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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24번째 노벨상에도 내일을 걱정하는 일본

중앙일보 2018.10.04 00:15 종합 29면 지면보기
서승욱 일본지사장

서승욱 일본지사장

“20년 뒤 헛된 투자가 되더라도 지금 돈을 쓰는 것, 실패할지라도 미래를 내다보고 계속 투자하는 것이 국가의 품격이다.”
 
2일 일본 민방인 TV아사히의 메인 뉴스 ‘보도 스테이션’에 소개된 원로 정치인의 발언이다. ‘실패하더라도 국가를 위해 반드시 써야 할 돈’으로 꼽힌 건 바로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투자다. 혼조 다스쿠(本庶佑·76) 교토대 특별교수가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면서 일본은 그야말로 ‘혼조 열풍’에 빠졌다.
 
그런데 ‘일본국적자 24번째 노벨상 수상’이라는 쾌거 속에서 일본은 오히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 위축으로 암울해질 일본 과학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2000년 이후 과학 분야에서만 16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쏟아진 데엔 1980년대 나카소네 정권 시절 본격화된 국가 차원의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버블경제가 붕괴한 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액이 점점 줄었다. 국립대가 기초과학 연구에 마음껏 투자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온 운영비 교부금도 2004년 1조2415억엔(약 12조원)에서 올해 1조971억엔으로 1444억엔 가량(약 1조4000억원)  줄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본발 학술논문의 숫자와 존재감도 2000년대 초반에 비해 점점 내리막길이다. 그러니 미래를 위한 투자 없이 오늘의 노벨상만 기뻐했다간 훗날 일본을 제치고 멀찌감치 앞서가는 중국의 뒤통수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 적지 않다.
 
혼조 교수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항암 물질 관련 수익과 노벨상 상금을 연구기금 설립을 위해 교토대에 내놓겠다고 밝힌 2일 기자회견에서다. 그는 “과학자들이 ‘기초과학 연구에 내 인생을 걸기를 잘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일본이란 나라를 자동차와 IT산업 등이 떠받치고 있지만, 훗날 어느 산업 분야에서 혁명이 벌어질지 모른다”며 “ 인간사회의 근간인 생명과학에 투자하지 않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고 단언했다. 2010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네기시 에이이치(根岸英一) 미 퍼듀대 교수 역시 “일본은 노벨상 일류 국가지만 아직 초일류는 아니다”며 분발을 촉구했다.
 
“노벨상의 계절에만 반짝 관심을 갖기보다 늘 과학기술을 중요시하는 나라가 돼야 한다”는 다짐과 제언이 일본사회를 압박하고 있다. 노벨상 강국인 일본이 이럴 정도인데, 아직 개시도 하지 못한 우리는 기초과학 투자를 늘리는 데선 팔짱을 낀 채 일본을 부러워만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서승욱 일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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