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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와 세상] 인성교육의 허실

중앙일보 2018.10.01 00:08 종합 28면 지면보기
권복규 이화여대 의대 교수

권복규 이화여대 의대 교수

우리나라에서 간호사나 의사는 극한의 환경에서 일하는 대인 서비스업 종사자로 볼 수 있다. 대면하지 않고 통화만 하는 전화 상담원들도 때로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데 죽음이나 장애, 질병의 공포로 가득한 환자와 그 가족들을 늘 상대하면서 그때그때 불확실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의료인들의 스트레스는 사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필자도 의과대학 교수이긴 하지만 직접 진료를 받거나 지인이 진료를 받을 때면 해당 의사의 말과 행동에 상처를 받을 때가 없지 않다. 그들의 스트레스와 힘든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는데도 그렇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경우를 당했을 때 분노하며 의사의 ‘인성’이 부족해서 문제라고 하며, 의사의 ‘인성’ 또는 ‘윤리’를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한편으로 이해는 간다. 우리나라에서 ‘윤리’란 대개 ‘인성’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따지면 과연 의사들의 인성만이 문제가 될까? 최근에 보도된 특수활동비 등의 사용 내역을 보면 공무원이나 정치인들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교육자나 성직자들도 온갖 윤리적인 문제로 구설에 오르고 있다. 이 모두가 다 이들의 인성이 부족해서일까? 그리고 ‘교육’을 하면 다 큰 어른들인 이들의 인성이 과연 나아질 수 있을까?
 
실제로 ‘인성교육’이라는 표현은 우리나라에서나 쓰는 말일 뿐 외국에는 이에 해당하는 개념도 없다. 이는 실은 성리학에서 온 개념으로 『중용(中庸)』의 첫 구절인 “하늘에서 받은 명을 성(性)이라 하며, 이를 따르는 것이 도(道)이고,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 한다”는 데서 기인한다. 즉 인간이 타고난 선한 본성을 온전히 개발하여 성인이나 군자가 되는 것이 성리학의 목표였고, 이를 달성하는 수단이 바로 교육(敎)이었다. 성리학에서 교육은 수행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근대 윤리는 수행을 통한 마음 닦기보다는 그 행위의 옳고 그름에 더 관심이 있고 그 수단으로는 신상필벌과 올바른 시스템의 구축을 제시한다. 우리가 개인의 인성 탓으로 치부하는 많은 문제들이 실은 어설픈 시스템과 후진적인 문화의 소산임을 깨달아야 비로소 개선이 가능할 것이다. 좋은 의료서비스는 양질의 의료 환경에서 가능하며, 누군가에 대한 도덕적 비난은 후련하긴 하겠지만 그걸로 바뀔 수 있는 것은 없다.
 
권복규 이화여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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