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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눈빛 속 따뜻함…배우 김윤석이 '1등 형삿감' 된 이유

중앙일보 2018.10.01 14:49
실제 범죄 사건을 토대로 한 스릴러 영화 '암수살인'에서 형사 역을 맡은 배우 김윤석. [사진 쇼박스]

실제 범죄 사건을 토대로 한 스릴러 영화 '암수살인'에서 형사 역을 맡은 배우 김윤석. [사진 쇼박스]

대한민국에서 형사 역할 가장 잘하는 배우로 형사들은 누굴 꼽을까. “일선 형사들한테 여쭤보니 ‘그 있잖아, 김윤석’ 하시더군요.” 3일 개봉하는 스릴러 영화 ‘암수살인’을 위해 6년간 형사들과 동고동락했다는 김태균 감독 얘기다. 이 영화는 TV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다뤄진 부산의 실제 범죄사건이 바탕. 김윤석(50)은 살인죄로 수감 중인 죄수 강태오(주지훈 분)가 일곱 명의 추가 살인을 했다고 주장하자 이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부산 형사 김형민 역을 맡았다. ‘범죄의 재구성’ ‘추격자’ ‘거북이 달린다’ ‘극비수사’ 등 여러 영화에서 전‧현직 형사 역으로 인상을 남긴 데 이어서다.  
 

범죄 실화 영화 '암수살인' 주연 김윤석
'추격자' '극비수사' 이어 집요한 형사 역
신고·수사 없이 묻혔던 암수살인 파헤쳐
"'추격자' 하정우와 싸움 UFC 같았다면,
'암수살인' 주지훈과 호흡은 격렬한 테니스"

개봉에 앞서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그는 “형사 이전에 공무원에 가까운, 형사란 직업을 가진 안쓰러운 가장 역할을 주로 했다”면서 “멋지게 총을 쏘고 조폭을 물리치는 하드보일드 수사물보단, 홀로 후줄근하게 발로 뛰는 형사의 인간적인 모습에 끌린다. ‘암수살인’의 김형민은 지금껏 했던 형사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캐릭터”라 말했다.  
 
영화에서 그가 찾아 나서는 건 실종신고도, 시체도, 수사도 없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른바 암수살인(暗數殺人)의 피해자들이다. 영화는 여느 스릴러처럼 잔인하고 자극적인 범죄 묘사로 이목을 끌려드는 대신, 아무도 모르게 죽어간 누군가의 유골을 바라보며 “누굽니까, 당신. 누군지 알아야 원한이라도 풀어주지 않겠느냐”며 한탄하는 형사의 진심 어린 눈빛에 더 바짝 다가선다. 애초 김윤석을 캐스팅한 이유다. 김태균 감독은 그를“호랑이를 닮은 눈빛 속에 이 형사만의 따뜻함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라 표현했다.  
과거 일곱 명을 더 죽였다고 자백하는 살인범 강태오(주지훈 분)와 김형민 형사의 여섯 차례 걸친 접견실 공방전은 영화에 밀도 높은 긴장을 불어넣는다. [사진 쇼박스]

과거 일곱 명을 더 죽였다고 자백하는 살인범 강태오(주지훈 분)와 김형민 형사의 여섯 차례 걸친 접견실 공방전은 영화에 밀도 높은 긴장을 불어넣는다. [사진 쇼박스]

 
“탄탄한 시나리오에 매료됐다”는 김윤석은 “실제 (수감자가) 이런 식으로 형사에게 자기만 아는 사건이 있다고 구슬리며 (영치금 따위를 뜯어내서) 패가망신시키는 케이스가 존재한다고 한다. 그러니 김형민 형사는 정말 차가운 이성으로 수사를 해나갈 수밖에 없다. 기분 나쁘게 만들면 강태오가 입을 닫아버리니까 원하는 걸 쥐여준다. 겨우 단서 하나 얻어 추적해보면 거짓말인 때도 있다. 흔들리는 믿음을 형사라는 직업 소신으로 붙들어야 한다. 굉장히 유니크한 캐릭터”라고 했다.  
 
기존 수사물과의 차별점도 짚었다. 그는 “흔히 상업영화에선 정의의 철퇴를 내리치는 통쾌한 모습의 형사가 대다수지만, 이 형사는 다르다. 욕도 거의 쓰지 않고 셔츠와 재킷의 예의 갖춘 차림으로 사람들을 찾아다닌다”면서 “이 사람이 생각하는 사건 종결이란 범인 체포가 아니라 사건에 연관된 모든 피해자의 존재를 다 확인하고 나서”라고 했다. “요즘은 ‘범인 잡았다. 형 확정’ 하고 돌아서면 다 잊어버리는 빠른 시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어떤 비극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원인과 결과를 명확히 인식해야 하는데도, 비극의 정점에서 표면적인 요인이 제거되면 끝난 것처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진정한 사건 종결을 향해 느리더라도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김형민 형사가 제겐 그 어떤 힘세고 싸움 잘하는 형사보다 멋있었다”고 말했다.  
 
김 형사가 파출소 순경으로 강등당하고, 자비로 강태오의 영치금을 충당하면서까지 수사를 이어갈 수 있는 밑바탕엔 그가 부유한 집안 출신이란 설정이 있다. 이에 김윤석은 “일종의 핸디캡이다. 부자니까 저렇게 버티며 수사하지. 이렇게 치부할 수도 있잖나. 그런데 이 핸디캡이 김태균 감독에겐 이 이야기를 출발한 소신인 것 같았다”고 했다. “김형민은 그런 편견을 넘어서 자신과 아무런 관계없는 피해자를 찾기 위해 애쓴다. 남녀 고하를 막론하고 우리는 주위에 얼마나 관심을 두고 있느냐가 이 영화의 중요한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영화 '암수살인'으로 지난달 14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주연배우 김윤석. [사진 쇼박스]

영화 '암수살인'으로 지난달 14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주연배우 김윤석. [사진 쇼박스]

극의 긴장감을 팽팽히 당기는 건 그가 거짓과 진실이 교묘하게 뒤섞인 자백을 두고 강태오와 벌이는 심리전이다. 여섯 차례에 달하는 이 교도소 접견실 공방전은 배우들이 가장 치열하게 집중한 장면이기도 했다. ‘추격자’에서 사이코패스 지영민(하정우 분)과 싸움을 UFC에 비유한 그는 강태오와의 이번 접전을 테니스에 빗댔다. “정말 강력한 서브를 넣으면 또 막아내고. 정말 격렬했다”면서 “매 장면 촬영감독과 장면의 설계도를 계속 얘기하며 촬영했지만,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발생한 이상한 에너지도 있었다”고 했다. 접견실에 들어선 주지훈이 커피믹스 봉지를 입으로 찢어낸 애드리브가 일례다. 김윤석은 “이로 끊을 줄은 몰라서 진짜 웃겼다. 네가 준 영치금으로 내가 이렇게 귀족같이 살고 있단 거들먹거림이 확 와 닿았다”면서 “주 배우가 굉장히 매력적인 연기자더라. 앞으로 더 ‘핫하게’ 영화작업을 할 것 같다”고 귀띔했다.
 
잠시 생각을 고르던 그가 실제 모델이 된 형사가 촬영장에 다녀간 얘기를 꺼냈다. “두 번 정도 조용히 와서 인사만 하고 가셨다. 대화를 나눠보진 못했지만, 이런 형사가 판타지가 아니라, 실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굉장히 큰 힘이 됐다”며 말을 이었다. “형사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사회를 위한 파수꾼이 돼야 이같은 비극이 없겠죠. 얼마 전 방송 출연 잘 안 하시는 (연극 연출가) 김민기 선생님이 JTBC 뉴스룸에 나왔어요. 어떤 모습으로 남고 싶으냐는 질문에 ‘저는 뭐 함께 살아가는 늙은이죠’ 라시더군요. 저도 세상 속에 살아가며 자기 자리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려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실낱같은 가능성을 찾기 위해 몸을 던지는 형사들. 배우 진선규가 후배 형사 역으로 김윤석과 호흡을 맞췄다. [사진 쇼박스]

실낱같은 가능성을 찾기 위해 몸을 던지는 형사들. 배우 진선규가 후배 형사 역으로 김윤석과 호흡을 맞췄다. [사진 쇼박스]

 
이 영화는 극 중 한 살인사건을 실제 피해자 유족의 동의 없이 사실적으로 묘사한 데 반발한 유족이 영화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내기도 했다. 유족이 제작사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본 영화가 암수살인 범죄의 경각심을 제고한다는 제작 취지에 공감”한다며 고 조건 없이 고소를 취하해 예정대로 개봉하게 됐다. 영화에 등장한 또 다른 살인사건의 유족은 “누구도 눈길 주지 않은 사건에 주목해 결국 밝혀내신 형사님 같은 분이 세상에 알려지길 바란다. 저 같은 피해자를 줄이는 방법은 사회적 관심”이라며 지지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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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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