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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 논설위원이 간다] ‘임대 걱정’ 사라진 자리에 ‘로또 아파트’ 기대 들썩

중앙일보 2018.10.04 00:02 종합 24면 지면보기
9·21 대책 성동구치소와 재건마을의 딜레마
정부의 9·21 주택공급 대책이 곳곳에서 진통을 낳고 있다. 부지 후보로 떠오른 경기도 주민들은 “지금도 초과 공급”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린벨트 해제를 놓고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의 신경전도 계속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뿐만 아니라 대부분 민주당 소속인 해당 지역 기초단체장들도 정부 방침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칫 여·여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서울시 내 11곳 후보지 중 구체적인 위치가 발표된 옛 성동구치소와 재건마을도 예외는 아니다. 성동구치소 부지는 주민들의 반발로 공공임대 공급이 취소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자 이번엔 ‘로또 아파트’ ‘금수저 아파트’ 논란이 일고 있다. 재건마을도 원주민 이주를 둘러싼 갈등의 소지가 남아 있다.

공공택지 구치소 부지 100% 분양
‘당첨되면 앉아서 수억 차익’ 논란

공공임대 60채 예정된 재건마을
원주민 이주 문제로 갈등 가능성

‘운좋은 개인’ 차지하는 시세차익
공공으로 돌리는 방안 고민해야

 
#‘임대 취소’에 분위기 바뀐 성동구치소
 
9·21 공급대책으로 아파트 1300호가 들어설 송파구 가락동 옛 성동구치소 정문 앞에 주민들의 반대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현상 기자]

9·21 공급대책으로 아파트 1300호가 들어설 송파구 가락동 옛 성동구치소 정문 앞에 주민들의 반대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현상 기자]

지하철 3호선과 5호선이 만나는 오금역 4번 출구를 나와 100m쯤 걸어가자 곧장 옛 성동구치소의 높은 담벼락이 나온다. 구치소는 이미 지난해 6월 문정동 동부구치소로 이전했지만, 담 위에는 여전히 철조망이 처져 있고 ‘사진 촬영 금지’ 경고문도 그대로 붙어 있다. 담벼락을 따라 10분쯤 걸어가자 굳게 닫힌 정문이 나왔다. ‘성동구치소 졸속 개발 반대’ 구호를 담은 현수막이 높다랗게 걸려 있다.
 
이곳에는 9·21 대책으로 1300가구 공급이 예정돼있다. 혐오 시설인 구치소 이전으로 개발 기대를 키우던 주민들은 임대주택이 대거 들어선다는 소식에 크게 반발했다. 서울시의 당초 약속대로 복합문화시설과 청년 일자리 지원 시설을 지어야 한다며 반대 위원회까지 구성했다. 박성수 송파구청장(민주당)도 “실질적 이해관계자인 송파구청과 지역 주민들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았다”며 주민 편에 섰다.
 
사실 이 땅은 국토부 발표 이전에 1000~1100가구의 아파트를 짓는다는 서울시 계획이 이미 잡혀 있었다. 서울시가 지난해 성동구치소 이전과 함께 세워놓은 개발 기본구상안에는 ▶공동주택 부지가 5만1975㎡ ▶교육·문화·청년 창업·기타 시설 2만6483㎡로 돼 있다. 국토부 발표는 이미 잡혀있던 서울시 구상에서 주택 부지 6000여㎡, 200~300가구가 더해진 것뿐이다. 9·21 발표 직후 서울시는 원래 구상대로 복합문화시설을 짓고, 아파트도 분양 위주로 공급하겠다며 주민들을 달랬다.
 
현재 1300가구 중 700가구는 국토부 안에 따라 신혼희망타운으로 분양한다. 나머지 600가구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공급 형태가 확정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지 소유권을 가진 서울주택도시공사(SH) 관계자는 “전원 일반 분양하기로 사실상 결정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다만 SH공사에서 직접 개발할지, 민간에 매각할지는 아직 검토 중이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에서는 “우려했던 임대주택이 들어서지 않고, 문화 시설도 예정대로 설립된다는 소식에 주민 반발도 잠잠해진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이주 문제 해결 기대 높아진 재건마을
 
신혼희망타운 340호가 들어설 강남구 개포동 재건마을 동네 어귀. [이현상 기자]

신혼희망타운 340호가 들어설 강남구 개포동 재건마을 동네 어귀. [이현상 기자]

3호선 매봉역에서 내린 뒤 5~6분쯤 걸어 양재천 위 도보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에 판자촌이 보인다. 재건마을이다. 현재 60가구가 거주하는 이곳은 1970년대 후반부터 서울 시내 개발 과정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형성됐다.
 
지난 1일 찾아간 마을 분위기는 의외로 차분했다. 동네 어귀 채소 판매 트럭에서 저녁거리를 사고 있던 70대 할머니에게 말을 건넸더니 “아이고. 우리는 잘 몰라요. 나라에서 (이주) 대책을 잘 마련해주겠지요”라며 말을 끊는다. 갑자기 높아진 외부 관심이 부담스러운 눈치였다. 마을로 들어서자 낡은 함석지붕 집과 조립식 주택들이 좁은 골목길을 이룬 채 밀집해 있다. 2011년 화재 이후 방치된 빈집도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다. 검은 콜타르를 칠한 낮은 지붕 위로 우뚝 솟은 도곡동 타워팰리스가 보였다.
 
주민들은 말을 아꼈지만 몇 년째 지지부진한 이주 문제가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2012년 공영개발 계획이 발표됐지만, 아직 구체적인 진척은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신혼희망타운 340호 중 60호를 원주민용으로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풀어야 할 문제가 없진 않다. 그중 하나가 토지변상금이다. 강남구청은 주민들이 시유지를 무단 점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1991년부터 매년 변상금을 부과하고 있다. 가구당 130만원꼴이다. 안 내면 재산을 압류하지만, 압류할 재산이 없으면 부과 5년 후 결손 처리한다. 주민들은 개발 과정에서 사실상 강제로 이주당했는데 변상금까지 물어야 하는 것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원주민을 위한 공급 형태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원주민들의 경제력을 고려할 때 영구임대나 국민임대가 거론되지만, 사업 시행자의 채산성이나 입주권을 둘러싼 형평성 같은 갈등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정한호 강남구청 공동주택지원과장은 “주민들은 서울시의 구체적 방안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겠다는 입장”이라며 “변상금은 결손 처리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축소된 ‘공공성’에 로또 아파트 논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성동구치소와 재건마을은 공공택지라서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된다. 이미 주변 시세가 높아 당첨만 되면 역대 최강의 ‘로또 아파트’가 될 것이란 기대로 들썩인다. 성동구치소 부지와 이면 도로 하나를 두고 접해 있는 인근 래미안파크팰리스의 경우 최근 전용 59㎡가 9억2000만원, 전용 84㎡는 11억3000만원에 거래됐다. 반면 성동구치소 부지에 세워지는 소형 아파트는 5~6억 원대의 분양가가 예상된다. 최소 3억원 이상의 시세 차익이다. 집값 잡겠다고 내놓은 공급대책이 자칫 투기 수요를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분양가 5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하는 신혼희망타운은 ‘금수저 아파트’ 논란이 일 가능성도 있다. 입주 자격인 맞벌이 기준 연 소득 7800만원 이하 신혼부부가 부모 도움 없이 그만한 돈을 갖고 있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는 9·13 주택시장 안정 대책의 하나로 공공택지의 전매제한(최대 8년), 거주의무(최대 5년) 기간을 늘렸다. 이 조치가 ‘로또화’를 막는 장치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이 기간 내 직장이전이나 해외이주를 할 경우 예외적으로 제3자 전매가 인정됐으나, 앞으로는 사업시행자(SH공사)에 되팔도록 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기간이 아니다. 운 좋게 당첨됐다는 이유만으로 수억 원의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임대주택을 늘리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강남의 비싼 땅값과 주민 민원에 부딪혀 흔들리고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공공임대 확대가 정답일지는 논란거리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비싼 땅에 임대주택을 넣어서 소수만이 혜택을 보는 것은 문제 있다. 차라리 최대한의 수익을 올려서 주택바우처(보조비) 같은 형태로 주거 약자를 지원하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를 위해서라도 공공 분양으로 발생하는 시세 차익을 ‘운 좋은 개인’이 아니라 공공으로 돌리는 장치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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