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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삼성전자가 한국 기업으로 남을까

중앙일보 2018.10.04 00:05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철호 논설주간

이철호 논설주간

정부가 지주회사법·금산법·보험업법의 3종 세트로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을 압박하고 있다. 핵심은 보험업법이 개정되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7.92%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이른바 ‘3% 룰’에 따라 16조원어치를 매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참여연대 등은 보험사가 고객 돈으로 산업자본인 삼성전자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며 지분 매각을 독촉하고 있다.
 

삼성생명의 전자 주식 매각 압박
손정의 펀드 이야기까지 나와
사회주의 중국의 차등의결권 도입
우리 정부와 기업도 서로 상처만
입히는 마이너스 게임 그쳐야

이 지분을 모두 정리하면 이재용 부회장 등 특수관계인의 삼성전자 지분은 19.78%에서 11%대로 곤두박질한다.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는 수준이다.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은 이 지분을 모두 매입할 여력이 없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삼성전자가 자사주로 매입해도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어 경영권 안정에 도움이 안 된다. 그렇다고 함부로 국민연금 등에 매각했다간 언제 ‘연금 사회주의’의 몽둥이가 날아들지 모른다.
 
자연히 삼성의 눈길은 한국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외국의 큰손을 향하는 분위기다. 가장 먼저 꼽히는 게 오래전부터 3대 주주이자 삼성전자 주식 5.17%를 보유한 미국의 더 캐피털 그룹이다. 세계 최대의 블랙 록(운용 자산 4조 달러)도 대안의 하나다. 이미 애플·마이크로소프트의 최대 주주이며 SK하이닉스와 LG전자 지분도 5% 넘게 갖고 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엔 찬성 입장을 밝혀 삼성의 믿음을 사고 있다.
 
문제는 이들 내부의 ‘로스 컷(손절매)’ 규정이다. 매입가 대비 30% 이상 주가가 빠지면 자동으로 주식을 판다. 삼성은 2000년대 초반 로스 컷에 걸린 더 캐피털 그룹이 전자 지분 3%를 매몰차게 팔아치운 악몽을 잊지 못한다. 진짜 어려울 때 백기사가 아니라 반란군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요즘 삼성 주변에선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비전 펀드’ 이야기가 슬금슬금 흘러나온다. 손 회장이 “30년 안에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는 특이점이 온다”며 조성한 1000억 달러짜리 세계 최대 펀드다. 이 펀드는 35조원을 들여 영국 반도체 설계 회사 ARM을 인수했고, AI 기업인 미국 엔비디아에도 4조4500억원을 투자했다. 인공지능·자율주행 같은 미래 기술을 싹쓸이하려는 포석이다. 손 회장은 추가로 1000억 달러 규모의 비전 펀드 2호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철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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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회장은 이재용 부회장과 자주 골프를 칠 만큼 인연이 깊다. 기술의 흐름을 읽는 데 도사고 오래 버티는 것도 장점이다. 닷컴 버블 붕괴로 소프트뱅크 주가가 10분의 1 토막 났을 때 “지금이 오히려 투자 적기”라며 중국 알리바바에 투자해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삼성 입장에선 장기간 우호 주주로 남을 유력한 카드일 것이다.
 
아마 삼성의 가장 현실적 선택은 삼성물산을 앞세워 전자 지분 3~4%를 흡수하고 나머지 3~4%를 외국 우호 세력에 넘기는 방안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너의 지배력이 약화되는 만큼 외국인 주주의 눈치를 더 살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3년간 33조5000억원을 자사주 매입과 배당에 쏟아부었다. ‘주주 친화적’이라는 깃발 아래 이 금액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기를 쓰고 자사주를 매입·소각해야 외국인 주주를 달랠 수 있고, 오너 지분율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돈이 예전 같으면 설비투자와 일자리에 쓰였을 종잣돈이란 점이다.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연구개발과 인수합병에 투입돼야 할 소중한 재원이 경영권 방어에 낭비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주의 중국의 움직임을 눈여겨보았으면 한다. 2014년 알리바바는 상하이와 홍콩의 구애를 뿌리치고 뉴욕 증시에 상장해 충격을 던졌다. 마윈은 “차등의결권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보유지분 7%가량인 마윈은 40% 의결권을 행사한다. 이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자극받은 홍콩이 잽싸게 차등의결권을 도입하자 중국의 샤오미가 홍콩 증시에 상장했다. 중국 정부도 더는 버티지 못했다. 지난달 27일 “우리 유니콘(자산 1조원 이상의 벤처)을 다 뺏긴다”며 차등의결권 도입을 선언했다.
 
이쯤에서 우리 정부와 기업도 서로 상처만 입히는 마이너스 게임을 그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제 통계청은 “올 초 반도체 설비 증설이 마무리되면서 설비투자가 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경제부총리는 9월 신규 취업자가 마이너스일 가능성까지 열어놓았다. 한국 경제가 길을 잃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가 21세기로 뛰어가는데 유독 우리만 20세기로 역주행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알리바바처럼 삼성전자가 한국 기업으로 남을지도 자신하기 어렵다.
 
이철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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