장면을 생중계하고, 범죄에 준하는 폭력, 욕설과 혐오 콘텐트, 자극적인 가짜뉴스가 판치기도 한다. ‘도 넘는 1인방송 위기론’이 이래서 나온다.
 
포니신드롬(뷰티). [유튜브 화면 캡쳐]

포니신드롬(뷰티). [유튜브 화면 캡쳐]

얼마 전 국회 언론공정성실현모임이 공개한 ‘방송법 전부 개정안’(일명 통합방송법 개정안) 초안과 변정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방송법,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일부 개정법률안은 이런 1인방송에 대한 규제 강화를 골자로 한다. 현재의 자율규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데 1인방송의 영향력과 문제점은 날로 커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 해외 사업자들의 무한 독주에 속수무책인 국내 사업자들의 불만도 반영됐다.
 
그러나 그런 규제의 필요성과 별개로, 지금껏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로 분류됐던 1인방송을 과연 KBS, MBC 같은 지상파 방송에 준하는 ‘방송사업자’로 보는 것이 맞는지 비판이 많다.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한 가짜뉴스 문제도 각 진영이 자신에게 유리하면 진짜, 불리하면 가짜라고 몰아붙이기 전에 무엇이 가짜뉴스인지 명확한 정의를 내리는 일이 시급해 보인다.
 
무엇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방송’이란 개념 자체가 급변하는 시점에서 지상파로부터 IPTV, 인터넷 동영상서비스까지를 ‘방송’이라는 하나의 틀로 엮어내려는 시도 자체가 무리수다. 가령 지상파 방송에 대한 사회적 규제의 근거인 ‘전파의 희소성’ 원칙도 디지털 시대에 무너진 지 오래다.
 
전 국민이 유튜버가 되는 1인 미디어 시대다. 사회가 동의하는 적절한 수준의 규제는 언제나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규제의 방식이나 근거가 기존 사업자 이해 중심이라면 그건 넌센스다. 실효성도 없고 과잉규제에 공연히 정치적 배경만 의심받을 뿐이다. 이 모든 걸 떠나 이런 규제안을 만드시는 분들은 일단 1인방송을 구독하는 일부터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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