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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 논설위원이 간다] "내 등골 빼먹고…책임져" 이해찬 협박에 손 든 유시민

중앙일보 2018.10.03 00:02 종합 21면 지면보기
유시민(왼쪽)은 이해찬의 초선 의원 시절 첫 보좌관을 지냈다. 그만큼 돈독한 관계인 이해찬이 노무현 재단 이사장직을 유시민에게 넘겼다. 5년 넘게 야인으로 지내온 유시민의 정계 복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2009년 노무현 재단에서 기자회견 하는 두 사람. [연합뉴스]

유시민(왼쪽)은 이해찬의 초선 의원 시절 첫 보좌관을 지냈다. 그만큼 돈독한 관계인 이해찬이 노무현 재단 이사장직을 유시민에게 넘겼다. 5년 넘게 야인으로 지내온 유시민의 정계 복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2009년 노무현 재단에서 기자회견 하는 두 사람. [연합뉴스]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 선임 막전막후
“이미 여러 번 얘기했네. 노무현 재단 이사장을 맡아주게”(이해찬 대표)
 
“죄송합니다”(유시민)
 
“자네가 내 등골을 빼먹으려고 나를 당 대표로 밀었다는데, 그러면 자네도 그 때문에 내가 비우게 되는 자리(이사장직)를 맡아줘야 할 것 아닌가? 언제까지 ‘자유인’이라며 뺀질거리면서만 살 것인가?”(이해찬)
 
“…”(유시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지난 8월25일 대표에 오르자마자 4년6개월째 재임해온 노무현 재단 이사장(4대) 사임 의사를 밝히고 후임자를 찾았다. 처음엔 노무현 정부 시절 KBS 사장을 지낸 정연주와 친노 연예인들의 좌장 격인 배우 문성근이 거론됐지만 둘 다 고사했다고 한다.
 
정연주는 “언론인으로서 쌓아온 이미지가 있는데 재단 이사장을 맡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문성근도 “이사장이 되면 내 생업인 연기를 못하게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이해찬은 자신의 보좌관 출신인 유시민을 정조준했다. 직접 접촉해 “자네가 맡아줘야겠다”고 했다. 유시민은 “정계를 떠나 자유인으로 살아온 지 오래”라며 고사했다. 그러나 이해찬은 연일 전화를 걸어 설득했다. 급기야는 ‘등골’ ‘뺀질거린다’는 말을 쓰며 ‘반협박’(?)까지 했다고 유시민 측근은 전했다. 측근에 따르면 결국 둘은 지난달 말 서울 모처에서 만났다. 유시민이 손을 들었다. 이사장직을 수락한 것이다. 근 일주일만의 일이었다. 민주당은 그 직후인 지난달 26일 이 사실을 공개했다.
 
5일 뒤인 1일 오후 3시 30분. 서울 신수동에 위치한 노무현 재단 사무처 회의실에서 이사회가 열렸다. 원래는 10일 열리기로 돼 있던 이사회였지만 돌연 앞당겨 개최된 것이다. 이광재 전 강원지사·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전해철 의원 등 노무현 정부에서 요직을 거친 친노 인사들이 이사 자격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이들은 1시간 만에 만장일치로 유시민을 5대 재단 이사장에 선임했다.
 
이사회가 열흘 앞당겨 열린 데 대해 이광재 이사는 “북한 때문”이라 설명했다. “이해찬이 10·4 남북공동선언 기념 행사차 4일 방북하면서 미리 후임자를 확정해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란 것이 표면적 이유다. 그러나 당초엔 유시민도 이사장 내정자 자격으로 이해찬과 함께 방북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이사회가 당겨진 측면도 있다는 게 재단 소식통의 전언이다.
 
이광재 이사의 설명이 이를 뒷받침한다. “원래 방북 일정은 3일 개시될 예정이었다. 이에 따라 나랑 유시민은 3일 북한에 갔다가 4일 먼저 귀국하기로 정했었다. 그런데 북측이 갑자기 일정을 4일부터로 하루 미루면서 유시민이 방북을 접은 거다. 4일 방송 출연 일정이 오래전부터 잡혀있어 변경이 불가능했던 탓이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수도권 민주당 중진 의원은 “유시민이 이해찬과 함께 전·현직 노무현 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방북하면 자연 스타급 조명을 받게 된다. 그걸 의식해 이해찬과 유시민, 노무현 재단이 이심전심으로 이사회를 앞당겨 열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정황들은 “정계를 떠난 유시민에게 정치를 재개할 기회를 줘 민주당의 차기 대권 주자군에 들어가게끔 하려는 의도에서 이해찬이 이사장직을 물려준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1일 노무현 재단 사무처에서 이사회가 끝난 직후 유시민을 현장에서 만나 물었다.
 
이사장으로서 포부와 계획은.
“15일에 정식 취임한 뒤 밝히겠다. 지금은 아직 이사장 신분이 아니라 말하기가 부적절하다.”
 
이사장 취임이 정치 재개 신호탄 아니냐는 설이 나온다.
“그 문제도 취임한 뒤 다른 이슈들과 함께 묶어 입장을 밝히겠다.”
 
딱 잘라 부인하지 않았다는 해석이 나올 수 있는 답변인데.
“지금 내가 뭐라 해도 말이 통하겠나.”
 
노무현 재단은 매달 1만~2만원씩 회비를 내는 진성 회원이 5만4000명이 넘는다. 다달이 5억~7억원씩 회비가 걷혀 지난해 예산이 85억원에 달했다. 홈페이지 접속 기간을 기준으로 회원 자격이 주어지는 인터넷 회원은 20만 명이 넘는다. 대기업 후원 없이 ‘개미’(시민) 회원들의 자발적인 회비로만 운영되면서 이런 규모를 가진 재단은 세계에서 노무현 재단이 유일하다고 한다.
 
민주당의 수도권 중진 의원은 이런 분석을 내놓았다. “노무현 재단은 문재인(2대), 한명숙(1대), 이해찬(4대) 등이 이사장을 맡아왔다. 두 명이 총리 출신이고 한 명은 대통령이다. 그만큼 당내 위상이 막강하다. 게다가 8·25 민주당 전당대회에선 노무현 재단 회원들이 권리당원으로 대거 참여해 이해찬 후보의 당선에 도움을 줬다는 설도 있다. 이 조직에 유시민이 가세한 것은 의미가 크다. 그는 출연 중인 JTBC 토크쇼 ‘썰전’이 한참 잘나가는 시점에 중도 하차했는데 이 또한 주목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썰전’ 출연을 계속하면 문 대통령 변호사 역할을 이어가야 한다. 자신의 정치적 장래를 생각하면 부담이다. 그래서 적절한 시점에 하차한 것이다.”
 
유시민과 이해찬의 돈독한 관계도 눈길을 끈다. 유시민은 13대 국회에서 당시 초선의원이었던 이해찬의 보좌관을 지냈다. 유시민이 서울대 경제학과 3학년일 때 서울대 복학생 협의회 의장으로 활동하던 이해찬을 만나면서 둘은 인연을 맺었고 이후 학생운동과 투옥 등 비슷한 역정을 걸으면서 관계가 깊어졌다. 유시민이 결혼할 때 돈이 없어 혼수 마련이 어렵게 되자 이해찬 부인 김정옥 여사가 손에 낀 반지를 유시민의 신부인 현경혜씨에게 주라고 빼줬다는 일화도 있다. 유시민은 평소 이해찬을 “내 삶의 스승과 같은 존재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수도권 중진 의원의 말이다. “이해찬은 노무현 정부에서 총리를 지내던 시절 자신이 ‘문 실장’으로 불렀던 문재인을 2012년 대선에 출마시켜 5년 뒤 대통령이 되는 기반을 마련하게 한 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자신이 ‘유 보좌관’으로 불러온 유시민이 또다시 대권 주자 반열에 낀다면 2번 연속 킹메이커 역할을 하게 된다.”
 
반면 친문 김정호(초선·김해을) 의원은 “유시민이 정치를 떠난 사람이기에 이해찬 대표가 낙점한 것”이라고 했다. 이해찬에겐 노무현 재단을 둘러싼 정치색이 부담이었는데 5년 넘게 정계를 떠나있는 유시민이 이사장을 맡으면 그런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란 별명이 붙어있을 만큼 친노로서 ‘정통성’이 있기에 이해찬이 그를 골랐을 것이란 주장이다.
 
하지만 ‘썰전’을 유시민과 함께 진행한 박형준 전 국회 사무총장의 견해는 달랐다. “방송을 같이 하면서 유시민이 결국엔 정치를 재개할 것이란 인상을 받았다. 또 친노 진영 입장에선 다음 정권도 자신들과 같은 정체성을 가진 인사가 대권을 잡는 것이 절실하다. 그러나 안희정이 낙마한 지금 그럴 자격이 되는 이는 유시민과 김경수 경남지사 정도다. 유시민의 이사장 취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민주당 김종민 의원(초선·논산 계룡 금산)도 유시민의 이사장직 취임이 정치 활동 재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내다봤다. “유시민의 지지층은 과거엔 민주당 주류와 거리를 둔 독자적 정치 성향을 따르는 매니어층이 주류였다. 반면 요즘은 ‘썰전’ ‘알쓸신잡’ 출연으로 20~30대에 각광받으면서 팬덤이 보편적인 대중으로 확장돼 대권 도전 여지가 커졌다.”
 
유시민의 한가지 부담은 ‘민주당원’이 아니란 것이다. 그는 2009년 국민참여당을 거쳐 2012년 통합진보당 대표를 지냈고 그해 통진당 부정경선 사건이 터지자 정의당에 입당했다가 이듬해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 6월엔 정의당마저 탈당한 상태다. 민주당 수도권 중진 의원은 “이처럼 민주당을 오래 떠나 있던 전력이 그의 정계 복귀 걸림돌이 돼왔는데 노무현 재단 이사장 취임이 이를 해소할 계기가 될 수 있다. 이해찬이 유시민을 낙점한 또 다른 이유일 것”이라고 했다.
 
유시민이 여권의 잠재적 대권 주자 풀에 합류한 가운데 민주당 내 다른 대권 잠룡들의 발걸음도 빨라지는 기류가 감지된다. 김부겸 행안부 장관의 한 측근은 “김 장관이 연말로 예상되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경호와 의전이라는 행안부 초유의 대사(大事)를 완수한 뒤 대통령이 허락한다면 연말께 물러나 2020년 총선 준비에 들어가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재인 정부엔 의원 출신 장관들이 많은데 모두가 예외 없이 2020년 총선에 나가려는 생각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재임 기간이 1년 반을 넘긴 올 연말께 내각을 떠나고 싶어 한다. 청와대도 이런 ‘여론’을 고려해 이르면 연말, 늦어도 내년 2월께 개각을 할 것이란 게 여권 내부의 관측이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도 김정은 답방 이후 연말쯤 청와대를 떠나 2020년 총선 출마 준비에 들어갈 것이란 설이 무성하다. 서울에서 2선을 한 그가 서울서 출마한다면 중구성동을 지역구가 무대가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 전언이다. “중구성동을은 성동구 일부가 중구와 합쳐져 생겨난 지역구인데 성동과 성동을은 임종석이 국회의원을 할 때 지역구(16·17대)라 지지 조직 재건이 용이하다. 또 현역 의원이 민주당 아닌 바른미래당 지상욱 의원이란 점도 임종석의 중구성동을 출마설을 부채질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집권 3년 차에 들어가는 올 연말연시가 민주당 차기 대권 주자들에게도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란 얘기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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