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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의 시시각각] 기-승-전-임명

중앙일보 2018.10.04 00:11 종합 30면 지면보기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결론은 버킹검이라더니 또다시 기-승-전-임명 강행이다. 예외라곤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결국 유은혜 교육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줬다. 다른 후보자들에 비해 의혹이 많고 종류가 다양했지만 대통령은 면죄부를 줬다. 청와대는 ‘충분히 소명됐다’고 억지를 부렸다. 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자유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조각 때도 같은 문제에 대해 “장관 등 정부 인사는 대통령 권한”이라고 못 박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하나마나 청문회도 못 넘어선
유은혜 임명 강행은 오만이다

당장 국회가 멈춰 설 태세다. 그럴 만한 게 전문성이 떨어지는 데다 ‘1년짜리’ 장관 논란에 휘말린 유은혜 의원을 장관 후보자에 올린 배경 자체가 인사청문회 부담을 덜려는 편의주의 발상이었다. 따지고 보면 유 장관뿐 아니다. 지금 내각의 절반쯤이 그런 삐뚤어진 온정주의에 기대 꾸려졌다. 당은 달라도 청문위원들이 동료 의원에겐 한솥밥 먹는 식구라고 봐주면서 설렁설렁 넘어가는 관행 말이다. 그러다가 전체 장관 중 절반 가까이가 의원 겸직이다. 내각제 수준의 내각이다.
 
그런데 유 장관은 현역 의원이라면 어영부영 넘어가는, 하나 마나 한 청문회조차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의원 불패’ 신화를 깨는 기록을 만들었다. 부도덕과 범법 의혹이 너무 많아 청문회에선 교육 전문성과 역량은 따져 볼 겨를조차 없었다. 자녀 위장전입을 사과한 그는 2007년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의 위장전입 의혹에 “이유가 자녀 교육 문제 때문이었다니 기가 막힌다. 부동산 투기가 아니라 괜찮다는 해괴한 논리 아닌가”라고 맹비난했던 바로 그분이다.
 
이런저런 의혹을 청와대가 몰랐을 리 없는데도 밀어붙인 건 의원이면 대충 넘어간다는, 그 관행을 믿었기 때문일 게다. 그런데도 거부됐다면 바꾸는 게 상식인데 결론은 똑같이 ‘법대로’다. 이 정부가 가장 많이 비판했던 전 정부 방식 그대로다. 문 대통령은 불과 3년 전 야당 대표 때 인사청문회가 표류하자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청문 과정에서 온갖 부적격 사유가 쏟아져도 결국은 임명되니 청문제도가 어떤 의미가 있나 회의가 든다”고 거칠게 따졌다.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는 말이다.
 
같은 심정이라면 청문회를 미국식으로 손질하면 된다. 미국은 대통령이 지명권, 상원이 인준권을 행사하도록 인사권을 나눴다. 대상 직위가 1200개를 넘고, 까다롭게 따지는 청문회만도 절반에 달한다. 우린 60명 남짓에 표결 없는 무늬만의 청문회가 대부분이다. 국회에서 만신창이가 돼도 청와대는 ‘반대 많은 장관이 더 잘한다’고 어깃장을 부리며 임명하는 구조다. 그러니 청문회를 할 때마다 느끼는 국회 좌절감은 항상 되돌이표다. 국민 상실감도 다를 게 없다.
 
그렇다고 이 정부가 국회와 인사권을 나눌 거라고 기대하는 건 딱할 정도로 눈치 없는 생각이다. 대선에 이기자마자 더불어민주당 당직자들에게 ‘정부기관으로 옮길 의향이 있으면 신청하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낸 정부다. 그땐 부인했지만 지금 보면 자신들이 내려보낸 낙하산이 몇 배가 된다. 내각은 같은 당 의원이나 상명하복에 길들여진 관료들로 채웠다. 대체로 ‘청와대 바라기 장관’들이다. 불통이라 퍼부었던 전 정권의 ‘받아쓰기 내각’과 별로 다를 것도 없는 풍경이다.
 
어슷비슷한 하자로 캠코더 후보는 발목 잡히고, 국민들은 뒷목 잡고, 인사권자는 법대로를 외치는 데자뷔가 벌써 여섯 번째다. 차라리 장관 청문회를 폐지하는 게 떳떳하고 당당할지 모르겠다. 다만 그러자면 과거 야당 시절 내뱉었던 말은 모두 사과하고 거둬들여야 한다. 적폐를 송두리째 뽑아내겠다는 약속으로 탄생한 적폐청산 내각이 같은 적폐 속에 허우적거리며 ‘과거는 불통이고 지금은 소통’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과연 얼마나 많겠는가.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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