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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돋보기] ‘광궤’가 탄생한 까닭

중앙일보 2018.10.04 00:16 종합 28면 지면보기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기차가 다니는 길인 ‘철도’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우선 전 세계 철도의 60%를 차지하는 표준궤가 있다. 두 가닥의 선로 사이 폭이 1435㎜로 우리나라 철도도 표준궤다. 이보다 폭이 좁으면 ‘협궤(狹軌)’, 넓으면 ‘광궤(廣軌)’라고 부른다. 국내에선 1995년 말 운행을 중단한 수인선이 폭 762㎜짜리 협궤였다. 광궤로는 러시아의 시베리아횡단철도(TSR·Trans Siberian Railway)가 대표적이다.
 
표준궤의 폭이 왜 1435㎜가 됐는지는 명확지 않다. 다만 말 두 마리가 끄는 마차의 폭, 즉 마차의 궤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최초로 이 궤간을 표준화한 나라는 영국이다. 이후 유럽과 미국 등에 철도가 확산되면서 대부분 표준궤를 깔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산골짜기나 험지 등을 개척할 때는 협궤를 많이 건설했다. 건설비용이 적게 드는 데다 곡선 구간 등의 범위가 작아서 유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산에서 채굴한 광석이나 현지 산물을 운송하는 데 많이 쓰였다. 다만 열차 크기가 작아 운송능력이 떨어진다는 한계는 있다.
 
협궤가 이런 현실적 필요 때문에 생긴 반면 광궤의 탄생은 다분히 국제적 역학관계 때문이다. 광궤로 유명한 러시아는 유럽과 붙어있기 때문에 얼핏 표준궤를 도입하는 게 타당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큰 고초를 겪은 러시아로서는 프랑스를 늘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철도를 놓을 때 표준궤를 쓰는 프랑스와 바로 연결되지 않도록 선로 폭을 더 넓게 만들었다. 직결됐을 경우 프랑스가 철도를 이용해 대량으로 병력과 무기를 실어 나르며 침략해올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물론 표준궤의 독일도 견제해서다. 스페인이 광궤를 채택한 것 역시 프랑스를 의식해서라고 한다.
 
이처럼 광궤의 탄생은 전쟁과 갈등이 주요한 원인이었다. 우리 정부는 지금 북한, 러시아, 중국, 몽골, 일본, 미국이 참여하는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를 추진하고 있다. 이들 국가 중 러시아와 몽골이 광궤를 쓰고 있다. 이를 모두 묶어 마치 한 나라처럼 자유롭게 열차가 왕래하고, 물류가 흐르는 유럽연합(EU)처럼 만들자는 것이다. 구상대로만 된다면 우리로서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거머쥘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철도를 하나로 연결하려면 무엇보다 상호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서로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드러내고, 이해하고, 믿음을 주고받아야만 한다. 그래야 철도공동체가 성공할 수 있다. 광궤가 왜 탄생하게 됐는지 돌이켜 보면 그 이유는 분명해진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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