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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송사 아닌 정치를 되살려라

중앙일보 2018.10.01 00:03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국회가 꽉 막혔다. 정기국회지만 아무 일도 못 할 지경으로 대치하고 있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청와대 업무추진비 유용 의혹을 폭로한 일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심 의원이 기밀 자료를 무단 열람하고, 불법 유출했다며 고발했다. 청와대 비서관·행정관들도 고소하겠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국가기밀 탈취사건’이라며 윤리위에 제소했다. 따지고 보면 별일도 아닌 것에 서로 벼랑 끝으로 몰며 목숨을 걸고 있다. 정치의 실종을 새삼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1979년 10월 4일 국회가 야당 총재를 쫓아냈다. 김영삼(YS) 신민당 총재가 9월 16일 자 뉴욕타임스 회견에서 미국에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는 이유다. 공화당과 유정회는 “헌정을 부정하고, 사대주의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신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단상을 점거하자 무술경관까지 동원했다. YS는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영원히 살기 위해 일순간 죽는 길을 택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곧바로 부·마 항쟁이 일어나고, 10·26사태로 이어졌다.
 
법에 예외는 없다. 그러나 그 법을 만드는 것은 국회다. 국민이 위임한 권한이다. 또 대통령의 권력 남용을 견제하는 것이 국회다. 권력자와의 긴장, 갈등을 피할 수 없다. 이것을 잘 조정하는 것이 정치력이다. 대통령이 임명한 사법조직을 앞세워 균형을 깨는 순간 1인 권력의 독주가 시작된다. 제도를 무시하는 권력자일수록 도덕의 가면을 쓴다.
 
김진국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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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선한지, 아닌지는 의미가 없다. 아무리 선하다 해도 독주하는 권력은 위험하다. 1986년 전두환 정권은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는 유성환 신민당 의원의 대정부질문을 문제 삼아 체포했다. 1심에서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 대법원에서 무죄로 확정됐지만, 유 의원에게 고통을 안긴 권력자의 사법 테러는 돌이킬 수 없었다.
 
남장 여성 국회의원이었던 김옥선 신민당 의원은 월남 종전 이후 시위를 ‘관제 데모’라고 했다가 자진 사퇴로 몰렸다. 시간이 지나면 그게 왜 징계 사유인지 이해할 수도 없는 일들이다. 그런 일을 구실로 권력자는 야당을 탄압했다. 무슨 일이건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법을 해석해주는 법비(法匪)들이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심 의원이 알면서도 기밀 자료를 열람했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은 정상적으로 발급받은 아이디로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시스템 에러란 것이다. 이 정부는 출범할 때 지난 정부가 흘려놓은 것이라며 청와대 문건들을 공개했다. 지난 정부가 흘리면 기밀문건이라도 공개할 수 있나. 기재부가 잘못해 노출한 문건을 공개한 심 의원과 무엇이 다른가.
 
국회의 역할을 다시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권한은 입법과 예·결산이다. 정부가 국민 세금을 제대로 쓰는지 감시하고, 지난 씀씀이를 고려해 예산을 조정해주는 것이 국회다. 국민 세금을 어디 썼는지 확인하는 것은 기본 임무다.
 
깜깜이 예산은 독재정권의 유산이다. ‘적폐’다. ‘특수활동비’를 비난한 것도 볼 수 없게 감춰놓았기 때문이다. 회의비를 부당하게 지급한 의심이 가거나, 규정에 어긋나게 업무추진비를 쓴 의혹이 있다면 확인하는 게 국회가 할 일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국회의원이 접근할 수 없는 기밀로 분류해놓은 것부터 이해할 수가 없다. 기재부 사무관은 볼 수 있는데 이것을 감시해야 할 국민의 대표는 보는 것마저 불법이다? 기재부가 업무추진비를 그렇게 썼어도 기밀이라고 덮어놓을 건가. 자의적인 기밀 분류가 국회의 감시를 회피하는 방탄복이 돼서는 안 된다.
 
청와대 해명을 들어보면 이해할 만도 하다. 야근하는 공무원에게 밥을 제공할 수 있다. 임명 절차가 늦어져 내정자들에게 회의비 형식으로 보수를 지급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 일은 다른 공직자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필요하면 규정을 고쳐야 한다. 그 전에는 어쨌든 ‘편법’이다. 그게 적절한지는 논의할 만하다.
 
의문을 제기하고 세금 누수를 막는 것이 국회의원의 의무다. 해명하면 될 일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니 도둑이 제 발 저린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게 된다. 이런 기준이라면 국회 질의는 모두 명예훼손이다. 야당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나.
 
이 정부 들어 정치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집권당은 없고, 청와대만 있다. 정치력으로 풀어야 할 일을 사법 절차에 맡긴다. 변호사 천국인 미국도 그렇지는 않다. 정치력을 회복하지 않고는 국회가 역할을 찾기 어렵고, 사회통합도 기대할 수 없다.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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