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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테토의 비정상의 눈] 순우리말 ‘한가위’ 그 아름다움

중앙일보 2018.10.03 00:27 종합 23면 지면보기
마크 테토 미국인·JTBC ‘비정상회담’ 전 출연자

마크 테토 미국인·JTBC ‘비정상회담’ 전 출연자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가을남자’다. 그래서인지 한국에 온 이래로 줄곧 추석 명절이 어딘가 모르게 신비롭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하지만 올해는 한가위의 다른 매력, ‘한가위’라는 그 말 자체의 매력에 눈을 뜨게 됐다. 요즘에는 추석 인사를 건넬 때 “즐거운 추석” 대신 “즐거운 한가위”라는 말을 훨씬 더 즐겨 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 같은 외국인이 듣기에는 ‘추석’이라는 말은 뚝뚝 끊어지는 거친 느낌이 드는 반면, 순우리말인 ‘한가위’는 더 부드럽고, 마치 노랫말처럼 아름답게 다가온다.
 
물론 내 개인적 기호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 지인들과 가장 좋아하는 한국어 단어에 대해 서로 물어보곤 하는데, 친구들이 좋아하는 단어의 대부분이 순우리말인 것을 알게 됐다. 보통 바다, 하늘, 나무 같은 말들이다. 요즘 한국인 친구 중에도 순우리말로 된 이름을 가진 친구가 많다. 이런 이름은 들은 지 한참 지나도 귓가에 맴도는, 독특하면서도 예쁜 이름이다.
 
비정상의 눈 10/02

비정상의 눈 10/02

물론 한국어 초급반 수업 때는 단순히 단어만 외웠고, 그 단어가 순우리말인지 한자어인지는 따로 배우지 않았다. 그럼에도 외국인 귀로 들어도 딱 감이 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하다. 순우리말이 가진 특유의 음색이 더 부드럽고 아름다운, 색다른 공명을 만들어 낸다. 또 신기하다고 느끼는 점은 한국어는 숫자부터 단어까지 한 가지 대상을 두 가지 말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거다. ‘금일’과 ‘오늘’, ‘나는 외국인이다’와 ‘나는 다른 나라 사람이다’처럼 말이다.
 
순우리말은 듣기에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옛 정취가 묻어난다. 말을 쓰는 순간 기억 저편 너머, 더 오래된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을 준다. 오래된 도자기·유물 연구를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이런 말들이 마치 내게는 오랜 시간을 견뎌 살아남아 현세와 과거를 이어주고 있는 보물 혹은 유물처럼 느껴진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자국어 보호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두고 있다. 이런 조치는 다소 과한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즐거운 추석’ 대신 ‘즐거운 한가위’라고 하는 등 이런 단어를 최대한 자주 쓰면서 순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재미를 누리고 있다.
 
마크 테토 미국인·JTBC ‘비정상회담’ 전 출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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