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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일기엔 분노하면서 … 개천절 태극기가 안 보인다

중앙일보 2018.10.04 00:02 종합 10면 지면보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3일 정대협 수요시위에서 욱일기를 달고 제주해군기지 관함식에 참가하려는 일본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3일 정대협 수요시위에서 욱일기를 달고 제주해군기지 관함식에 참가하려는 일본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도 바다에 욱일승천기(욱일기)가 나타난다면 저는 이민을 결정하겠습니다.’
 

“일 군함 관함식서 못 달게” 글 봇물
“국경일 휴일일뿐” 국기 게양 외면

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욱일기를 게양한 일본 군함의 관함식 참가를 불허할 것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글이 다수 올라왔다.  
 
이날 하루에만 10건이 넘게 게재됐고, 욱일기라는 단어로 키워드를 검색하면 총 287건의 청원이 떴다. 대부분 “일본이 전범기인 욱일기를 달지 못하도록 정부가 힘을 써 달라” “한국 군함은 독도 깃발을 달자”는 내용이다.
 
일본의 욱일기 게양 논란은 10일 열리는 제주 국제 관함식에서 자국 국기와 태극기를 달아달라는 한국 해군의 요청에 일본이 욱일기를 달겠다고 하면서 불거졌다. 욱일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사용했던 것으로 침략 전쟁과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개천절인 3일 집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일본의 욱일기 게양에는 분노하는 애국자도 국경일에 태극기를 게양하거나 의미를 되새기는 일은 거의 없는 역설이 나타난 것이다.
 
같은 날 오전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 단지는 23개 동으로 이뤄져 있어 2000세대 넘게 거주하고 있지만 태극기를 게양한 집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한 개 동에 많아 봐야 한 두 곳만 태극기를 내걸고 있었다. 열 개 동(약 1000세대)을 직접 다니며 확인한 결과, 베란다 밖에 달아놓은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는 집은 열세 가구뿐이었다.
 
서울 마포구와 용산구의 대형 아파트 단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대 수는 손으로 세기 힘들 정도로 빽빽했지만 태극기가 게양된 집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시내 중심지역 상가는 물론 주택가 골목 등에도 태극기가 걸려 있는 모습은 보기 어려웠다. 지자체에서 게양한 차도 옆의 태극기가 없으면 이날이 태극기를 게양하는 날인지도 알기 힘들 정도였다.
 
3살 자녀를 둔 김모(35·공덕동)씨는 “집에 태극기도 없고, 국경일에 국기를 달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다”며 “아이가 좀 더 자라면 교육 차원에서 태극기 게양을 고려해봐야겠다”고 말했다. 직장인 윤모(40·아현동)씨는 “개천절을 비롯해 국경일은 그냥 휴일일 뿐 특별히 의미를 두거나 한 적은 없다. 태극기 게양에 소홀한 것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고 했다.
 
일부 보수주의 세력들이 자신들의 상징으로 ‘태극기’를 이용하면서 태극기에 대해 반감이 생겼다는 시민들도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전후해 나타난 이들은 태극기를 들고 집회에 참여해 ‘태극기 부대’라고도 불린다. 직장인 이모(39·공덕동)씨는 “극단 보수주의자들이 태극기를 들고 집회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태극기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생긴 게 사실이다”며 “국경일에 태극기를 달아야 하는 건 알지만 집에 태극기를 게양해 놓으면 왠지 그들과 같은 부류로 보일 것 같아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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