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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며느리들만 전 부치고 잡채 무쳐야하나요

중앙일보 2018.10.01 09:00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 이야기(17)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의 한 장면.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고부관계에서 시어머니들은 누구보다 더 가부장 체제 여성의 성 역할에 충실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런 시어머니 눈에 며느리들이 소비적이어서 성에 차지 않은 며느리로 보일 수 있다. [사진제공=JTBC]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의 한 장면.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고부관계에서 시어머니들은 누구보다 더 가부장 체제 여성의 성 역할에 충실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런 시어머니 눈에 며느리들이 소비적이어서 성에 차지 않은 며느리로 보일 수 있다. [사진제공=JTBC]

 
5일간의 긴 추석 연휴가 끝났다. 올 추석은 결혼 이후 여느 추석과 달리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추석이다. 70년여를 시아버님과 함께 해로하신 시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신 지 3개월이 접어든다.
 
아들‧손자가 즐겨 마시는 것을 보는 게 즐거움이셔서 늘 가득 차 있던 식혜 통은 비어 있었고, 어머니의 김치냉장고엔 추석을 위한 포기김치, 물김치, 열무김치가 보이지 않았다. 온 가족은 겉으론 웃고 떠들었지만, 모두에게 어머니의 빈자리에 대한 그리움은 컸고 허전했다.
 
어머니는 누구보다 더 가부장 체제의 여성의 성 역할에 충실했던 분이셨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근검절약해야 한다는 가치관은 짜장면 한 그릇을 사 먹는 것을 사치라 생각했고, 아들이 사는 제주도에도 발길조차 내딛지 않으셨다. 그런 어머니 눈에 며느리는 늘 소비적이고 성에 차지 않은 며느리였다. 그러나 그런 어머니를 둔 나를 제외한 모든 가족은 이런 어머니의 희생 덕에 더 많은 혜택을 누리면서 살아온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별명은 ‘밥하기 선수’ ‘김치 장수’였다. 전기밥솥을 사용하지 않고 맛나고 고슬고슬하며 윤기 나게 밥을 잘 지으셨다. 살아생전 ‘나는 군인이셨던 너의 시아버지에게 새벽에 출근할 때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따뜻한 밥을 지어 올렸다’가 평생의 자랑이셨다. 이 말뜻에는 ‘나는 이렇게 하니 너도 너희 남편에게 잘해라’라는 무언의 요구가 그 말 안에 담겨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께서 '김치 장수'란 별명이 붙은 이유는 일주일에 평균 두 번 정도 김치를 담그셨기 때문이다. 결혼 초 시댁에서 시집살이를 할 때 매일 김치를 담그는 일은 내겐 고통이었다. 박종근 기자

어머니께서 '김치 장수'란 별명이 붙은 이유는 일주일에 평균 두 번 정도 김치를 담그셨기 때문이다. 결혼 초 시댁에서 시집살이를 할 때 매일 김치를 담그는 일은 내겐 고통이었다. 박종근 기자

 
‘김치 장수’란 별명이 붙은 이유는 일주일에 평균 두 번 정도는 김치를 담그셨다. 김치를 담가 아들 집, 딸 집, 동생 집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에게까지 퍼주셨다. “어머니 김치가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우리 옆집에 이 김치를 주었더니 진짜 부러워하더라고요” 같은 칭찬에 싱글벙글하셨고, 더 신나게 김치를 담그시는 것 같았다.
 
결혼 초 시댁에서 2년 6개월을 동안 시집살이를 하게 됐는데, 어머님이 매일 김치를 담그는 일은 내겐 고통이었다. 그 아파트는 화요일과 목요일에 장이 섰다. 아침 8시 30분이 되면 어김없이 어머니는 “나 장에 좀 갔다 올게” 하고 나가셨다.
 
장에 다녀오시는 어머니의 손에는 열무 세 단, 무 한 단, 배추 등이 어김없이 들려 있었다. “아, 또!” 일주일에 두 번, 아니 어떤 때는 동네 골목 시장에 운동하러 갔다 온다고 하시고는 또 나가셔서 배추 두 망을 배달시키고 오셨다. “배추가 너무 좋아 그냥 올 수가 없었다”며….
 
그럼 그 시간부터 며느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며느리는 마늘, 생강, 쪽파 등을 까느라 내가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김치 담그는 조수 역할 모드로 들어서야 했다.
 
“아니 무슨 김치 공장도 아니고 매일매일 김치냐고요? 그게 좋으면 아예 공장을 하나 차리시지요. 돈이라도 벌게….” 며느리의 투덜거림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머니의 김치 사랑은 쭉 계속됐다. 이렇게 김치 담그기가 취미인 시어머니와 그를 거부하는 며느리의 갈등은 피할 수가 없었다.
 
고부갈등 다큐멘터리 'B급 며느리'의 선호빈 감독(오른쪽)과 시부모와 갈등의 주인공으로 출연한 아내 김진영 씨. 내가 결혼하고 마주했던 해석이 안 되는 이상한 일상의 사건을 진영 씨는 빠르게 해석하고 저항했다. [중앙포토]

고부갈등 다큐멘터리 'B급 며느리'의 선호빈 감독(오른쪽)과 시부모와 갈등의 주인공으로 출연한 아내 김진영 씨. 내가 결혼하고 마주했던 해석이 안 되는 이상한 일상의 사건을 진영 씨는 빠르게 해석하고 저항했다. [중앙포토]

 
올 초 ‘B급 며느리’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 갓 결혼한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억압과 착취에 대항하는 ‘며느리 분투기’였다. 내가 결혼하고 마주했던 해석이 안 되는 이상한 일상의 사건을 영화 주인공 진영 씨는 빠르게 해석했고 저항했다.
 
결혼 초 끊임없이 나를 괴롭힌 갈등을 생각해 본다. 내가 결혼할 때 약속하지 않은 것들, 누구도 결혼하면 이런 고충이 있다고 말해 주지 않은 것들…. 내가 타협하지 않는 어마어마한 계약이 세상의 잣대가 되어 뭔가 석연치 않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것은 ‘여자답게’ ‘며느리답게’라는 이름으로 성 역할을 부여한 관습이었고, 전통이란 이름의 가부장제의 억압을 만드는 권위주의이고 남성 중심주의의 서열화 구조였다.
 
왜 나는 모든 가족이 같이 먹는 음식을 나 혼자 고민하고 시장보고 준비해야 하지? 왜 가족과 친척들이 왔을 때 반찬이 없으면 며느리 혼자 죄책감을 느껴야 하지? 왜 내가 음식을 다 했는데 정작 상에 둘러앉아 갈비와 잡채를 먼저 먹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우선일까?
 
왜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나서야 빈자리에 가서 먹어야 하지? 왜 밥을 먹다가 물을 챙겨야 하는 사람은 꼭 나일까? 왜 여러 명이 먹을 설거지를 하면서 동시에 과일을 준비하고 커피를 끓이는 사람은 나여야 하지? 왜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깎아 주는 과일의 씨앗 붙은 부분만 먹어야 하나?
 

“이 불편함은 뭐지?” “난 가사도우미인가?” “이건 아닌 것 같은데….”

 
그저 며느리라는 이름만 있을 뿐이었다. 구체적으로 딱 꼬집어 말할 수도 없는 이상한 불편함은 가사노동의 고됨보다 평등에서 소외된다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훨씬 더 크게 느껴졌다. 암묵적으로 이행해야 할 며느리 노릇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때는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잘못된 며느리, 부족한 며느리, 나 때문에 이 가정의 화목을 깨뜨리는 악역의 주인공이 되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사실 많은 대한민국 여성이 앓고 있는 명절증후군이란 병 앞에 깔린 실체는 아마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JTBC '고부스캔들'의 한 장면. 명절의 불평등 속에 '억압'의 주체는 마치 시어머니인 것처럼 보이지만 시어머니 역시 구조 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아픈 여성'이었다. 사진제공=JTBC 고부스캔들 캡쳐

JTBC '고부스캔들'의 한 장면. 명절의 불평등 속에 '억압'의 주체는 마치 시어머니인 것처럼 보이지만 시어머니 역시 구조 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아픈 여성'이었다. 사진제공=JTBC 고부스캔들 캡쳐

 
차례를 지내는 것도 아니고 며칠간 삼시 세끼 끼니를 해결하고, 장거리 운전을 하고…. 이것으로도 몸에 무리가 왔는지 허리가 심상치 않다. 지난 명절에도 허리가 문제를 일으켜 냉장고 문조차 열 수 없을 정도로 꼼짝을 못했다.
 
예방 차원으로 동네 한의원에 갔다. 칸칸이 커튼으로 가려 있었지만 여러 개의 침상은 모두 여성 환자로 가득 차 있었다. 옆 침상에 누워 있는 두 분이 친구 사이인지 며칠 사이에 있었던 소사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말끝에 이렇게 말한다.
 

“에구 나는 평생 해오던 일이니 이렇게 준비하지만, 명절만 되면 몇십 명 먹을 것 준비하고, 차례 음식 차리고… 보통 일이 아니지. 이것을 요새 사람들보고 하라면 하겠어. 이 일은 딸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아…”라고 말을 이어갔다.

 
명절의 불평등 속에 ‘억압’하는 주체가 마치 시어머니인 것같이 보이지만, 시어머니 역시 구조 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아픈 여성’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 또한 짜장면을 시켜 드시고 싶은 보통 사람이었다.
 
우리가 숨 쉬듯이 의식하지 못하는 가부장제의 억압은 상대적으로 한쪽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며느리에게 A급, B급, C급 같은 등급은 없다. 가족회의를 통한 명절 계획 세우기, 음식과 차례상 간소하게 차리고 남녀 역할 나눠 보기, 시댁과 친정 구분 없는 명절 보내기 등 집안의 상황에 따른 구체적이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 때 우리 가정 안의 ‘평등 명절’은 실현될 수 있을 것이고, 그저 며느리 OOO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마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도 화목한 가정 안에서 조상을 기억해 주기를 더 바라실 것이다.
 
손민원 성·인권 강사 qlov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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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원 손민원 성ㆍ인권 강사 필진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사람이 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젊은이와 노약자. 비장애인과 장애인. 남자와 여자..... 모두 다른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들의 인권 이야기, 폭력예방, 성평등.... 교육을 통해, 나와 이웃 모든 사람이 가진 자유, 평등, 존엄에 대해 공감하는 힘을 키우기를 소망합니다. 강의 현장에서 만나는 다양한 목소리를 글을 통해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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